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교육]] 66계 3; 1-6 흰 옷을 입고 주와 함께 다니는 자들(사데)Loading the player...
66계 3; 1-6 흰 옷을 입고 주와 함께 다니는 자들(사데)_2
2023. 4. 9. 주. 주일오후예배.
*개요: 성지순례, 사데교회
[계]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계]3:2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계]3: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계]3: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계]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3: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오늘 부활절 오후에 우리는 계속해서 성지순례에 관한 말씀을 보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해서 그리스도의 말씀과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 나오는 일곱 교회는 서신서에 나오는 교회와 달리 예수님 자신의 평가와 판단과 권면을 받았습니다. 그 내용을 통해서 우리는 그 교회들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들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과 동일한 판단과 분별의 기준을 갖게 되었습니다. 성지순례를 통해서 초대교회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현재 우리의 교회를 이해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됩니다. 그들이 받았던 훈계와 책망과 위로와 칭찬이 바로 우리가 받게 될 하나님의 말씀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 교회가 어떤 상황 속에서 칭찬이나 책망을 받았는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자신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기뻐하시는 성도님들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난 주 보았던 빌라델비아 교회를 떠나 그 다음에 간 곳은 사데 교회 유적지였습니다. 한적한 산 밑에 넓게 펼쳐진 광활한 사데 유적지는 이곳이 예전에 얼마나 번성하였고 화려했던 곳인가를 상상하게 하였습니다. 사데 도시의 유적지는 산 밑에 펼쳐져 있었지만 그 뒤에 자리잡은 높은 산에는 외적의 침입을 받았을 때 피신해서 대항하는 높은 망루가 있었습니다. 그 곳이 난공불락의 요새였기 때문에 사데 도시는 오랫동안 외부의 침입을 이겨내고 버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데에 있던 사데 교회는 예수님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계]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계]3:2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계]3: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들이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지만 죽은 자였던 것은 정말 살아있는 자들처럼 살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을 유적에서 볼 수 있었는데 드넓은 유적들은 전부 신전의 모양이었고 교회 유적은 모퉁이에 작은 건물 하나 뿐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그 시대의 많은 신전에 밀려서 교회는 초라한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이전에 라오디게아에서 보았던 신전이 성전되는 모습과는 정반대였습니다. 로마의 기독교 국교화로 인해서 성전이 교회될 수 있었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을 때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남은 것이라도 굳건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회개하라는 것이었고 그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도둑 같이 이르러서 그들을 심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대 교회의 교훈을 통해서 현대교회의 미래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합니다. 남은 것을 굳게 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니 죽은 자가 되고 맙니다. 바로 기회는 있으나 아무 능력이 없는 사데교회 같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어떤 능력이 있고 그 능력을 어떻게 나타낼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있는 세계 속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능력을 나타내려고 할 때 그것은 언제나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이 될 것입니다. 사데 교회에도 그런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계]3: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계]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3: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그 옷을 더럽히지 않은 것은 바로 능력이었고 그럴 때 그것은 흰 옷을 입고 주와 함께 다니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그 세속적인 신전과 방탕한 문화 속에서 주님을 따랐기 때문에 옷을 더럽히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과 함께 다니기에 합당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합당한 자에게 예수님은 흰 옷을 입게 하시고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지 않으시고 하나님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들어야만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영향을 행사하거나 혹은 정절을 지킬 때에 우리는 이 세대 속에서 정말 해야 하는 일들을 행하는 온전한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시기를 거쳐서 하나님은 하나님과 함께 있을 시간을 얻게 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그 연단의 시간을 통과합니다. 그런 시간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책망과 약속을 굳게 붙들 때에 비로소 그 약속의 성취를 보게 될 것입니다.
유적은 교훈으로 남았고 우리의 신앙은 현실로 나타납니다. 이 현실적인 신앙 속에서 더욱 남은 것을 굳건하게 하여 하나님과 함께 흰 옷을 입으며 다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살면 앞으로도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그 놀라운 소망을 마음에 품고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영생을 바라보며 확고한 신앙에 거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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