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상담]] 10삼하17; 1-4 인정욕구는 자신의 존재감에 집착한다2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
10삼하17; 1-4 인정욕구는 자신의 존재감에 집착한다2_2c
2019. 7. 21. 주. 주일오후.
*개요: 상담비전, 욕구에 대한 이해 [삼하]17:1 아히도벨이 또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사람 만 이천 명을 택하게 하소서 오늘 밤에 내가 일어나서 다윗의 뒤를 추적하여 [삼하]17:2 그가 곤하고 힘이 빠졌을 때에 기습하여 그를 무섭게 하면 그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도망하리니 내가 다윗 왕만 쳐죽이고 [삼하]17:3 모든 백성이 당신께 돌아오게 하리니 모든 사람이 돌아오기는 왕이 찾는 이 사람에게 달렸음이라 그리하면 모든 백성이 평안하리이다 하니 [삼하]17:4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그 말을 옳게 여기더라 [삼하]17:5 압살롬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도 부르라 우리가 이제 그의 말도 듣자 하니라 [삼하]17:6 후새가 압살롬에게 이르매 압살롬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히도벨이 이러이러하게 말하니 우리가 그 말대로 행하랴 그렇지 아니하거든 너는 말하라 하니 [삼하]17:7 후새가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번에는 아히도벨이 베푼 계략이 좋지 아니하니이다 하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욕구를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욕구는 모든 감정을 일으키는 원인입니다. 또한 그 감정으로 인해 문제를 일으키는 근원이기도 합니다. 그 문제가 여러 삶의 영역으로 나타나게 될 때 이 모든 일의 핵심에는 욕구가 있습니다. 오늘은 ‘인정’ 욕구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한 사람이 여러 가지의 욕구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은 어쩌면 여러분들에게도 깊이 와 닿는 것일지 모릅니다. 인정이란 한마디로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욕구입니다. 이렇게 인정을 받고 싶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감을 얻고 싶은 마음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다른 사람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자신을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한 사람일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일 수도 있고 많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나 어떤 사람들, 혹은 자기 자신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바로 ‘인정’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에는 그렇게 인정을 원했던 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아히도벨입니다. 아히도벨은 다윗의 모사였지만 압살롬이 반역을 했을 때 압살롬의 편에 서서 압살롬의 참모, 모사, 전략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압살롬이 다윗을 반역하여 공격했을 때 그에게 가장 좋은 지혜를 내었습니다. 그의 전략은 항상 정확했고 옳았습니다. 그래서 압살롬은 다윗의 군대를 이기고 계속 진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아히도벨이 필승의 전략을 내놓았습니다. “[삼하]17:1 아히도벨이 또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사람 만 이천 명을 택하게 하소서 오늘 밤에 내가 일어나서 다윗의 뒤를 추적하여 [삼하]17:2 그가 곤하고 힘이 빠졌을 때에 기습하여 그를 무섭게 하면 그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도망하리니 내가 다윗 왕만 쳐죽이고 [삼하]17:3 모든 백성이 당신께 돌아오게 하리니 모든 사람이 돌아오기는 왕이 찾는 이 사람에게 달렸음이라 그리하면 모든 백성이 평안하리이다 하니” 그의 전략은 너무나 완벽한 것이었습니다. 정말 그렇게 할 때 압살롬은 완벽한 승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낸 전략을 모든 사람들이 기뻐했습니다. 이렇게 그가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가 했는데 압살롬은 또 다른 의견이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삼하]17:5 압살롬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도 부르라 우리가 이제 그의 말도 듣자 하니라” 압살롬이 부른 후새는 아히도벨과 같이 과거 다윗의 심복이자 전략가였지만 압살롬의 편에 섰던 사람입니다. 후새마저 압살롬에게 편들었으니 압살롬은 자신이 모든 지혜를 다 가졌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후새는 아히도벨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는 지금 치지 말고 나중에 사람들을 모아서 압도적인 우위와 능력을 가지고 다윗을 치자고 했습니다. “[삼하]17:11 나는 이렇게 계략을 세웠나이다 온 이스라엘을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바닷가의 많은 모래 같이 당신께로 모으고 친히 전장에 나가시고 [삼하]17:12 우리가 그 만날 만한 곳에서 그를 기습하기를 이슬이 땅에 내림 같이 우리가 그의 위에 덮여 그와 그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을 하나도 남겨 두지 아니할 것이요 [삼하]17:13 또 만일 그가 어느 성에 들었으면 온 이스라엘이 밧줄을 가져다가 그 성을 강으로 끌어들여서 그 곳에 작은 돌 하나도 보이지 아니하게 할 것이니이다 하매”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의견보다 후새의 의견을 더 좋아했습니다. 