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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눅 16; 19-31 저희가이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2_2
2017. 3. 5. 주일오전.
* 개요: 전도비전, 83 전도~53 희생
[ 눅]16:19 한 부자가 있어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 눅]16:20 그런데 나사로라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 눅]16:21 그 부자의 상에서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 눅]16:22 이에 그 거지가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 눅]16: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 눅]16:24 불러 이르되 아버지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 눅]16:25 아브라함이 이르되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 눅]16:26 그뿐 아니라 너희와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 눅]16:27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 눅]16:28 내 형제 다섯이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 눅]16:29 아브라함이 이르되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 눅]16:30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 눅]16: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삶의 너머에 있는 새로운 세계의 존재를 보여줍니다 .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야기해주시는 예수님만이 이야기해주실 수 있는 놀라운 저세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이것은 비유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하고 그렇다고 정확한 사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모호한 이중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 중요한 것은 죽으면 가는 곳이 있고 그곳은 천국과 지옥이라는 구체적인 장소라는 것입니다 .
그리고 그곳에 가게 되는 기준이 존재하고 그곳에서 하게되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 교회와 학교와 직장에 기준이 있고 할일이 있는 것처럼 내세에도 분명한 세부적인 일들이 있습니다 .
그중 심판의 세계에서는 과거의 이생의 삶에 대한 간절한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 아브라함 품에 들어간 나사로에게는 지난 날에 대한 아무런 후회가 없었습니다 . 그러나 그중 음부에 해당하는 세계 , 우리가 알고 있는대로 지옥에 들어간 세계에서는 떠나온 삶에 대한 후회가 있었습니다 .
“[ 눅]16: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나사로를 보고”
왜냐하면 그곳은 불꽃가운데서 괴로워하며 살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 ‘ 고통 ’ 은 헬라어로 β ά σανο ς (basanos) 라고 하고 영어성경에서는 ‘pain, torment’ 라고 되어있는데 그 해석은 ‘ 극도의 고통’ 입니다 . 그 고통속에서그는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 눅]16: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하지만 그 부르짖음은 거부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이에는 커다란 고랑이 있어서 왕래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 눅]16: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 눅]16:2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고통이 없었다면 살만했겠지만 고통이 극심하기 때문에 그곳은 견디기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 그래서 이생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곳에 오지않았기를 원했습니다 . 지옥에 떨어진 부자에게는 형제 다섯이 있었고 그 형제 다섯이 현재 그가 있는 곳으로 오지 않게 되기를 원해서 나사로를 보내달라고 한 것입니다 .
“[ 눅 ]16:27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 눅 ]16: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안타까움을 포기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종들과 그 일꾼들에게 맡기도록 하십니다 . 이 부자는 언제부터 그렇게 그 형제들을 사랑하고 챙긴 것인가요 ? 그가 정말로 자신의 형제를 생각해서 나사로를 세상에 다시 보내 달라고 하는 것일까요 ? 그는 단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그 처지가 조금이라도 의미를 가지게 되기를 바랬던 것 뿐입니다 . 바로 다른 사람들이 자기 처럼 되지 않기를 바라는 의미였습니다 .
“[ 눅 ]16:29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 눅 ]16:30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 눅 ]16: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그러나 그의 청은 모두 거절되었습니다 . 그는 물도 맛볼 수 없었고 그 고통에 의미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 왜냐하면 그는 모세와 선지자들에게서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심판받는 자들이 간절히 기대하는 남은 자들에 대한 유일한 희망입니다 . 사명감을 가지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애를 쓰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우리는 아직 그 영혼의 심판에 , 그 재앙적인 심판에 , 그 인생의 심판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
여전히 우리는 부자가 과거에 자색 옷을 입고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 우리가 부자처럼 후회하게 되지 않으려면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들어야만 합니다 . 그럴 때 우리는 권함을 받고 회개하며 늘 하나님 앞에서 갈급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
하나님에 품에 들어간 다음에는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들에게 맡길 것입니다 . 그말을 들었기 때문에 회개함으로 구원을 얻은 것이고 남은 사람들도 역시 그말을 듣고 회개함으로 구원을 얻을 수 밖에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 그래서 우리는 부담감을 안고 바로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복음에 대해서 듣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
혼자서는 먹지 못하는 음식이 있습니다. 2 인분은 되어야 먹는 음식이 있습니다. 혼자서는 못가는 곳이 있습니다. 혼자서는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있습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전도하려고 하면 우리 자신도 전도되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세와 선지자들입니다 . 복음을 권하고 회개를 하게 하고 구원을 얻게 합시다 . 전도의 사명을 가지고 살아있을 때의 나사로와 같은 간절함을 품고 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그래서 후회없이 하나님 품에 들어가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