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시간에는 우리 삶의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 성경적상담학을 말씀속에서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서 여러분 자신들의 여러가지 삶의 문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 문제는 산적해 있지만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고 하는 시도는 매우 적습니다. 문제가 해결만 되어도 세상은 놀랍게 변화되겠지만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더 큰 문제를 일으키며 파국으로 치닫게 만듭니다. 혹은 악화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결되지도 않는 문제는 만성적인 어려움을 갖게 합니다. 오직 해결되는 문제만이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한 방법은 신앙인들 사이에서도 문화적인 차이를 갖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에는 기독교 라디오에서 청취자들이 전화를 걸어오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신앙적으로 궁금한 것들이나 어떻게 결정을 해야 성경적인지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성경적 가치관과 원리를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우리나라에는 동일하게 청취자들이 전화를 걸어오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 프로그램에서는 삶의 여러가지 절박한 사연을 듣고 그 문제에 대해서 뜨겁게 기도해주는 내용입니다. 이 두가지 극단적인 모습에서 우리는 열심히 노력하면서 기도하는 것이 올바른 성경적인 방법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무조건 자신의이성으로 해결하려는 것도 옳지 않고 무조건 기도만 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때 하나님께서는 그 지혜를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이 장면에서 엘리사의 모습은 효과적인 문제해결의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적인 상담은 바로 이러한 성경적인 원리가운데 이루어집니다.여기에는 몇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를 우리는 엘리사가 한 말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엘리사는 수넴여인이 자신에게로 나아왔을 때 그녀가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오자마자 하나님의 사람에게 달려가서 그 발을 안았기 때문입니다.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문제해결을 위한 단계가 시작됩니다. 그 첫 번째 단계는 말 그대로 ‘문제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어떻게 문제를 인식하는 지를 보십시오. “왕하4;27-28 27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발을 안은지라 게하시가 가까이 와서 저를 물리치고자 하매 하나님의 사람이 가로되 가만 두라 그 중심에 괴로움이 있다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28여인이 가로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하나님은 엘리사에게 중심의 괴로움을 알려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 엘리사가 한 일은 자신이 그 여인으로부터 그 괴로움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때로 신경에 거슬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 중심의 괴로움은 매우 거칠어서 듣기가 힘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인은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라고 항의하였습니다. 그것이 비록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이었지만 여인을 불쌍히 여기고 그녀의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너무나 필요한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해야만 그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역시 듣는 것은 필수적인 부분이었습니다.
엘리사는 이제 여인의 괴로움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어떤 일이 잘못되었는지 알았습니다. 그 다음에 한 일은 무엇일까요? 그 다음에 그는 두번째 단계로 넘어갔습니다. 그것은 ‘2단계 원인을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사는 게하시를 보내어 지팡이로 그 아이의 얼굴에 놓게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었지만 사실 그것은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 때에 그에 합당한 해결방법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과 어떠한 접촉도 하지 말고 아이에게로 가서 지팡이를 얼굴에 놓으라고 말한 대로 게하시는 아이에게로 가서 지팡이를 그 얼굴에 놓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지팡이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뭔가 더 강력한 무엇인가가 필요했습니다. 단지 보조적인 수단이나 대표하는 그 어떤 것으로는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만큼 아이에게는 더 중요한 것이 사라져버렸고 그 아이를 다시 살리기 위해서는 더 핵심적이고 더 중요한 무엇인가가 필요했습니다. 지팡이 말고 무엇이 더 필요했을까요? 아이에게서 사라져버린 그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는 그 단서를 수넴여인이 한 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게하시가 떠나고 난 뒤 여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하4:30 30아이의 어미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엘리사가 이에 일어나 여인을 좇아가니라”
여인은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라고 간절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 같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를 때 했던 바로 그말입니다. 열왕기하 2장 2절에 그 말이 나옵니다. 한번 비교해 보십시오. “왕하2:2 2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그렇습니다. 여인은 엘리사가 엘리야를 붙들었던 것 만큼 엘리사를 붙들고 있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삶에 가장 절박하고 가장 필요하며 가장 소중한 것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있는 힘을 다해 그녀는 선지자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이전에 어떠했습니까? 그 여인은 4장 16절에서 엘리사에게 이렇게 말하던 여인이었습니다. “왕하4:16 16엘리사가 가로되 `돐이 되면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여인이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
마치 별로 아들이 필요가 없는 사람처럼 자신을 속이지 말라는 말은 무심한 듯 들립니다. 이전에 그녀는 아들을 주어도 그만, 주지 않아도 그만이라는 식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간곡하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문제의 원인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녀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너무나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결코 놓칠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그 능력이 아니고서는 사랑하는 아들을 다시 살릴 수 없는 그런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더 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이 나타나기 위해서 선지자를 간절히 붙들었습니다. 살려주셔도 좋고 살려주시지 않아도 좋고가 아닌 반드시 살려주셔야만 하는 그 절박함이 그녀에게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팡이를 올려 놓아도 소용이 없었을 때 이제 필요한 것은 엘리사 자신의 전적인 노력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것을 원하셨습니다. 아들을 주신다는 말을 들었지만 믿지 못하던 여인이었습니다. 