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상담]] 9삼상 15; 26-30 존경은 높아지고자 하는 욕구이다2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
9삼상 15; 26-30 존경은 높아지고자 하는 욕구이다2_2c
2019. 7. 14. 주. 주일오후.
*개요: 상담비전-욕구 [삼상]15:2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삼상]15:27 사무엘이 가려고 돌아설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삼상]15:28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삼상]15:29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 [삼상]15:30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삼상]15:31 이에 사무엘이 돌이켜 사울을 따라가매 사울이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욕구는 ‘존경’입니다. 이 존경받고자 하는 욕구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아지게 되기를 원하는 마음입니다. 존경이란 보통 사람들보다 더 높아질 때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높아지기를 원하는 마음이 우리의 주된 목표가 될 때 우리는 어리석은 자가 됩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존경받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존경받게 되면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존경을 받는 것을 간절히 바라고 추구할 때 일어납니다. 존경이라는 욕구가 커지게 되면 다른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존경의 욕구가 근본적으로 높거나 혹은 낮은 위치에 대한 욕구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자신을 낮추려는 마음도 역시 존경의 욕구와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조금 아이러니하기는 하지만 스스로를 비굴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너무 폄하하는 것도 결국은 존경받고 싶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왜냐하면 결국은 자신을 낮추는 것도 자신을 높이려는 의도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존경에 대한 욕구가 없으면 자신을 높이려고도 혹은 낮추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존경의 욕구가 없다면 왜 있는 그대로 자신을 보이려고 하지 않을까요? 왜 스스로에 대해서 끊임없이 자학하며 자신없어 하고 초라하게 만들까요? 결국 그것은 다른 사람을 높이려고 하면서 자신도 높이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그렇게 자신이든 타인이든 누군가를 높이려고 하다 보니까 존경 욕구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런 욕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강한 사람들에게는 약하고 반대로 약한 사람들에게는 강합니다. 이런 존경 욕구가 없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높고 낮음에 전혀 신경쓰지 않습니다.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 사람을 대할 때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사울왕의 이야기는 이런 존경욕구의 좋은 예가 됩니다. 그는 존경받고자 하는 마음때문에 진정한 회개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본문 말씀에서 중대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 잘못 때문에 그는 더이상 왕위를 이어갈 수가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왕의 지위를 내려 놓아야만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심각한 잘못과 그 잘못에 대한 지적 앞에서 그가 보여준 행동은 너무나 안이한 것이었습니다. 삼상15:26,27절을 보십시오. “[삼상]15:2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삼상]15:27 사무엘이 가려고 돌아설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그는 자기 옷을 찢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사무엘의 옷을 찢었습니다. 잘못은 사울왕이 했는데 옷은 사무엘의 옷이 찢어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사무엘이 가지 못하도록 잡아끌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완력이 그의 거부가 사무엘의 말의 의미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왕의 불순종과 그의 죄악에 대해서 사무엘을 통해 지적하고 있었지만 사울왕은 오히려 자신을 지적하는 사무엘에게 대항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존경의 욕구가 있을 때 이렇게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옷을 찢습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에게 두 번 다시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괜히 말했다가 자기 옷만 찢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존경의 욕구가 있던 사울왕은 자신의 잘못이 아닌 다른 사람들 앞에서의 자신의 위신만 생각했습니다. “[삼상]15:30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우리는 존경의 욕구를 따라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욕구를 버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우리는 높고 낮음에 대해서 의식하면 안됩니다. 높아지려고 해서도 안되고 낮아지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그러면 또 높아지게 됩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면 섬기는 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사람들에 대해서 사람들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해서는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존경을 받고자 함이 아님 섬김의 모습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마]20: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마]20: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마]20: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예수님은 크고자 하는 자는 낮아져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말단이 되라고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오직 섬기는 자가 되고 다른 사람의 종이 되라고 하셨스니다. 이 말은 높고 낮음의 개념으로 살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아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닮아서 우리도 섬기려 하고 다른 사람에게 대속물이 되려고 할 때에 비로소 우리는 존경의 욕구를 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섬김으로 존경의 욕구를 변화시킬 때에 오히려 존경의 욕구는 더욱 섬기는 모습을 만드는 가장 좋은 동기가 됩니다. 또한 그렇게 섬길 때에 사람을 섬기는 것보다는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사람을 섬기다 보면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길 때 그 섬김은 하나님과의 관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을 높이지 않고 하나님을 섬긴 사람들 중에 기억할 만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다윗왕입니다. 다윗왕은 평상시에도 하나님을 섬겼고 특히 사울왕과 대비되어서 더욱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윗도 사울왕처럼 죄를 지은 때가 있었습니다. 사울왕은 자신의 죄의 지적을 받았을 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존경받기를 구했으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삼하]12:9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이렇게 나단 선지자가 다윗의 죄를 정확히 지적했을 때 다윗의 반응은 다른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삼하]12: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다윗은 사람들 앞에서의 평판이나 위신이나 존경을 중시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사람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서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람앞에서라면 끝까지 자존심을 내세우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라면 우리는 엎드릴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용서해 주십니다.
존경의 욕구를 버리고 하나님을 더욱 잘 섬기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끊임없는 죄사함의 은혜와 의롭게 하심의 축복을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욕구를 버리고 은혜를 따름으로써 하나님의 축복이 날마다 삶 속에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12교육설교 관련글[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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