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하지만그가목숨이남아서혹은원래이러한어려움을즐겨하는성격이어서그모든고초를자청하는것은아니었습니다. 우리모두와같이그도역시인간입니다. 고난자체를즐거워하지는않았습니다. 그랬다면그는제정신이아닌사람일것입니다. 그가그렇게한이유는그에게목표가있었기때문입니다. 그목표는주예수께받은사명을이루려고하기때문이었습니다. 그할일을마치고자하였기때문에그모든일들을감당하였던것입니다. 그것은 그 자신에 대하여 갖는 마음이었고 바로 주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그러한 목표에 대한 분명한 의지가 있었습니다. 그 목표를 이해할 때 우리는 바울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목표는없는것을성취하며미래의것을취하고자하는것과는달랐습니다. 이것은있는것을벗고자함이며재앙과심판을피하고자하는마음이었습니다. 이 마음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더욱절박하고간절하며필사적이되었습니다. 이와같은앞에서끌고뒤에서당기는마음이결국에는 "꺼리지않고하나님의뜻을다전하였다"는고백을낳을수있었습니다. 그러므로그의열정적이고필사적인모습뒤에는안팎에서그를밀고당기는강인한이유가있었던것입니다.
“28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3)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이 말은 너희도
자기를 위하여서 또는 온 양떼를 위해서 삼가라는 말입니다. 바울의 입장은 바로 우리의 입장이기도 합니다. 그의모습은그저대단하다고 여기기만할것이아니라앞으로우리의모범이되어서우리가따라야하는삶이됩니다. 그가자기를위하여또온양떼를위하여삼갔던것과같이우리도자신을위하여그리고온양떼를위하여삼가야합니다. 그리고그의사명과동일한것을우리도감당해야합니다. 그럴 때 우리 자신이 유익되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됩니다.
여러분이 운동팀의 감독이라고 해보십시오. 여러분의 팀이
잘되는 것은 누구에게 좋은 일입니까? 바로 여러분 자신에게 좋은 일입니다. 또한 그것은 누구에게 좋은 일입니까? 바로 선수들에게 좋은 일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운동팀의 감독으로서 이 팀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만 합니다.
여러분이 여러 명의 직원이 있는 소규모 점포의 매니저라고 해보십시오.
그 점포가 잘되는 것은 누구에게 좋은 일입니까? 바로 여러분에게 좋은 일입니다. 또한 그것은 누구에게도 좋은 일이 되겠습니까? 바로 직원들에게도
좋은 일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 일을 열심히 해야만 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상황에서건 다른 사람들을 담당하고 있는 리더라고 할 때 항상 이러한 원칙이 적용됩니다. 그래서 그러한 원칙속에서 바울의 목표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또 역시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속에서 자기 자신만 잘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다같이
잘되는 것이 진짜 잘되는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나만 잘되고 싶은 마음이 솟구칩니다. 결국 그로 인해서 다 망하게 되어버립니다.
에스더는 유대인이었지만 바벨론 나라에서 왕후로 간택되어서 왕궁에서 편안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만이라는 자는 유대인 모르드개를 미워한 나머지 모든 유대인들을 살육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모르드개는 그 계획을 알게 되고 에스더에게 왕에게 간청해서 유대인들을 살려달라고 말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에스더는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왕에게 찾아가서 만나고자 하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음을 말합니다. 그때 모르드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스더의 사명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말해 주었고 이 말을 들은 뒤 에스더는 마음에 결심을 합니다.
그리고 죽을 각오를 하고 왕에게 찾아갔고 그녀는 죽지 않으면서도 자기 민족 유대인들의 위험을 고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한번우리의사명을되새겨봅시다. 우리는하나님께서주신절박한위치에놓여있습니다. 우리가하나님을찬양하고하나님을기뻐하고하나님을믿고의지하고따르고하는모든관계속에는우리의것을주님께서맡아주관하여주시는축복과주님의것을우리가감당해야만하는책임이있습니다. 이것이우리가결코외면할수없고외면해서도안되는우리의사명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전할 복음의 네번째 전파내용입니다.
우리는 이것은 전도할 수 있습니다. 사명을 감당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말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러한 자들이 하나님의 기업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맡겨주신 일들을 생각하고 다시 돌아오게 하십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종들의 풍요로움을 생각하듯 우리를 깨우치시고 우리를 돌이키게 하십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바로 이러한 부르심과 사명을 말해 주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