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계시론]] 44행 15; 1-3 기독교 역사의 발전원리Loading the player...
44행 15; 1-3 기독교 역사의 발전원리_2
2023. 8. 13. 주. 주일오후. 온라인 설교.
*개요: 계시론, 기독교역사, 교육설교 [행]15: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행]15:2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행]15:3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신앙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간다는 것은 신앙이 더욱 굳건해지고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입니다. 반대로 신앙에 대해서 모르면 모를수록 더욱 신앙이 약화되고 실족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신앙을 유지하고 지킨다는 것은 다른 모든 불신앙에 대해서 대응하고 극복해야 하기 때문에 신앙인들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계시론 분야는 성도에게 가장 기본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 필요한 내용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고 있는데 그 약속이 무엇인지를 성경은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내용을 통해서 복음이 전파되고 발전되는 원리가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것은 기독교 초반에 이루어진 일이었지만 그런 원리로 기독교가 확장되고 발전되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매우 큰 교훈과 방법을 깨닫게 하는 원리이자 방법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알게 되는 기독교 역사의 발전 원리는 복음의 전파와 함께 생기는 혼란과 불이해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복음이 다양한 사람들에게 전파되면서 그 중에는 생각이 다르거나 견해가 다른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 그런 오해를 어떻게 풀어나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행]15: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행]15:2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어떤 사람들이 모세의 율법과 할례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모세의 율법과 할례 여부가 구원을 결정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은 명백히 잘못이었는데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는 것이지 율법이나 할례가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잘못된 생각에 대해서 그들이 취한 방법이었습니다. 형제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알아서 문제를 판단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도와 장로들과 함께 기도하고 주님을 바라보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중요한 기독교 역사의 발전원리 였습니다. 개인이나 단체가 알아서 자신의 문제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공동체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하며 인도하심을 받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마가의 다락방에 제자들이 함께 모여서 기도했던 것처럼 성도들은 하나님께 한 마음으로 가지고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복음 전파의 소식을 들으면서 모든 형제들이 기뻐하였습니다. 3절입니다. “[행]15:3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이 말은 단순히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함을 보여줍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충만한 역사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 풍성함을 기억하고 생각하며 감사할 때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과 할례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신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기뻐하고 감사함 속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복음은 그 이후에도 다양한 시간대와 장소에서 하나님의 구원받을 백성들을 위해서 퍼져갔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항상 결정을 내려야 하고 판단을 해야 하며 분별을 해야 하는 상황들이 생겼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 불안과 공포와 걱정 속에서 결정을 했다면 위축되고 좌절되며 주저앉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그 은혜 가운데서 믿고 바라며 소망하면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런 결정이 기독교 역사의 발전원리가 되었습니다. 과거 복음의 초창기에 우리 나라에 선교사들을 파송한 다양한 단체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내린 결정은 한결같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소망하면서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선교활동을 지원하며 선교의 열매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복음 안에서 내려야 하는 많은 결정이 있습니다. 그런 결정에 두려움과 불안이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결심으로 넘어가서 결정을 내리게 되지만 그 은혜를 생각하지 못하면 자연히 원하는 것에 빠지게 되어서 감정적인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그것은 전반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쇠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과거에 그런 결정을 내렸었더라도 기독교의 발전 원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에 있음을 생각하고 다시 은혜 속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계획을 보여주실 것이며 능력을 나타내실 것이고 희생해 주실 것이며 용서해 주실 것이고 동행해 주실 것이며 충만하게 하실 것이라는 마음을 가질 때 그 속에서 온전하고 지혜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그로 인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공회는 모세의 율법과 할례가 구원의 기준이 될 수 없음을 명확히 하였고 그로 인해서 이방인들은 더욱 기쁨으로 예수님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함이 있을 때 더욱 은혜 가운데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의 발전원리를 잘 기억하고 각자의 삶 속에 이와 같은 은혜의 삶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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