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전도]] 44행 17; 22-27 복음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을까2Loading the player... [크게보기]
44행 17; 22-27 복음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을까2_2v
2020. 7. 12. 주. 주일오후. 영상설교
*개요: 전도비전 [행]17: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행]17: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행]17: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행]17: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행]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행]17: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복음을 전파합니다. 사람들에게 전도를 하고 구원받는 도를 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며, 그 복음이 듣는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전파는 나를 살리는 것이기 보다는 남을 살리는 것입니다. 복음전파는 나의 공덕을 위함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남의 생명을 위함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럴 때에만 복음 전하는 자의 모습이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헌신적이며 그리스도께 순종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복음을 들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며 그리스도의 소식을 전하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방법에 대해 소개합니다. 그런데 늘 복음을 전파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라는 문제입니다. 어떻게 해야 복음을 전파할 때에 좀 더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어색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복음을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고민거리입니다. 여기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오늘 바울의 아덴에서의 설교에 관한 본문을 함께 보았습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성경본문이 지금까지 설명한 복음전파에서의 문제점들에 대한 대안과 지침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이 바로 그러한 상황에서 행했던 복음전파의 모범이 되어서 자신의 경험담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했던 방법이라면 역시 우리도 기쁘게 따라할 수 있는 방법이고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는 방법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이 지금 거하여 있는 ‘아덴’이란 곳은 다신교를 숭배하는 지역입니다. ‘아덴’이라는 지명은 우리에게는 ‘아테네’라고 해야 더 친숙한 이름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아테네는 헬라신화가 자리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들의 신은 여러 가지 모습과 여러 가지 종류로 나타납니다. 제우스, 헬라, 포세이돈, 비너스, 기타 여러 가지 신들이 나타나는 곳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여러 종류의 모습과 하는 일이 다른 신들을 숭배하였고, 그들을 위한 신전과 제단을 준비하고 그 신에게 경배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철학이 발달하여 일반 신화에 의한 단순한 신화적 사고에 머무를 뿐만 아니라 철학적이며 사색적인 정신적 사고에도 관심을 기울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신화적 사고와 정신적 사고가 이렇게 한 곳에서 공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신화도 역시 정신의 산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비록 여러 가지 신들이 등장하는 신화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러한 신화는 그들의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여 정신과 삶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동일한 성정과 능력의 한계를 가지고 단지 인간에게 유리한 일들을 하고 있는 인간에게 부속된 신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신은 인간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표준이 되거나 완전한 신뢰관계가 형성되는 존재가 아니었고 신화는 단순히 신화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행]17: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이러한 아덴 사람들에게 새로운 신에 대해서 알게 된다는 것은 자신들의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흥미거리에 지나지 않았고, 또한 이렇게 또 다른 신 다시 말해서 무수히 많은 신의 목록 중에 하나를 더 추가한다는 것은 별 어려울 것도 없고 전혀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닌 그저 그렇고 그런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처음 이 아덴에 와서 그들에게 생소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전하였을 때, 그들은 호기심과 궁금함으로 바울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바울이 말하는 신은 자신들이 아는 신외에 또다른 일을 하는 다른 지역의 신인가 보다 생각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결국 아덴 사람들은 몇 사람과 변론을 벌이고 있던 이 바울을 데리고 그들의 대화의 광장인 아레오바고로 데리고 갔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이 곳은 원형극장의 형태로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바로 그러한 장소에서 사도 바울은 아덴 사람들이 앉아있는 그 앞에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신뢰와 확신에 넘쳐서 증거하였습니다.
바울은 아덴사람들의 종교심과 여러 가지 신들을 숭배하며 그들의 세운 우상들을 말하였습니다. 그 우상들 중에는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쓰인 우상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신이 있을까봐 친절하게도 그 신을 위한 우상까지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바로 이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쓰인 우상이야기를 통해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그 우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바울은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행]17: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복음의 접촉점을 찾는 것은 복음전파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접촉점이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도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구원의 진리를 알려주기 위해 다리를 놓는 것이며, 분위기를 무르익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음전파의 첫 단계가 늘 가장 중요한 것이었음을 우리는 여러 가지 경우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어느 순간이든지 이러한 최초의 복음전파의 순간은 중요하며,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이 전개될 수 있지만, 이러한 모든 복음 제시의 첫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공통적인 특징은 바로 그 상황과 관계된 것이 나타나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그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미지의 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신은 우주와 천지 만유를 지으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인간이 지은 전에 계시는 것이 아니며, 인간에게서 무엇인가를 받아야 하는 분도 아닙니다. 오직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행]17: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행]17: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여기서 우리는 그 신이 누구신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전에 듣지 못한 이름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세상을 지은 신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신은 한 장소에 계신 분이 아니며, 무엇인가 채워져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요? 그 신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그들이 설사 인정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이 세상과 이 우주의 창조자가 계시며 인간이 이 세계를 창조한 것은 아니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 바울의 아덴설교의 핵심이 있습니다. 이 세계를 창조하는 분이 있느냐, 없느냐. 과연 있다면 그는 누구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바울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계의 창조자가 계시다. 그분은 한 장소에 국한되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여 주시는 분이시다!’ 그의 복음전파는 계속 이어집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시고 땅에 거하게 하시고 거주의 한계를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함이라는 것입니다. “[행]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행]17: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이 말씀의 뜻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으신 만물 속에 인간을 두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창조의 손길이 느껴지는 곳에 인간의 거주를 제한하셨습니다. 인간을 황량한 북극이나, 죽음의 사막에 두지 않으시고, 그리고 지구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으시면서 하나님이 만드신 이 지구에서 그 창조의 손길을 느끼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을 더듬어 발견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느껴지는 이곳, 하나님의 창조의 만물들이 존재하는 이곳, 더불어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하심이 존재하는 이곳. 이곳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더듬어 찾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실로 그분은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분이 아니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 사도가 아덴에서 선포하였던 설교의 핵심이었습니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인간이 자신을 찾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을 찾는 자에게 생명을 주신다. 오늘날 복음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복음을 희석화시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야만 복음이 잘 전파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알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 했던 말과는 좀 다르다는 것을. 그러면 처음의 복음 전파자는 거짓말 하는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접촉점을 찾고 다리를 놓고, 상대의 환경을 충분히 고려하여 복음을 전파할 지라도 결코 그 복음의 내용에 있어서는 타협을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자동차를 파는 사람들이 무엇이 대해서 말합니까? 집을 소개하는 사람들이 설명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와 같이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오직 진실하고 정직하게 복음의 대상인 하나님을 말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때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전도3단계: 방법적용> 1) 하나님께는 계획과 능력이 있습니다. 2) 예수님께는 희생과 용서가 있습니다. 3) 성령님께는 동행과 충만이 있습니다. 4) 교회에는 의미와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전도자가 올바른 답변을 주는 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음을 말할 때 하나님의 계획과 능력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복음의 전파는 복음의 희석이 아니라 복음의 전달임을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심판하심에 관한 것과,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앞으로의 일들에 대한 증거를 전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일체의 희석이나 협상은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증거하는 자들입니다. 전파하는 자들입니다. 옳은 것을 전파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거짓을 내 맘대로 전파한다면 우리를 보내시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행동이 될 것입니다. 복음전파에 있어서 오늘도 우리가 가장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는 전하는 자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음을 잘 기억하고 전파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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