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돌아 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29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1. 다른 사람을 전도한다는 것은 주님을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전도한다는 것은 특별한 상황과 처지가 되어야만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우리가 어떻게 전도되었는가 주님이 어떻게 우리를 이끌어주셨는가를 생각하면 우리도 그 모습을 본받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특별한 상황이나 처지가 되어서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잡으신 그 손길 그대로 나도 다른 사람에게 손길을
내미는 것 뿐입니다.
이시간 우리를 주님이 어떻게 잡아주셨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주님의 도움을 받게 되었는가를 기억해 봅니다. 그 처음 감동과 기쁨을 기억해 내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우리가 처음 교회에 발을 내딛었던
때가 아닙니다. 처음 은혜를 받았던 때도 아닙니다. 그 때는 내가 인격적으로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었던 때입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경험이 있습니다.
2. 에디오피아 내시는 빌립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다.
그 때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에디오피아 내시와 같았습니다.
그는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를 섬기는 자였습니다. 그는 공적인 일로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아마 외교사절단정도의 의미를 띠는
방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그는 우연히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얻게 되어 그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글의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글에서 묘사된 불쌍한 자의 모습이 자신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타인을 의미하는지 타인을 의미한다면 과연 그는 누구인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 말을 믿으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성경 말씀을 접합니다. 이미 교회 안에 들어와 하나님의 말씀을 읽습니다. 그 속에서 여러가지 축복의 약속을 접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살리신다는 약속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도우시며 힘주시고 승리케 하신다는 모든 축복을 만나게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해결되지
않는 의문이 있습니다. 그 축복을 받는 사람은 과연 누구입니까? 성경에 나타난 인물입니까? 아니면 그 말씀을 읽는 사람입니까? 그 말씀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 중에 누가 그 말씀의 당사자가 될 수 있습니까?
이러한 의문들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늘 성공과 축복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잘되고 흥왕하는 사람은 늘 멀리 있는 어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만 같습니다. 결정적으로 내 자신과는 그러한 모든 약속과
소망은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고민은 점점 절망으로 혹은 무덤덤함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3. 하나님은 빌립을 보내셔서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게
하셨다.
여기서 하나님의 성령께서 빌립을 인도하셔서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게 하시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에디오피아 내시의 이러한 고민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가 구원의 문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조금만 더 안으로 들어오면 되는데 그러지 못하고 헤메고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마치 주소지 하나만 가지고 목적지를 찾는데 그
근처에서 제대로 찾지 못하고 헤메는 것과 같습니다. 조금만 도와준다면 목적지에 들어올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는 빌립으로 하여금 에디오피아 내시에게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그가 완전히 찾아내지 못한 보화를 완전히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은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읽는 것을 것을 깨닫느뇨?" 그러자 에디오피아 내시가 대답했습니다."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올라와서 같이 앉으라"
그 다음에 빌립은 찬찬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가 알고자 하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그 일을 통해서 인간들을 세상 죄에서 구원해주시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을
믿을 때에 구원을 얻는 바로 당사자가 됨을 설명했습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에디오피아 내시는 모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가 헤메며 찾고 있던
바로 그 목적지를 찾아내었습니다. 그 다음에 그 안으로 들어가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36절을 보십시오.
"8: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8:37 (없 음)
8:38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 약속의 당사자임을 알지 못할
때,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의 이야기임을 깨닫지 못할 때 주님은 우리를 인도해 주셔서 설교말씀을 듣게 하십니다. 그 분야에 관한
위로와 격려와 권면을 듣게 하십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주님의 모든 축복과 소망과 도우심의 대상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생명을 발견하고 기쁨을 누리고 소망으로 넘쳐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의
삶이었습니다.
4.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그 도우심을 전하는
자들이 되자.
이러한 삶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계속 진행됩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약속과 소망을 찾아 떠나고 그 약속과 소망을 성취합니다. 그 때마다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그것이 동일한 믿는 사람들의 권고와 권면이며
설교말씀이며 성경공부입니다.
이제 우리가 그러한 은혜를 받아 누리며 살고 있다면 그 은혜로 다른 사람을 인도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저 받은 은혜대로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목적지를 찾아 떠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목적지를 찾지 못해 근처에서 헤메고 있습니다. 조금만 도와준다면 그들은 주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주님과 더불어
먹게 될 것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이 그들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우리를 변화시켰듯이 말입니다.
이러한 만남을 주선하고 인도하는데에 더욱 노력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늘 그러한 만남을 누리며 즐거워해야 하겠습니다. 계속되는 이러한 구원으로의 스스로 나아감과 다른 사람을
인도함이 우리에게 늘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