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전도]] 42눅 12; 8-12 주를 시인하거나 혹은 부인하는 사람들2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pdf]
42눅 12; 8-12 주를 시인하거나 혹은 부인하는 사람들2_2g
2018. 4. 15. 주. 주일오후.
*개요: 전도비전, [눅]12:8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눅]12:9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 [눅]12:10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눅]12:11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눅]12:12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이심을 시인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시인한다 혹은 시인하지 않는다 라는 것은 그 사람에게 영광 혹은 수치가 됩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도 우리가 주님을 시인하고 혹은 시인하지 않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 영광이 되거나 혹은 수치가 됩니다. “[눅]12:8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우리가 예수님을 시인할 때 우리 자신이 수치스러워 질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다닌다고 하면 아무래도 행동과 언행에서 더 부끄러울 것 같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부인한다면 오히려 더 당당하고 떳떳하고 자연스러워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연계되어 있다는 부담감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예수님을 부인할 때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시는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시인하지 않으면 부인하는 것이고 그 부인함으로 인해 동일하게 부인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부인할 때 주님도 우리를 부인하십니다. “[눅]12:9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 어쩌면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 냉정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부인해도 예수님은 시인해주시기를 바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부인함은 단지 부인함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결국은 주님을 모욕하고 비방하는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으로부터 아주 멀어지는 자가 되고 주님의 원수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주님도 그를 부인하십니다. 그 모든 것의 시작이 바로 수치스럽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고 자유롭고 홀가분하게 되기를 원해서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족함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시인하면 시인한 대로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되지만 우리가 주님을 부인하면 부인한 대로 주님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시인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께 의지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시인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해 보십시오. “[눅]12:11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여러분은 어떤 사람 앞에 혹은 많은 사람들 앞에 혹은 권세 있는 자 앞에 초대되거나 인도함을 받아 가게 될 것입니다. 살다 보면 그런 날이 반드시 있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혹은 식사 자리에서, 혹은 만남의 시간 속에서 우리를 주님은 그곳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우리가 주님을 어떻게 시인할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은 성령께서 말하게 하시는 것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눅]12:12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성령을 의지하면 그 자체가 주를 시인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주님을 시인할 수 있습니다. 시인한다 혹은 부인한다는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의지하는가 혹은 의지 하지 않는가라는 과정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의지하는 자는 시인하게 되고 의지하지 않는 자는 부인하게 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주를 부인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도 그가 주님을 왜 부인하였는지를 모를 수 있겠지만 하나님은 그가 왜 그렇게 했는지를 아십니다. 그는 처음부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을 부인한다는 것은 주님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말씀 속에서 중요한 두 가지 경우가 나옵니다. 하나의 경우는 탐심에 사로잡혀 정말 생각해야 하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눅]12: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눅]12: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눅]12: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그들은 유산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을 고백하고 인도하심을 받고자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 이것이 바로 주를 부인하는 것이며 주님과의 관계를 숨기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과의 관계를 나타내지 않으면 주님과의 관계를 부인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것을 깨닫고 우리는 삶 속에서 예수님을 시인함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나타내시는 복음을 증거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 경우는 하나님께 대해서 부요하지 못한 자의 모습입니다. “[눅]12: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눅]12: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눅]12: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눅]12: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눅]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눅]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부자가 자기 소유의 풍족함 속에서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로 인해서 하나님께 대해서 부요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시인하며 살지 못했습니다. 그로 인해서 그의 모든 능력과 달란트는 자신의 것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는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부인하며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시인하며 살고 있습니까? 주변에서 주님을 시인하십시오. 여러분을 아는 사람들이 여러분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임을 알게 하십시오. 그렇게 전도하십시오. 이번 한 주 주님을 더욱 시인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2교육설교 관련글[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