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상담]] 10삼하 24; 10-14 죄책감은 자신의 죄를 후회하는 마음이다2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
10삼하 24; 10-14 죄책감은 자신의 죄를 후회하는 마음이다2_2
2019. 2. 3. 주. 주일오후.
*개요: 상담비전, 감정, [삼하]24:10 다윗이 백성을 조사한 후에 그의 마음에 자책하고 다윗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삼하]24:11 다윗이 아침에 일어날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윗의 선견자 된 선지자 갓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삼하]24:12 가서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보이노니 너를 위하여 너는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 [삼하]24:13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아뢰어 이르되 왕의 땅에 칠 년 기근이 있을 것이니이까 혹은 왕이 왕의 원수에게 쫓겨 석 달 동안 그들 앞에서 도망하실 것이니이까 혹은 왕의 땅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있을 것이니이까 왕은 생각하여 보고 나를 보내신 이에게 무엇을 대답하게 하소서 하는지라 [삼하]24:14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고통 중에 있도다 청하건대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마음이란 감정과 욕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감정을 이해하면 자연스럽게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감정에 이어서 생각 보려고 하는 감정은 ‘죄책감’입니다. 죄책감을 이해한다면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죄책감이란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는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후회스러운 마음이 크고 적은 여하에 따라서 죄책감의 양상도 달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양상만 달라질 뿐이지 본질적인 성격은 바뀌지 않습니다. 바로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후회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후회하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본인에게 구체적인 자신만의 행동의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기준에 매우 못 미침을 느끼게 되었을 때 그것은 잘못이 되고 그래서 그 잘못에 대해서 죄책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 기준에 맞기를 바랬지만 그러지 못할 때 이러한 감정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죄책감의 양상은 후회스러운 행동, 혹은 행동에 대한 후회스러운 감정 이후에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죄책감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런 관계에서의 퇴보가 죄책감의 모습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그러한 관계의 멀어짐은 윗사람과 아랫 사람으로부터의 멀어짐일 수 있습니다. 또한 또래나 같은 부류의 사람들로부터의 멀어짐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악하거나 혹은 선하거나 상관없이 동일하게 다른 사람들을 꺼리고 피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죄책감으로부터 나오는 행동입니다. 신앙적으로 죄책감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더욱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만들지만 하나님께 대해서 죄책감을 갖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죄책감을 갖는 것이 좋은 것 같아 보이지만 오히려 죄책감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면 이러한 죄책감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기뻐할 마음입니다. 죄책감 때문에 더욱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용서의 은혜를 거부하게 된다면 그 죄책감은 결코 좋지 못하지만 죄책감을 통해 회개와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이 자신에게 유익이 됩니다. 그래서 죄책감 이후에 그 마음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중요합니다. 다윗의 경우에서 우리는 그의 죄책감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더욱 나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삼하]24:10 다윗이 백성을 조사한 후에 그의 마음에 자책하고 다윗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하24장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인구조사를 한 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기서 죄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후회하고 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그가 미련하게 행해서는 안되는데 자신이 미련하게 행한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몰랐다면 그는 결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기준이 어떤지를 알았을 때 그는 죄책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러한 죄책감에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느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이 단지 죄책감에 머물러 있지 않고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소망하는 마음으로 변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자신의 죄에 대한 처벌을 선택하게 하셨습니다. “[삼하]24:13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아뢰어 이르되 왕의 땅에 칠 년 기근이 있을 것이니이까 혹은 왕이 왕의 원수에게 쫓겨 석 달 동안 그들 앞에서 도망하실 것이니이까 혹은 왕의 땅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있을 것이니이까 왕은 생각하여 보고 나를 보내신 이에게 무엇을 대답하게 하소서 하는지라” 선지자 갓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서 다윗에게 임할 처벌을 선택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이유는 다윗이 자신의 선택 속에서 주님을 붙들고 주님의 은혜를 간구 할 수 있도록 도우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 여러가지 선택 속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삼하]24:14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고통 중에 있도다 청하건대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그는 죄책감 속에서 하나님께 더욱 나아갔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의지함은 결국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길로 나아가게 하였습니다. 죄책감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은 하나님을 저버리지 않고 더욱 그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앞에서 그분께 벌을 받는다 하더라도 무조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려고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은 참으로 긍휼히 크시기 때문에 결코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죄책감의 마음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그와 반대로 죄책감 속에서 하나님께로 더욱 나아가기를 소원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들은 우리를 망하게 하는 감정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는 은혜의 유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죄책감의 올바른 해결은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아버지에게 죄책감을 느끼지만 그 속에서 용서를 구하는 탕자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사람에게도 역시 동일하게 죄책감 속에서 정말 해야할 것은 잘못을 고치며 죄책감의 대상에게로 나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눅]15: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눅]15: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눅]15: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탕자는 아버지의 재산을 다 탕진하고 어리석은 삶을 살게 된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가졌고 그 마음 속에서 아버지를 향하여 나아가기로 했습니다. 그 책임을 통감하면서 아들이 아닌 종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그에게는 커다란 다행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아들을 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시 아들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죄책감 속에서 오히려 잘못을 고백하고 아버지에게 나아감으로써 아버지의 기뻐하심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죄책감을 가지고는 있었으나 죄악으로 나아간 많은 어리석은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그렇고 인간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그런 어리석음 때문에 스스로 자해하고 자학하고 자포자기하고 자살까지 하는 것은 죄책감의 가장 안좋은 결과일 뿐입니다. 그 마음을 알아주되 온전한 선으로 나가게 해줄 때에 동일한 어리석은 자의 행동을 막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그들을 지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들에게 사람들의 죄책감에 대해서 알려주십니다. 그 죄책감이 과해서 스스로 죽어가는 자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마음을 갖게 도와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죄책감으로 인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용서의 확신을 가지고 더욱 죄가운데서도 담대히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은혜가 여러분의 삶 속에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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