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26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27이는 사람으로 1)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28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1)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복음을 전하고자 할 때에 전도대상자를 결정하고 그의 마음의 상태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지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대상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지 그렇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자기자신에만 관심을 가지면 유리를 통해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거울을 통해 사람을 보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전도를 하면서 자기 자신을 보는 것이 됩니다. 전도를 하는 것이 자신을 보는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자꾸만 보면
전혀 전도가 되지 않고 오히려 실족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계속 상처를 받고 받으면 나중에는 복음에 대해서 괴로움과 수치심만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렇게 되지 않도록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해서 사람을 보게 되면 비로소 필요한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복음이 있습니다. 그 복음은 바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에 대한 것이며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심판으로부터 구원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것이며 그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는 원리에 대한 것입니다. 이러한 복음이 바로
우리가 만난 그 사람에게 필요합니다. 이 간단한 원리를 온전히 증거하며 온전히 전파할 때에 비로소 우리가 믿는 복음이 명확해지며 모든 사람에게
쉽게 전할 수 있는 복음이 바로 우리 자신을 통해서 구체화됩니다.
이러한 구체적인 복음의 내용을 우리가 알고 그것을 전하기 위해서 우리는 복음의 네 가지 단계를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창조-타락-구속-영생]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단계에 따라서 하나님의 복음을 설명할
때에 올바르게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습니다.
1. 창조 : 하나님은 당신에게 계획과 능력을 보여주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장 먼저 전할 수 있는 복음의 첫 번째 단계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고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그것을 능력으로 이루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을 알리고 설명할 때에 우리는 창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 창조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그 이후에 진행되는 모든 복음에
관한 설명의 기초가 됩니다. 오늘 성경말씀에서도 이러한 가장 기초적인 복음의 첫 번째 단계가 설명되고 있습니다.
“24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이십니다. 그래서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신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렇게 크신 하나님을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합니다. 그 은혜를 누리고 살고 있지만 그 가치를 잘 알지 못합니다. 이는
마치 나라가 있을 때에는 나라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지만 막상 나라가 사라지고 나면 그 나라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 소중함을
알게 하기 위해서 나라가 없어지게 한다든지 나라가 사라지게 한다든지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 소중함과 가치는 알려주어야 하고 깨달아야만 합니다.
복음의 내용이 전달 될 때에 잠재적인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의미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존경받는 신학자에게 묻기를 자신에게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신학자는 잠깐 생각하더니 태양을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태양을 보면 눈이 멀거나 눈이 부셔서
볼 수 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신학자는 하나님의 만드신 태양도 못보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보려고 하느냐고 말해주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 믿음을 단지 감각을 통해서만 얻으려고 한다면 어리석은 일입니다. 믿음은 오직 깨달음으로만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우고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타락’입니다. 타락을 통해서 사람들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함으로서 더 큰 죄악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그 잘못을 깨달으면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가 형성됩니다.
2.타락: 하나님(예수님)은 당신을 위해 희생과 용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입니다. 또한 심판자와
죄인의 관계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관계 속에서 올바르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지 그렇지 않고 하나님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애초부터 바르지 않은 관계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조차 막혀버리게 됩니다. 올바르게 바라볼 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희생과
용서를 베푸신 분이십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셨습니다. 죄로 인해 우리는 죽게 되었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아덴 사람들에게 바로 그 예수님의 죄사하심과 용서하심을 말합니다.
“30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알지 못하던 시대에 하나님이 허물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그들이 복음에 대해서 거부한 죄가 없다는 뜻이지 그들이 의인이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제 복음이 전파된 다음에는 회개하게 하시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셨습니다. 그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는 구원의 원리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이 바로 놀라운 믿음의 증거입니다.
그것을 믿을 때에 우리도 구원을 받고 생명을 얻게 되리라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애초에 이것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으면 우리도 죽은자였으나 다시 살아나는 자가 되는 것이고, 그것을 믿지 않으면 우리도 역시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믿지 않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 결과는 심판입니다. 믿는 것은 과학에 근거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그로인해서 얻게되는 구속을 사모할 때에 비로소 믿음을 얻게 됩니다. 이것을
반드시 받아들이게 하려고 이러한 원리를 스스로 깎아 내려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구원자체도 스스로 깎아 내려지게 되어버립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값에 대한 정당한 피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은혜가 올바르게 증거되고 그 증거를 받아들일 때에 그로 인한 죄사함도 온전한 것이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죄사함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학생이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해서든지 그냥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올바르게 들어가지 않고 거짓되게 들어간다면 결국에는 그 대학생활을 감당할 수가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끊임없는 우리 자신의 회개와 그 회개를 통해 죄사함과 그 죄사함을 통한 기쁨과 감사를 누리게 되는 것인데 우리의 죄성에 대한 자각이
없다면 결국은 그러한 구원이 우리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온전한 구원을 얻기 위해서 온전한 죄사함을 받아야 하고 온전한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
온전한 회개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 복음의 내용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구속으로 나아갑니다.
3.구속: 하나님은 당신에게 동행과 충만을 내려주십니다.
이제 구속은 창조와 타락에 이어지는 놀라운 구원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죄인된 인간에게 하나님이 행하시는 아름답고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 주시고 함께 하시며 더욱 그 은혜로
채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행하시고 인도하시며 충만하게 하십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부족한 모습에서 하나님의 온전한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구속되어지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군인이 되는 과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보통 사람이었던
청년이 훈련소에 입소를 하고 훈련을 거쳐서 늠름한 군인이 됩니다. 특히 장교로 임관하는 사람들의 변화는 놀랍습니다. 그들이 나아가서 주어지는 병사들을
이끄는 장교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훈련도 힘들지만 그로 인한 변화가 이전의 모습을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게 됩니다.
우리를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도록 주님은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계속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그 은혜로 채우셔서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도록 만드십니다. 이 모든 은혜를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이 모든 과정의 마지막은 영생입니다.
4.영생: 하나님은 당신에게 상급과 권세를 내려주십니다.
구원의 결국은 영생입니다. 그리고 그 영생은 그냥 오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영생 속에서 지금까지 살았던 삶에 대해서 상급과 권세를 내려주십니다. 그래서 그 영생은 지난 삶에 대한 평가이자 결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그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영생은 구원받은 자로서 누리는 온전한 기쁨입니다. 우리가 오래 살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다시는 죽음이나 사망이 없는 온전한 구원을 약속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그 영생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상급을 받는 것이 당연하고 그 상급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구원을 누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것을 바라볼 때에 온전한 구원이 이루어지기 전 현재의
삶을 더 의미있게 보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복음의 전파를 통해서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보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증거하는 복음을 통해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형성되며 복음이 전달되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전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셨던 은혜가 또 다른 그 누구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며 그렇게 사용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