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쌔 혹은 이르되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러라
19붙들어 가지고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우리가 너의 말하는 이 새 교가 무엇인지 알수
있겠느냐
20네가 무슨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1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 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이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1.불신자에게 할 수 있는 첫번째 전도의 말은 ‘이전에 교회를 가본적이
있습니까’이다.
전도를 비전으로 삼아서 우리가 전도할 때에 우리의 전도는 ‘상담전도
대화법’을 통해서 전도를 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공통적인 전도방법을 통해서 거기에서 일어나는 공통의 경험을 축적할 수 있습니다. 매번 전도하는
방식이 달라지면 거기에서 생기는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전도 대화법을 잘 숙지해서 동일한 방식으로 전도하고 그럴
때 대답에 대처하는 방법을 익혀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우리의 비전이 왜 전도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나누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비전이 전도이다라는
것에서 더 나아가서 어떻게 전도할 것인가에 대해 말하는 것임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필요하다면 나중에 왜 우리가
전도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다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불신자에게 할 수 있는 첫 번째 대화의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전에 교회를 가본 적이 있습니까’
가장 자연스럽고 쉬운 전도질문은 이전의 교회경험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사람의 과거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속에서는 교회에 가본 적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저런 형편을 생각해 볼 때에 비로소 그가 신앙적인 부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객관적이면서도 평이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2.바울은 전혀 복음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한 아테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이전에 한번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했던 아테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그들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8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쌔 혹은 이르되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러라
19붙들어 가지고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우리가 너의 말하는 이 새 교가 무엇인지 알수
있겠느냐”
그들이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는가,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
하고 관심을 끊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관심을 더욱 가지고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너의 말하는 이 새 교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느냐하면서 더욱 관심을 가졌습니다.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있지만 또한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호기심도 있습니다. 이러한 거부감과 호기심은 같이 가는 것입니다. 거부감과 호기심, 호기심과 거부감이 항상 교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대상자가
호기심이 있을지 혹은 거부감이 있을지는 어찌되었건 말씀을 전해봐야 합니다. 물어봐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우리는
복음에 대해서 조심스러운 접근을 할 수 있습니다. 복음에 대해서 들어보았는지, 교회생활을 해본 적이 있는지를 알고자 노력할 수 있습니다.
3.우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새로운 사람들에게 교회경험을 물어 보아야 한다.
그런데 왜 예수님에 대해서 들어보았는지, 혹은 천국이나 지옥에
대해서 들어보았는지가 아닌 교회경험을 물어보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이런 말들은 너무나 직접적인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전도자 자신이 그런
용어를 사용하는 것조차 불편하게 느껴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경험으로 우회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복음의 의미들, 구원의 내용들에
대해서 함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좀더 쉽게 전도대상자와 말문을 트기 위해서 교회경험을 말하는 것 뿐이지, 그렇게 말문이 트이게 되면 그로 인해서
하나님, 예수님, 복음, 구원, 천국, 지옥 등에 대해서 말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경험이 있다고 한다면 그 다음 질문인 ‘그런데 지금은 나가지
않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봐도 되고, 경험이 없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받기를 원하십니다’라고 말해주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질문이지 답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답변을 하기 위해서는 질문을 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질문이 존재하지 않는 한 답변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답변이 아니라 질문이라는 점입니다. 질문을
해야지 답변을 하는데 중점을 가지면 안됩니다. 또한 질문은 해봤다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사람이 틀려집니다. 동일한 질문에 사람이 달라져서 거기에
대한 응답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질문은 이전에 나도 해봤다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이해입니다. 예를 들면, 나도 낚시줄을 드리워봤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매번 낚시줄을 드리워 보면 고기가 잡히기도 하고 또한 잡히지 않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전도는 전도질문을 하고 전도를
하는 것이 중요하지, 전도를 해봤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4.유명한 전도인들의 특징은 많이 전도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을 많이
전도한 사람들의 특징은 사람들에게 많이 전도한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적게 전도하고 많이
전도한 사람들은 없습니다. 많이 전도하고 적게 전도한 사람들도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많은 사람들을 전도한 사람들과, 적은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적은 사람들을 전도한 사람들이 있을 뿐입니다.
가양제일교회
김복희 집사님이라는 분의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아침에 새벽 예배를 마친 뒤 중·고등학교 등하교 시간에
전도지를 들고 하루에 200명 이상의 학생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또 오후에는 경로당이나 주부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서 미용 봉사를 겸해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당시 그는 구체적인 전도 방법은 몰랐지만 뜨거운 마음으로 오직 성령을 의지하고 기도하며 나아갈 때 전도의 열매가 많아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그분의 딸 혜미양도
엄마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혜미는 친구들을 하나님 앞으로 전도했다. 혜미는 “엄마. 친구가 그러는데 엄마랑
나를 보면 교회에 너무 빠져있는 것 같대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내가 전도를 열심히 해야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옥에 안가지. 내가 뻔히 그 사실을
아는데 어떻게 전도를 미룰 수 있겠어”라고 말했답니다.
이분은 미용실을
하고 있었는데, 인근에 중국집이 있었고 그곳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청년의 영혼을 놓고 기도하며 전도의 기회를 찾고
있었습니다. 1년간 복음을 전했지만 그 청년은 시간도 없고 또 중국집 주인의 눈치를 보느라 갈 수 없다고 잘라 말하곤 했답니다. 그래도 그는 끊임없이
내 믿음과 전도 생활,그리고 그로 인한 축복 등을 말해주며 교회에 나갈 것을 권했습니다.
그리고 언젠간
총각도 사장이 될 꿈을 가지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로부터 정확히 1년 후 이 청년은 일하던 중국집을 전격 인수하고
정말로 사장이 되었답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이 때다’고 생각하고 강력하게 교회에 나갈 것을 주문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청년은 “예. 이제 원장님
말씀대로 교회 한 번 나가볼게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그 청년은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시간만 나면 카운터에서 성경 읽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전도의
경험들이 자랑이 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런 노력은 결코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전도에 대한 가장 쉬운 방법을 기억하고 사람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연결하기 위해서 애쓰는 자들이 됩시다. 그래서 전도의 사명을 이루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