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9: 11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지난 고난주간과
부활절동안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심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했습니다. 그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고 변함없는 예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은혜로
인해서 우리는 구원을 받았고 그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으며 또한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이 죽으심으로 우리가 죄사함을 입었고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
부활하심과 같이 우리도 부활하여서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는 자가 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은혜는 예수님이 그분의 죽으심이 우리의 죄를 다
사해주시는 것이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히9: 11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인간의 죄를 대속하는 대제사장으로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구약제사가 보여주는
제사가 이루어지는 성전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성경말씀이 보여주는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이라는
것은 예수님 자신의 신적인 육체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성전으로 주님은 인간의 죄로 인해서
죄값을 치루십니다. 항상 죄를 사하기 위해서는 짐승의 희생과 그 피가 필요했는데 예수님이 친히 그 짐승의
희생이 되셨고 그 피를 흘리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육체되는 하늘의 성전이었습니다. 그 하늘의 성전에는 하나님의 이름과 사랑이 있었고 그 모든 사랑을 온전히 희생하시면서 주님은 인간들의 죄에
대한 심판은 자신의 몸에 받으셨던 것입니다.
구원을 이룬다는
것은 그 값을 치룬다는 것입니다. 18세기 미국에는 노예제도가 있었습니다. 노예를 사기 위해서 그에 합당한 돈을 내야만 했습니다. 그래야 그
노예를 살 수 있었습니다. 이는 또한 그 노예를 풀어주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를 붙들고 있는 자에게서 풀어주게 하기 위해서 합당한 값을 내야만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값을 치뤄야만 할 때에 그 값을 온전히 치루셨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의 육체를 희생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이고 싶은 자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기를 원하는 자들을 위해서 반드시 해야만 했던 속죄의 과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가치가
있던 예수님의 육체가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냥 죽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성소로 단번에 들어가셨습니다. 그곳은 바로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지성소에 주님은 단번에 들어가셨고 그로 인해서 온전한 죄사함을 이루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에게 자신을 의탁하는 것이었는데 바로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잇는 연결고리가 되신 것입니다.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인도설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 왕이 있었는데 이 왕은 원숭이들이 따먹던 망고나무를 독차지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자기를 희생하면서 원숭이들을 살리는 원숭이 왕을 보게 됩니다. 원숭이들을
도망치게 하기 위해 스스로 다리가 된 것입니다. 원숭이들이 모두 도망치자 지쳐 쓰러진 원숭이 왕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스스로 다리가 되면서까지 모두를 도망치게 했느냐?” 그러자 원숭이 왕이 말했습니다. “백성을 지키는 것이 왕인 나의
책임입니다. 당신도 왕이라면 모두의 행복을 살피어 주십시오.” 그
말을 듣고 왕은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다리가 되셨습니다. 우리는 그 다리를 밟으면서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지만 예수님의 은혜로만드신 구원의 길을 통해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구원의 길을 기억하면서 예수님을 잘 따라나가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만드신 구원의 길을 통해 온전히 하나님께 나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