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사울이 사무엘의 정한 기한대로 이레를 기다리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9 사울이 가로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10 번제 드리기를 필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11 사무엘이 가로되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 사울이 가로되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 선악의 문제는 선과 악 사이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고민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교회의 비전인 상담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상담 분류 중에서 만약 어떤 문제가 순위의 문제도 아니고, 합의의 문제도 아니라면 이 문제는 선악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아직 분류가 나머지 3개가 남아 있지만 나머지 분류들은 전부 대인적인 유형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유형으로는 이 세 가지가 대개 해당됩니다. 개인적인 분류의 마지막은 ‘선악’의 문제입니다.
선악의 문제는 선과 악에 대한 현재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파악하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 지를 생각해야 하는 분류의 문제입니다. 여기에는 다섯 가지 위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제일 악한 위치입니다. 이를 ‘악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악을 다른 사람들에게 퍼트리고 다른 사람들도 함께 악하게 만드는 것은 가장 악한 악에 속합니다. 두 번째는 ‘악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악을 다른 사람에게 퍼트리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의 악에 함께 동참하는 것이 바로 여기에 해당됩니다. 세 번째는 ‘중립’입니다. 선과 악 사이에 어떤 한 쪽에 빠지지 않을 때 이 위치를 중립위치라고 합니다. 네 번째는 ‘선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악에 동참하는 것과 반대로 선에 동참하는 것은 올바른 일입니다. 그리고 중립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의 선으로 나아가서 그 선에 함께 하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선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전파하며 보급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럴 때 이러한 위치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우리 모두가 가져야만 하는 가장 좋은 선택입니다.
선악의 문제는 이 중에서 자신의 처지가 어디에 속해있는가를 파악하고 그 위치에서 어디로 나아갈 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2. 사울은 선악의 문제에서 선을 택하지 않고 악을 택함으로 더 큰 악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본문에서 사울은 다섯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가장 악한 것에서 가장 선한 것까지 종류별로 있었습니다. 그가 만약 선을 택했다면 자신의 위치를 잘 지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악을 선택했습니다. 그가 선택했던 악은 ‘악을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왕에게는 금하여진 제사를 드리는 일을 제사장 대신에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블레셋을 대적하는 전쟁을 수행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까지도 죄를 짓게 만드는 악한 것이었습니다. 자신도 하나님이 금하시는 일을 하였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죄를 짓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사무엘이 도착해서도 그는 계속해서 악을 이어나갔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지 않고 더욱 스스로를 합리화하였습니다. “12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 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이러한 비겁하고 불의한 모습으로 인해 그는 더이상 왕위를 유지할 수 없게 하시는 하나님의 벌을 받았습니다. 그 때 그가 선한 선택을 했었더라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3. 과거에 사울은 선과 악중에서 선을 택하기도 했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도 이러한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어떤 선택은 선과 악 사이에서 고민하게 하는 선택이 있습니다. 그럴 때 선을 선택한다면 오래도록 유익을 누리지만 악을 선택한다면 하나님과 그 은혜로부터 대적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선을 선택하기를 준비하고 연습해서 꼭 실천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사울왕은 한번도 선한 일을 해본 적이 없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이전에 가장 선한 일을 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삼상11: 11 이튿날에 사울이 백성을 삼 대에 나누고 새벽에 적진 중에 들어가서 날이 더울 때까지 암몬 사람을 치매 남은 자가 다 흩어져서 둘도 함께한 자가 없었더라”
그는 길르앗 야베스를 구원하여 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이겼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감동에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삼상 11:6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 노가 크게 일어나서 7 한 겨리 소를 취하여 각을 뜨고 사자의 손으로 그것을 이스라엘 모든 지경에 두루 보내어 가로되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좇지 아니하면 그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 하였더니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 사람같이 나온지라”
사람이 자신을 의지하면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생겨납니다. 하나님의 두려움, 하나님의 의로움, 하나님의 철저하심이 그의 삶에 나타나게 됩니다.
4. 우리는 현재 있는 위치에서 더욱 선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더욱 주님을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선악의 문제에서 성공하게 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이 스스로의 위치를 분명히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야 어디로 나아가서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인 선교를 위하여 만주에서 일하다가 신사참배 반대로 1941년 10월 일본 경찰에 연행된 미국 정통 장로교 소속의 헌트 선교사가 옥에 갇혀 있을 때의 일입니다. 겨울이 되면서 날씨가 추워져 생활하기가 곤란하여 요를 넣어 달라고 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그는 외투 한 벌만으로 딱딱하고 찬 감방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미국과 일본이 전쟁을 한다는 소문이 감옥 안에까지 퍼져 술렁거리던 어느 날 헌트 선교사는 소장실에 불려갔습니다. 소장실 입구에는 전에 감옥 측에 부탁한 짚을 넣은 요가 놓여 있었습니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몸집이 크고 공부 깨나 한 것 같은 일본인이 책상에 앉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당신 미국에 돌아가기를 원합니까? 물론 우리가 당신을 보낼 것이라는 약속은 못하지만 그러나 만약 갈 수 있다면 미국으로 돌아가겠습니까?" 이전에도 많은 선교사들이 감옥에서 많은 모욕과 고난을 받은 뒤 이 나라를 떠난다는 조건으로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문 앞에 있던 누더기 요를 바라보았습니다. "미국이냐? 아니면 저 요 대용품을 가지고 한없는 감방생활로 돌아가는 것이냐?" 헌트 선교사는 결정했습니다. "나 자신의 안전만 생각한다면 나는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로서 나는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 보내신 것을 확신하며 따라서 내가 있어야 할 그곳에 있기를 원합니다. 나는 미국으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습니다."
헌트 선교사가 있었기에 우리들은 선과 악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지를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가장 중요한 선을 선택한 것입니다.
우리는 선악의 문제에서 선을 택할 수 있습니다. 이에 더해서 더 중요한 선을 주장하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도움을 주는 선입니다. 악에게 지지말고 선과 악 사이에서 선을 택하는 자들이 됩시다. 그래서 분명하게 선악의 문제를 해결하는 자들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