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전도]] 42눅 10; 25-29 영생을 얻은 자로서 해야 하는 일2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pdf]
42눅 10; 25-29 영생을 얻은 자로서 해야 하는 일2_2
2018. 4. 1. 주. 주일오후
*개요: 전도비전 [눅]10: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눅]10: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눅]10: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눅]10: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눅]10: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과 영생을 얻은 자들입니다. 이렇게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은 자들로서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영생을 얻은 자들이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과 어떤 율법사가 나눈 대화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속에서 영생을 얻는 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에 대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와서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느냐고 물었습니다. 사실 그는 율법사여서 율법을 잘 알고 있는데도 예수님께 와서 이렇게 물은 것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은 것입니다. “[눅]10: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마치 목사님이 예수님께 와서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느냐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그 스스로가 너무 잘 알 텐데도 이렇게 물은 것을 예수님이 어떻게 대답하는가 시험해 보려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질문할 때에도 정말 몰라서 물을 때가 있고 알고 있지만 어떻게 대답하는가 보려고 물을 때가 있습니다. 율법사는 예수님이 하도 파격적인 말씀을 많이 하시니까 예수님이 율법을 파하려고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율법을 알고 있는지를 떠보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율법사에게 율법에는 무엇이라고 되어 있느냐고 되물으십니다. 예수님이 정말 강조하시는 것은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문제이자 앞으로 해야 하는 목표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이러한 대화를 통해서 그 율법사는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말씀하시는 바에 점차 다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영생을 얻게 하는 율법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말합니다. “[눅]10: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그의 말은 옳았습니다. 예수님도 그가 알고 있는 것이 옳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나 율법사는 동일한 영생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예수님은 정말 중요한 것은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눅]10: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이 말이 우리들에게 보여지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영생을 얻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행위로 구원을 얻는 방법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것이 어떻게 행위가 되겠습니까? 그것은 오직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우리가 아는 대로 주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말씀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는 요한복음 6장의 말씀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요]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전자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지만 후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원래는 이 둘은 같은 의미입니다. 다만 다른 의미로 보일 뿐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천국에 가기 위해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였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웃을 사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의 생각에는 바로 이웃이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근원이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가 아니라 왜 고통받은 인간이 되고 그 인간을 도와주는 것이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가 하면 천국을 너무 사모한 나머지 하나님 조차 목적이 아닌 방법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웃도 사랑하고 그래서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으로 영생을 얻게 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들을 바로 하나님이 다시 살리시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더욱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요한복음 6장 44절의 말씀입니다. “[요]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면 그리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면 우리가 사랑한 그 예수님이 우리를 살리십니다. 이웃을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고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이웃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통해 알게 되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자선이나 봉사나 희생이나 헌신인가요? 이웃사랑보다 더 우선된 것이 있으니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알이 먼저인가 닭이 먼저인가라는 질문에서 분명 닭이 먼저입니다. 애기가 먼저냐 어른이 먼저냐 하면 어른이 먼저인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 사랑이 먼저냐, 이웃사랑이 먼저냐 한다면 역시 하나님 사랑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라 이어서 이웃사랑을 하면 됩니다. 구원을 위해서 이웃사랑이 아닌 믿음으로 인해 이웃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믿지 않는 자들이 전도되기를 위해 노력할 수 있습니다. 그 속에 진정한 구원과 영생의 삶이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해야 하는 일을 깨닫고 더욱 영생에 나아가며 구원을 이루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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