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고
27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1)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주님은 2000여년전에 이미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부활을 우리에게
다시 깨닫게 해주십니다. 마치 생일이 과거에 있었던 것이지만 현재에 그 날을 기억하는 것처럼 우리는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할 뿐만이 아니라 주님의 살아나심을 기념합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그런 날은 없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모든 사람에게는 생일날이 있고 제삿날이 있습니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그리스도인에게는 단지 소천일이 될 것입니다. 이는 말하자면 출생일이 있고 사망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부활일이 있지는 않습니다. 죽으면
이 세상에서는 끝이기 때문입니다. 저 세상에서는 새로운 시작이 되겠지만 이 세상에서는 분명히 끝이 됩니다. 여러분은 부활에 대해서 어떤 마음을 가졌습니까?
정말 그 부활을 반기었던 사람도 있고 그 부활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그 부활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활절에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서 정말 너무나 감격스러웠던 사람이 있습니까? 주님의 부활이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된 사람이 있습니까?
고난주간과 그 뒤에 이어지는 부활절이 이제는 지겨워서 아주 힘들게 느껴진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있지만 부활에 대한 생각과 마음이 다 다릅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 부활절 아침에
시름이 가득해서 온 사람이 있고 아무 생각 없이 온 사람도 있고 기쁨과 감사로 충만해서 온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반응이 우리 가운데 현재 있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그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새벽에 무덤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와서 기쁨으로 가득한 사람도 있었고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고 하니까
특별한 감정을 갖지는 못하고 그냥 그런가 보다 한 사람도 있었고 자신은 부활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고 거부하면서 투덜투덜거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부활하신 날 이후 8일째가 되었을 때에 집안에 함께
모여 있었습니다. 문은 모두 닫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바로 도마가 있었습니다. 도마는 부활을 인정할 수 없다고 거부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직접 예수님의 못자국에 자신의 손가락을 넣으며 자신의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장담하던 자였습니다. 그의 반응은 부활에 대해서 기뻐하며 감격한 것이 아니었고 그 정도는 아니라도 부활에
대해서 인정하면서 담담하게 받아들인 것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부활을 부인하고 불신하는 자였습니다. 그의
마음에서 나타나는 감정은 약한 수준에서의 ‘분노’같은 것이었습니다.
“25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그가 분노하고 부인하며 거부하고 있는 이유를 알면 바로 그가 마음을 바꿀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혹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알고 그가 부활에 대해서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가 부활에 대해서 마음을 열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이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여러분이 왜 그런 마음을 갖게 되었는지를 알게 됨을 통해서 여러분의 마음이 변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그는 이렇게 예수님 앞에서 고백합니다.
“28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이 부활절에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진정한 기쁨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기뻐하는 자는 계속 기뻐하고 부인하는 자는 계속 부인하게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부활을 부인하던 자가
부활을 인정하고 부활하신 주님을 자신의 주요, 자신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되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며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 왜 시몬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하게 되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왜 시몬이 부활에 대해서 냉소적이고 부정적이 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알면 그가 변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그가 처음 부활을 믿지 않은 이유를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것은 말하자면 그 모든 기준이 자기
자신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간단한 이유로 도마는 부활을 부정하였습니다. 자신의 실수는 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말은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오직 자신이 기준이 되고 자신이 잣대가
된 사람이 바로 도마였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감정의 이유와 근거가 자기 자신이 된 사람이 바로 부활을
거부하는 자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부활에 기쁨과 감격이 있어도 부활에 대해 냉소와 부정적인 반응만이
있는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에만 갇혀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기준이 되고 자신이 목표가 되며 자신이
근거가 되는 사람이 부활에 대해서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장면이 그 다음에 이어집니다. 그렇게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식의 태도를 보여주었던 도마에게 주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 불신앙에 그
냉소에 그 부정적인 마음에 다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 않을 것 같았는데 예수님은 도마가 다른 제자들과 함께 모여있을 때에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 나타나심은 오직 도마를 위해서 였습니다. 오시자마자 예수님이
하신 첫 마디는 ‘평강이 있을찌어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평강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두려움 속에 있는 그들에게 주님은 오셔서 평강을 채워주셨습니다. 그리고 곧장 도마에게 향하셨습니다. 그것은 도마가 목표였기 때문입니다. 도마에게 말씀하십니다.
“27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주님은 친히 오셔서 나타내 보여주심으로 도마의 불신을 없애주셨습니다.
그 거만하고 강퍅하고 냉소적이고 삐딱한 마음에 평강으로 오셔서 그 마음을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인간의 얄팍한 감정을 열고 마음 속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겸손하게 도마라는
그 인간 앞에서 자신의 부활을 판정받으시고자 하십니다. 도마가 무언데 그가 예수님의 부활을 인정하고
말고 하겠습니까? 하지만 우리 주님은 그에게 나아가 자신의 부활을 판단받으시고자 하십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그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없는 자가 되어서
심판에 이르게 되기를 원치 아니하시고 믿는 자가 되어 주님의 사랑을 받게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를 위해서 주님이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참으로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주님이 부활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시고
하늘로 올라가버리신 것이 아니라 지금도 주의 성령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지금도
도마처럼 별로 기뻐하지 않고 부활을 인정하지도 않는 자들을 위해 나아가셔서 내가 여기 있으니 너의 손가락을 내 못자국에 너의 손을 내 옆구리 집어넣어
보라고 따뜻하게 말씀해주십니다.
그 주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부활은 이미 예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부활절은 단지 그 부활에 대해서 태도가 어떠한가만을 살필 뿐입니다. 부활절은 엄밀히 말하자면 다시 태어난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내가 태어난 날을 기억해 주지 않을 때 슬퍼합니다. 아무도 자신의 제삿날을 기억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슬퍼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떠났기 때문에 기억하던 안하던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생일날은 다릅니다. 버젓이 살아있기 때문에 생일을 소홀히
하면 섭섭한 법입니다. 주님의 부활절이 주님의 또 하나의 생일이 되시지만 우리는 때로 이 날을 너무
소홀히 지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부활절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화를 내시는 분이 아니고 오히려 그 부활하신 주님이 여러분을 찾아오십니다. 부활절에
감사헌금을 내지 않았다고 해서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고 해서 기뻐하고 감사하지 않았다고 해서 여러분을 질책하시지 않습니다.
아프리카에서 한번도 눈을 보지 못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보지 못한 것을 믿을 수는 없다고 늘 고집해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눈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정말 그 아프리카에 눈이 왔습니다! 그리고 나서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요? 그는 그제서야 비로소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무지와 고집의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여러분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닫힌
문을 열고서 오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다가오실 것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의 삶에 오시거든 꼭 고백하십시오. 주님의 나의 주시라고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부활절 이후에 더욱 주님을 만나고 더욱 주님을 경험하고 더욱 주님과 동행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절 이후에 믿음이 더욱 깊어져서 손으로 해를 가리려고 하지 말고 손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멀리하려고 하지
말고 입으로 주님을 고백하고 받아들여서 그와 함께 먹고 마시며 그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