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칠찌니라 하였었노라
1.원리: 능력은 하나님의 (영광)의 (위엄)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은혜 중 능력은 하나님의 영광의 위엄을 의미합니다. 이는
말 그대로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하지만 더 나아가서 영광스러운 능력, 위엄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능력은 하나님께서 단지
계획과 뜻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이해를 넘어서서 모든 일을 권능의 손과 능력의 팔로 이루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러한 능력을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한 은혜가 무엇인가를 알게 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능력은 창조의 과정을 설명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4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찌니라 5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누가 그 준승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6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느냐”
이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땅의 기초의 도량을 정하였고, 준승을
그 위에 띄우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준승(을 띄운다’는 것은 기준선(measuring line)을 그 위에 긋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준승의 사전적인 의미는 ‘평면의 경사를 재기 위하여 치는 먹줄이나 수준기’를 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땅의 기준이 되는 도량형을 만드셨고,
그것을 실제로 나타내기 위한 기준을 만드셨음을 알려주십니다. 또한 주초(footing)는 건축물의 바닥인 기초를 의미합니다. 모든 건축의 바닥에
무엇이 있는지를 주님은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과 모든 일들을 이루시는 섭리의 능력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지 못한다면 욥이 당면했던 것과 같은 어리석음에 빠지게 됩니다.
2.예화: 욥은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고 (무지)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욥 한 사람에게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욥은 이러한 능력에 대해서 알지 못했고 그럴 때 자신의 삶 속에서 더욱 괴로워하며 더욱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어차피 하나님의
뜻은 욥과 같은 의로운 자가 있고 그와 같이 하나님을 따르고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을 의지하는 자가 있다는 것을 사탄에게 보여주시고자 하셨는데 욥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처음에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면서 시험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그럴 때 그의 모든 말은 이치를 어둡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말이 되었습니다.
“1때에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2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3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찌니라”
그는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되어지는 모든 상황을 잘 모르셔서 침묵하시고 있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런 생각이 나타나게 되었고
친구들에게 그런 말들을 계속해서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욥이 올바르게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고 새로워지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모든 것을 다 잘 알고 계시는지를 보여주십니다.
“7그 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 8바닷물이 태에서 나옴 같이 넘쳐 흐를 때에 문으로
그것을 막은 자가 누구냐 9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의복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10계한을 정하여 문과 빗장을 베풀고 11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칠찌니라 하였었노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기뻐하는 것을 아십니다. 또한 바닷물의
물결이 어디에까지 미치고 더이상 넘어오지 못하게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모든 고난과 슬픔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다만 그가 그 속에서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깨닫게 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높은 자를 낮추기도 하시고
낮은 자를 높이기도 하시며 평안과 환난을 창조하며 없애기도 하시는 바로 능력의 하나님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3.방법: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깨달을 때 (희락)할 수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깨달을 때 우리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 기쁨은 하나님이 능력의 하나님임을 알면서 갖게 되는 안도감입니다. 이 모든 일이 절망과 괴로움으로 빠지지 않고 종국에는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을 기대하면서 갖는 믿음이자 확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그저 알기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이러한 이해는 온전한
결심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자동적으로 생겨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의지적으로 붙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을
기뻐하는 마음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장 12절을 보십시오.
“마태복음 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선 기뻐하게 될 것이라고 하지 않으셨고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면서 기뻐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을 확증하는 권면이기도 합니다. 빌립보서2장에는
더욱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빌2: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18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이것은 그냥 웃으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앞에 섰을 때 자랑할
것이 있을 것이니 지금 슬퍼하지 말고 기뻐하고 기뻐하라는 말입니다. 불가능한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능력을 바라보며 기뻐해야 합니다.
4.사례: 욥은 진정한 기쁨을 누리면서 하나님의 채워주심을 경험하였다.
욥은 그러한 경우의 좋은 예가 됩니다. 그는 비록 처음에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그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욥기 42장입니다.
“42:1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2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줄 아오니
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깨달았던 욥은 비로소 그것을 인정하고 고백했습니다. 그러한 욥을 주님은 받으셨고 그의 모든 고난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욥42:12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 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이러한 은혜를 누리면서 욥은 기뻐했습니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경건으로 사는 것 같았으나 나중에는 비로소 자신은 자신의 경건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자임을 깨닫고 기뻐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기뻐하는 자가 됩시다. 하나님의 능력을 생각하며
다가올 기쁨을 기대합시다. 그래서 슬픔과 괴로움 중에 시간을 보내는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을 보게될 기대와 소망속에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