왜냐하면 아히도벨의 생각은 효과적이기는 했지만 자기가 드러나지 않았고 후새의 생각은 자신이 드러나고 압도적으로 이기는 것이 더 좋아보였기 때문입니다. 압살롬과 그의 사람들은 후새의 의견이 더 낫다고 판단하여 그 의견을 따랐습니다. 그러자 이일로 아히도벨은 절망했습니다. 그는 두 번을 생각하지 않았고 두 번을 기다리지도 않았습니다. 그 길로 고향으로 내려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삼하]17:23 아히도벨이 자기 계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일어나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 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그의 조상의 묘에 장사되니라” 자신의 인정을 간절히 원했던 아히도벨은 인정받지 못하자 삶의 이유를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자살을 했습니다. 그는 전쟁에서 대해서는 너무나 지혜로운 사람이었지만 인생에 대해서는 너무나 지혜롭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의 인정에 집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히도벨의 생각과 전혀 다르게 정반대의 의견을 낸 이유는 그가 사실은 다윗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의견을 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인정에만 집착했을 때 결국 아히도벨은 일찍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욕구를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이 욕구를 버려야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욕구를 버리고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다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려는 마음입니다. 자신의 존재감을 의지하며 살아가거나 다른 사람들의 평판에 의지해서 살아간다면 이 모든 것이 다 사라질 때 더이상 살아갈 수 가 없습니다. 자신이 딛고 서 있던 발판이 무너지면 그냥 무너져 내릴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붙들고 있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붙들어야 할 것 중의 가장 귀한 의지가 되십니다. 그래서 전도서 12장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전]12:1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전]12:2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우리의 창조자를 기억할 때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살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 우리는 자신의 욕구에 의해 쓰러지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통해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욕구는 우리를 죽게 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를 살게 만듭니다. 스스로는 죽을 수 밖에 없지만 하나님으로는 살게 하십니다.
이러한 인정을 극복하는 좋은 사례는 사실 아히도벨의 계략을 깨트린 후새의 경우입니다. 후새는 자신이 섬기던 다윗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만사를 제쳐놓고 그를 따랐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에게 압살롬에게 남아서 나를 위해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후새에게 준 명령은 다시 압살롬에게 가서 그의 모사가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후새는 다윗을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결정했습니다. “[삼하]15:32 다윗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에 이를 때에 아렉 사람 후새가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덮어쓰고 다윗을 맞으러 온지라 [삼하]15:33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만일 나와 함께 나아가면 내게 누를 끼치리라 [삼하]15:34 그러나 네가 만일 성읍으로 돌아가서 압살롬에게 말하기를 왕이여 내가 왕의 종이니이다 전에는 내가 왕의 아버지의 종이었더니 이제는 내가 왕의 종이니이다 하면 네가 나를 위하여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게 하리라” 결국 후새가 다윗을 위해 성으로 들어갔을 때 힘든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이나 인정이 아닌 오직 다윗에 대한 충성스러운 마음으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가 결국 성공했을 때 다윗은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며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위해서 살아갈 때에 우리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바로 욕구를 버리고 주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렇게 살아야만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진정으로 주님을 따르게 되고 그로 인해서 놀라운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게 됩니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자기 자신에 근거하게 되지만 하나님을 통해 비로소 자신을 버릴 때 주님께로 나아갑니다. 이러한 인도하심을 깨닫고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께 매달려 그분의 도우심을 받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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