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상담]] 59약 3;17-18 화평은 관계에서의 화목함을 얻고자 하는 결심이다2Loading the player...
59약 3;17-18 화평은 관계에서의 화목함을 얻고자 하는 결심이다2_2
2020. 6. 7. 주. 주일오후.
*개요: 상담비전 [약]3: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약]3: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하나님 안에서의 결심은 하나 하나 생각해 보면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주제를 묵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결심주제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결심: 사랑, 희락, 화평, 인내, 긍휼, 양선] 어쩌면 이 주제들은 쉽게 와 닿지 않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전혀 익숙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경험을 가져보지 못한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혹은 정말 이런 결심들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잘 알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이나 희락이 하나님께 대한 마음에 근거하여 생겨나는 것처럼, 오늘 우리가 보게 될 화평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화평은 하나님 안에서 갖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 위에 설 때에 비로소 그 은혜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에서 떠났을 때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절망하게 됩니다. 이 소망과 절망은 전혀 반대되는 것입니다. 다음의 감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감정: 미움, 분노, 절망, 두렴, 죄책, 수치] 이 감정들을 생각해보면 이것이 얼마나 어둡고 음침하며 힘들고 괴로운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딱 떠오르지는 않아도 예전에 그런 감정을 가졌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얼른 그 감정을 되살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감정을 극복하고 결심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은혜를 생각해야 합니다. 다리를 건너지 않고서는 건너편으로 갈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은혜를 생각하지 않고서는 결심으로 넘어갈 수 없습니다. 그 은혜를 생각하면 놀라운 결심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 은혜를 알고자 할 때 오늘 성경말씀에서 우리는 화평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의 설명을 듣게 됩니다. “[약]3: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약]3: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화평은 단순한 수동적인 상태가 아니라 적극적인 노력의 의지입니다. 그래서 화평이 감정이 아니라 결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화평에 대한 설명은 화평은 위로부터 난 지혜이고 화평은 화평케 하려고 하는 것이며 그로 인해서 화평은 의의 열매를 거둔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가능한 이유는 화평이란 하나님께로부터 난 지혜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로서 조용하고 온순한 성격의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별히 그의 삶 가운데에는 화평케 하는 자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창세기26장입니다. “[창]26:19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창]26: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창]26: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창]26: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이삭의 종들은 이삭의 지시를 받아서 움직이는 자들입니다. 이삭이 종들이 다투지 않았다면 이삭이 다투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옮기고 자신이 옮겨서 세 번씩이나 옮겨서 우물을 팠는데 결국 그의 장소는 더욱 넓어졌고 그곳에서 더욱 번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삭의 경우에도 나타나지만 화평이란 결국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고 하나님께서 도우시기를 간절히 바람으로 갈등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할 때에 비로소 이룰 수 있는 일입니다. 화평하려고 하는 것이 목표가 될 때에 그에 따른 행동을 하게 되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화평을 이루게 되면 그로 인해서 화평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몸에서 땀이 나게 하려면 운동을 하거나 사우나를 하면 됩니다. 그러면 건강하게 땀이 나고 몸이 더욱 좋아지게 됩니다. 그러나 저절로 땀이 나는 것은 별로 좋지가 않습니다. 몸에 문제가 있거나 불안한 상태에서 땀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화평은 이루려고 노력할 때에 그 화평이 의미가 있고 보람이 있지 단순히 화평이 있는 것을 즐기는 것은 삶을 안이하게 하고 무기력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래서 의지적으로 화평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화평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을 닮은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화평이 주는 진정한 결실을 이루기 위해서 자기 몸을 드리 셨습니다. “[엡]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엡]2: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엡]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원하신 것은 화평을 통해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육체로 율법을 폐하시고 죄인을 의인으로 만드셔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하게 하셨습니다. 그 화평케 하심의 결실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많은 갈등의 순간에서 우리는 애초에 보았던 감정에만 치우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우리는 [화평]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화평케 되기를 원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화평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을 닮은 자녀들이 바로 화평을 위해서 살아가게 됩니다. “[마]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우리는 삶 속에서 이러한 화평의 복을 누리기 위해서 결심을 해야 하겠습니다. 화평이 우리의 목적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정한 화평의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누군가 싸움이 났을 때 누군가 갈등이 있을 때 누군가 분쟁 속에 있을 때 화평하게 하는 한 사람의 역할로 말미암아 중재 될 수 있고 해결될 수 있음을 기억하며 바로 우리가 그렇게 화평의 열매를 얻게 하는 자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2교육설교 관련글[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