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상담]] 49엡4; 21-32 긍휼은 주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2Loading the player... [크게보기]
49엡4; 21-32 긍휼은 주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2_2c
2020. 6. 21. 주. 주일오후.
*개요: 상담비전, 긍휼, [엡]4: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엡]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엡]4: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엡]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4: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엡]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엡]4: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엡]4:28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엡]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엡]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엡]4: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엡]4: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하나님 안에서 가질 수 있는 마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랑, 희락, 화평, 인내를 생각했고 오늘 함께 보려고 하는 마음은 긍휼입니다. 긍휼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긍휼의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가질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그냥 성격이 좋거나 상황이 좋아서 긍휼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그 뜻을 따르고자 할 때 긍휼의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자 할 때 오늘 말씀은 중요한 진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1절부터 함께 살펴봅니다. “[엡]4: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엡]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엡]4: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엡]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이 말씀을 보면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듣고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은 단순히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사실 예수님에게서는 별로 배울 것이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믿으면 되고 따르면 되고 그대로 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단순한 문제인데 예수님은 우리를 단순히 구원해 주시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이 되도록 우리를 가르쳐 주시려고 하십니다. 단지 구원을 받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주님을 믿으면서 이제 다시 배움의 길의 새롭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살던 대로의 옛 사람을 벗어버리는 것과 심령이 새롭게 되는 것, 그래서 마침내 새 사람을 입게 되는 것은 사실 평생 동안 배워야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전에 살아보지 않았던 삶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변화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변화된 새 사람으로서의 삶은 구원받은 자로서 우리가 살아가야만 하는 삶이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고자 하셨던 새로운 삶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가운데에서 새로운 삶의 설명이25절부터 쭉 나옵니다. 그것은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는 것이며, 분을 내어도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않는 것이며,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며, 선한 말로 은혜를 끼치는 것이며,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않는 것이며,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모습들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습니다. 한번도 살아보지 않았던 삶을 살기가 쉽지 않고 그러한 삶을 요구받을 때 힘이 듭니다. 죄성을 가지고 태어난 우리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신 새 사람을 입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맨 마지막 절에 나오는 ‘불쌍하게 여기는 것’, 긍휼입니다. 31, 32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엡]4: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엡]4: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그 이전의 것들은 자기 자신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이 31, 32절에서 나오는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용서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로소 새 사람을 입은 모습이 꽃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이전에 아무리 참된 것을 말하고 분을 품지 않고 선한 일을 하고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않고 모든 악독과 노함을 버린다 하더라도 결국에 다른 사람들 속에서 완악하며 강퍅하고 냉정하다면 그는 새 사람을 온전히 입은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불쌍히 여김 속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완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가르침이란 바로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이 불쌍히 여기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닮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셨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어떻게 용서하셨습니까? 그 놀라우신 용서가 예수님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붙잡는 자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자신을 때리는 자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매어 다는 자들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부활하심을 믿지 않는 자들을 용서하셨습니다. 그 용서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용서가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사해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배우는 서로를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의 대상에 대해서 성경말씀은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라고 했습니다. 그 긍휼의 대상을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의 갈등은 악인들과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가족들끼리, 같은 성도들끼리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긍휼의 대상은 자신의 가족입니다. 자신의 부모요, 배우자요, 자녀입니다. 그리고 또한 같은 성도입니다. 자신보다 먼저 교회에 있던 성도요 자신보다 나중에 교회에 들어온 성도입니다. 그들을 인자하게 대하며 긍휼히 여기도록, 그리고 용서하도록 주님은 우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이 은혜를 알게 되고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되어진다면 이제 해야 하는 것은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그 긍휼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성령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긍휼을 실천하지 않을 때 그것은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것이 됩니다. 이에 대해서 29, 3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엡]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엡]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주의 가르침을 받은 자로서 예수님의 귀한 가르침을 실천하고 성령을 따르는 삶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바로 성령을 기쁘시게 하고 근심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하나님은 좋은 것을 나타내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긍휼이고 덕을 세우는 말이며 선한 말입니다. 이러한 긍휼을 통해서 좋은 것을 거두게 하십니다.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긍휼히 여기고 감사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 보십시오. 그것이 바로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새로운 사람의 모습임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실천하여 여러분의 삶을 아름다운 주님의 사랑으로 풍성하게 만드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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