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3:4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3:5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3: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3: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3: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3: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3:10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놀라운
성령충만을 통해 교회의 조직이 생겨나기 시작한 뒤, 성령의 역사하심은 여전히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그러한 역사하심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하신 기적과 병고침과는 다르게, 성령께서는 사도들을 통한 권세를 행하심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는 사도들을 영화롭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초대교회의 사건 속에서 전도의 중요한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준다라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속에서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는 사도들에게서 무엇인가 얻을 수 있을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사도들에게는
친숙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날마다 그 시간에 그 장소에 앉아있던 자였고, 사도들은 늘 그 시각에 기도를 드리러 성전에 올라가곤 하였습니다. 친숙하였던
자였고, 늘 보던 자였지만, 다시 한번 그 앉은뱅이는 사도들을
간절히 쳐다보았습니다.
“행3:5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그리고
그들에게서 무엇인가를 얻기를 기대하였습니다. 앉은뱅이에게는 사도들이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바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에게 사도들이 준 것은 금과 은이 아닌 변화의 기적이었습니다. 한번도 걸어보지 못한 그에게 걸을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준 것이었습니다.
“3: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3: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이 사건은
큰 놀라움을 일으켰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후로 이런 놀라운 일이 다시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크게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바로
그 사람이 기뻐 뛰었습니다.
“3: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그 다음에는
놀라서 모여드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베드로는 외칩니다. 이
모든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자신의 이름이나 능력으로 한 일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 것처럼 그분의 제자들은 그분의 이름의 권세로서 능력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사와 이적들의 목표는 분명히 그들 자신의 영광과 권세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였음을 분명히 고백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이후에 3장 16절에서 이점을 분명히 설명하였습니다.
“행3: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이 모든
것은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 위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이 모든 일은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가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예수 이름의 권세를 보이시기 위해서 이러한 일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앉은뱅이가 그저 금과 은이
필요한 자라고만 생각했지만, 베드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도들을 바라보았을 때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은혜를 선포하였습니다. 그로 인해서 그의 육체는 그의 믿음에 따라 반응하여서 완전히 낫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로 일을 하였던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영혼을 필요를 깨닫게 하심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알게 하십니다. 물질적인
필요나 생활의 유익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필요와 그 의미를 깨닫게 하심으로 예수님을 보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전도할 수 있고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복음 전파에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이제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에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해 주십시오. 히브리서 7장22절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7:22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예수님이
모든 언약중에서도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모든 얻을 수 있는 것 보다도 가장 좋은
것은 바로 구원의 언약입니다. 그 놀라운 언약을 바로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받는 자들이 그것을 누릴 때 그들은 새로운 소망이 생깁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더 원하시는 구원이 그 사람들에게 이루어지고 그들의 영적인 필요를 받아들이게 하여 그로 인해서 놀라운 구원을 얻게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기뻐 뛰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주시는
그것으로 채워질 때에 그들의 삶이 변화될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더 좋은 것으로 증거하고 그로 인한 구원을 전파하시는 하나님의 지혜가 여러분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들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넘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