아들을 주셨지만 별다른 감사가 없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아들이 정말 필요하였고 그래서 허락하여 주었지만 그 아들이 얼마나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죽고 나니 그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있는 힘을 다해서 주님을 붙들었습니다. 가장 먼저 선지자 엘리사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결코 엘리사를 떠나지 않으리라고 맹세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그제서야 깨달았고 그것이 바로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모든 문제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문제의 원인을 이해하게 됩니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던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이해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능력을 간절히 사모하게 됩니다. 모든 문제 속에 그 문제를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오묘하신 계획이 있습니다. 다시 살아나게될 아들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한다면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할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엘리사는 3단계로 넘어갑니다. 그것은 ‘방법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이제 아이를 살리기 위한 비장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34절입니다. “왕하4:34 34아이의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입에, 자기 눈을 그 눈에, 자기 손을 그 손에 대고 그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엘리사는 말씀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도구를 쓰지도 않았습니다. 자기의 온몸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온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입에서 입으로, 눈에서 눈으로, 손에서 손으로 자신의 모든 능력을 아이에게 전달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살려 주실 것을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간구하였습니다. 바로 그 때 차가워진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여졌습니다. 죽은 아이의 몸에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엘리사가 적용한 변화의 방법은 인격적인 것입니다. 온 심령을 다한 것입니다. 자신의 신앙과 은사를 온전히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그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지팡이를 사용한 것이 아닙니다. 종을 시켜 행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 엘리사의 모든 은사와 사역가운데서 가장 감동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바로 죽은 사람이 살아난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죽은 것과 같은 한 사람이 변화되고 그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조언 한 두 마디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혹은 방법 몇 가지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문제가 심각하면 심각할 수록 상처가 크고 깊으면 깊을 수록 거기에 해당하는 방법도 역시 동일한 수준과 희생이 요구됩니다. 마치 심각한 병은 더 길고 오랜 치료기간을 요구하는 것처럼,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짓는 몸의 상처는 더 오랜 수술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마음의 변화와 문제의 해결에는 다양한 수준의 방법이 있고 가장 중요한 방법은 하나님의 은혜를 인격적으로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적용하고자 할 때에 하나님은 모든 필요한 것을 채워주십니다. 빌립보서에 바로 그 말씀이 있습니다. “빌4:19 19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할 때에, 그 은혜를 증거하고자 할 때에, 사람을 살리려고 할 때에, 문제 있는 상황을 변화시키려고 할 때에 하나님은 쓸 것을 채워주십니다. 돈을 주시는 것이 아니고 집을 주시는 것이 아니고 재능을 주시고 인격을 주시고 상황을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방법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지혜를 가지고 사람들을 돕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제를 진실로 해결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엘리사는 4단계로 나아갑니다. 그것은 ‘변화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가 변화를 형성하기 위해서 그것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 살아난 아이가 다시 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36,37절입니다. “왕하 4:36-37 36엘리사가 게하시를 불러서 `저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부르매 여인이 들어가니 엘리사가 가로되 `네 아들을 취하라' 37여인이 들어가서 엘리사의 발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나가니라”
엘리사는 수넴여인이 아들을 취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살아난 아들이며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자 했던 문제의 해결이며 결코 떠나지 않겠다던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 받은 하나님의 응답이었습니다. 그 어머니가 아들을 얼마나 귀하게 여겼을까요? 또한 하나님 없이는 아들을 살릴 수 없었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했을까요? 또한 엘리사에게 땅에 엎드려 절하는 모습을 통해 볼 때 그녀는 얼마나 선지자에게 감사하고 있을까요? 아들이 약속대로 생겼을 때에는 그렇게 엎드려 절하지 않았지만 아들이 죽었다가 살아났을 때에는 온전하게 엎드려 절하는 모습 속에서 여인이 그리고 그 아들이 온전한 변화가운데 살아가게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시는 선지자를 조롱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는 하나님이 자신의 삶에 가장 필요하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변화요 아들이 살아난 것보다 더 가치있는 변화였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어머니에게 인도되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와 함께 살아갈 것입니다. 아들은 있어야 할 곳에 있게 되었습니다. 보호되며 양육되고 사랑받을 것입니다. 있을 곳에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통한 변화는 하나님에게 더욱 나아가게 합니다. 우리는 성경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때에 이러한 단계를 거쳐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최종적인 모든 변화는 교회를 통해 형성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어머니에게 인도되는 것처럼 살아난 아들이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것처럼 문제가 해결된 성도는 교회에 붙어 있어야 하고 교회 속에서 계속 성장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다시는 동일한 문제가 일어나지 않게 만드는 진정한 변화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우리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네 가지 성경적인 단계에 대해서 보았습니다. 이러한 단계를 잘 기억하고 우리의 삶 속에 생겨나는 문제를 성경적으로 해결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이 우리 삶에 항상 함께 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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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엘리사는 무엇이 문제인지를 인식하였다. II. 엘리사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였다. III. 엘리사는 필요한 방법을 적용하였다. IV. 엘리사는 지속적인 변화가 형성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