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상담]] 43요 17; 1-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예수님의 희생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
43요 17; 1-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예수님의 희생_2c
2019. 8. 11. 주. 주일오후.
*개요: 상담비전, 하나님의 은혜, [요]17: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요]17: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하나님의 세 번째 은혜는 희생입니다. 그 희생은 예수님을 통해서 잘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하나님의 희생을 생각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분명 아담과 하와의 죄악 이후에 하나님의 괴로움이 있었지만 그러한 하나님의 마음은 인간에게 잘 깨닫게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을 위해서 죽으셨을 때에 그 은혜는 잘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중요한 은혜는 바로 희생입니다. 이러한 희생의 은혜를 기억할 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이와 같은 희생의 은혜를 삶 속에서 계속 기억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 삶을 지탱하고 있고 우리를 끊임없이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어 주고 있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는 바로 ‘희생’입니다. 그 희생 속에서 우리는 하루 하루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가고 있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그러한 예수님의 희생의 은혜를 잘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1절에서 우리는 십자가에서의 고난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예수님께서 간절히 기도하셨던 것이 무엇인가를 보게 됩니다. “[요]17: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 간절히 바라신 것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선을 바라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자신을 죄의 속제물로 드리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의 죄악을 사해 주시고 인간이 그 죄악으로부터 나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선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것을 희생의 구도로 보면 그 의미가 더욱 확실해 집니다. 예수님께서 악으로 나아가서 그 악을 해결해 주셨기 때문에 죄악 속에 있는 인간이 선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악으로 나아가신 것은 더욱 선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악에 머물러 있지 않으시고 온전히 선으로 나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 이후에만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이전에도 하나님과 동행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하나님께 돌릴 영광에 대해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서는 구조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구조대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구조대가 항시 준비를 하고 구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합니다. 비록 현재에는 아무런 일이 없다 하더라도 미래에 생길 어려움을 생각한다면 그 구조대가 존재합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은 가장 최고의 선을 이루신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악을 사해주시면서 보이시는 선은 가장 최악의 악조차도 용서해주시는 놀라운 죄사하심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러한 최고의 선을 이루시는 권세를 예수님에게 주셨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요]17: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권세는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였습니다. 그 권세는 만민을 가장 최고의 선으로 인도하시는 권세였습니다. 그래서 만민에게 영생을 얻게 하고 만민을 그 영생을 얻게 하도록 인도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이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희생의 의미가 나옵니다. 희생은 단순히 고통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희생의 근원에는 가장 숭고한 선이 있습니다. 그 가장 숭고한 선은 만민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와 그 의를 이루시는 예수님의 희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죽음에 내어 주셨고 십자가 사건 이후에 다시 부활하셔서 우리를 인도하여 그 영생으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그 희생을 깨달을 때 우리는 예수님의 인도하심의 의미와 가치를 따라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선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희생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고 희생되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희생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희생은 가치를 잃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얻는 것이고 그 가치는 숭고하고 고귀하며 높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래서 희생은 귀한 것이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심은 가장 큰 선입니다. 그 선의 유익을 모든 인간이 누리고 있습니다. 그 희생이 아니었다면 구원받는 사람도 구원받는 기회도 없이 모두 자신의 죄로 인한 심판에 이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희생의 가치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며 깨닫게 하십니다. 이 희생의 은혜를 알게 되면 선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희생이 무엇인가를 알 때 비로소 영생이 의미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희생 속에 우리에게 주신 선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 희생이 없다면 선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그것이 악에 동참하는 것이 되거나 혹은 가장 큰 악에 이르게 되어 버립니다. 예수님 당시에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큰 악을 저질렀는지를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희생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악을 버리고 악으로부터 구원하며 악을 멀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희생의 은혜로 살면서 하나님의 평안과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2교육설교 관련글[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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