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시기에 우리나라의 일반인들에게는 몸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었습니다. 선교사들이 들어오고 의학이 전파되면서부터 몸에 대한 이해가 생겨났지만 그러한 이해는 몇몇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이었습니다. 그 이전부터 한의학이 있기는 했지만 이 역시 한의학자나 한의원에게만 해당되는 지식이었고 보통 사람들에게는 민간요법 정도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서구화가 이루어지고 625전쟁이후 삶의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몸에 대한 이해가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걸리기만 하면 포기해버렸던 질병은 구체적으로 치료법이 일반인에게도 적용되면서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고 가장 큰 변화는 사람들이 병에 대한 많은 이해가 생겼다는 점입니다. 몸의 질병이 왜 생기며 또한 그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며 어떤 병원에 찾아가야 하는지 등의 정보가 공유되었고 전달되었으며 그로 인해 병을 하나씩 달고 다니는 사람들은 최소한 자기 병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전문적인 지식과 이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매우 필수불가결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병을 알면 알수록 이길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모르면 모를 수록 지게 되었습니다. 병을 모르면 무엇이 나쁜지 모르니까 오히려 병에 해로운 일만 더욱 하게 되어서 결국에는 병에게 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몸이 아는 질병은 쉽게 대처해서 이겨내지만 잘 모르는 병이 몸에 들어오면 어떻게 이겨내야 할 지를 몰라서 결국에는 죽게 됩니다.
몸의 병을 고치는 의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사들도 자신들이 모르는 희귀질병은 매우 골치아파합니다. 그래서 그 병을 잘 아는 더 큰 병원에 환자를 보내기도 하고 더 큰 병원에서도 그 질병을 잘 모를 때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 병을 알기 위해서 해외의 사례를 수소문하기도 합니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희귀질병은 매우 가슴아픈 결과를 낳습니다. 익숙한 질병은 쉽게 치료가 될 수 있지만 희귀질병은 약도 흔치 않아서 치료에 많은 비용이 들기도 합니다.
장황하게 몸의 병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는데 그 이유는 마음의 병도 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대로 한 사람의 문제는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의 마음의 문제입니다. 그는 몸이 아픈 것도 아니고 병에 걸린 것도 아니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인내하지 못하며 다른 사람들과 쉽게 충돌하고 갈등을 빚으며 화목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한 두 해 이어지면 자연스럽게 몸의 병까지 만들어서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몸의 병과 마음의 병을 동시에 치료하지 않으면 안되는 심각한 상태에까지 이릅니다.
자, 여기까지 듣고 나서 여러분이 스스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혹시 나에게는 마음의 병이 있지 않은가? 마음의 문제가 있지 않은가? 한번 진단해 보십시오. 스스로 내린 진단이 맞는지 옆사람에게 한번 물어보십시오. 나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자기만의 생각일 수 있습니다. 가장 그 문제를 잘 판단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다른 사람입니다. 자기 문제는 대개 스스로 모르는 법이지만 주변 사람들은 다 그 문제를 알고 있습니다. 자기만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문제가 더 심각한 것이기도 합니다.
마음의 문제를 다룰 때에 제일 먼저 보는 것은 그 문제가 어느 영역에서 생겼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영역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문제는 나중에 다른 문제를 해결할 때에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유사하거나 일치되는 문제의 패턴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생각하는 것은 그 문제의 유형입니다. 어느 유형을 가지고 있는지를 구분하면 문제의 정체와 원인을 아는 것이 더욱 쉬워집니다. 그리고 어떤 유사한 유형의 문제는 그 문제의 본질 또한 같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러한 이해가 다 이루어지면 그 다음에 본격적으로 하는 것이 감정을 다루는 것입니다. 감정은 우리의 마음에 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입구입니다. 감정에까지 들어가기 전에 하는 것이 마음의 위치나 형편을 다루는 것이라면 감정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마음이 나타나게 됩니다. 만약 지금 우리가 여러분의 감정을 다룬다면 여러분의 마음을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룬다는 것은 또한 감정을 다룬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감정에는 일반적으로 네 가지 큰 감정이 있습니다. 이 감정은 주로 개인적인 측면에서의 감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미움이고 두 번째는 분노이며 세 번째는 절망입니다. 네 번째는 두려움입니다. 여러분은 이 네 가지 감정중에서 어떤 감정에 더욱 친숙하신가요? 이런 감정이 전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 조금씩 그 감정이 드러나는데 어떤 때에 그 감정의 빈도가 많이 나타나게 될 때 우리는 마음의 문제를 조심스럽게 진단할 수 있습니다. 미움이 많이 나타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는 분노가 많이 일어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면 절망을 쉽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두려움이 많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해당되십니까?
이러한 감정들은 오래 가지고 있는다는 것이 별로 안좋은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지구상에 일어나는 천재지변과 같기도 합니다. 미움은 마치 높이 이는 해일과 같습니다. 분노는 솟구치는 화산과 같습니다. 절망은 지반을 흔드는 지진과 같습니다. 두려움은 하늘에서 내리치는 번개와 우박과 같습니다. 어느 정도는 감당할 수 있겠지만 그 한계를 넘어서는 지각현상들은 우리의 삶에 큰 피해를 일으킵니다.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의 감정의 활성화는 감당할 수 있지만 그 선을 넘어서면 우리의 삶은 커다란 재앙을 맞이하게 됩니다.
감정이 격발되어서 문제를 일으킨 경우가 무엇이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나타난 가인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는 격분하였습니다. 안색이 변할 정도로 분노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마음의 상태에 대해서 경고하셨습니다. 주님이 가인에게 하신 말씀은 이것입니다.
“창4:7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이것은 특별히 가인의 분노함에 대해서 하신 말씀이지만 단지 분노함에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미움, 절망, 두려움 모두 다스려야만 합니다. 이러한 감정을 가지게 되는 상황, 환경이 존재할 수 있지만 인간으로서 그것은 피치못할 일이고 그 감정을 얼마나 잘 통제하느냐에 따라 마음의 문제의 해결 여부가 결정됩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감정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감정을 어떻게 다스리십니까? 여기에 대해서는 각자의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성경적인 감정의 통제방법은 왜 내가 감정에 휩쓸렸는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왜 내가 분노하는가를 깨달을 때만이 그 분노를 잠재울 수 있습니다. 대개 분노나 다른 감정들은 그런 이유를 스스로 묻거나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감정은 더욱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갑니다. 하지만 그 감정의 근원에 무엇이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그 감정의 통제에 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바로 그 감정의 원인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7절 말씀을 보십시오.
“창4:7 7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은 선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올바르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농사하는 자였기에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드렸을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양의 피로 제물을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가인은 아벨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제사를 준비했어야 했지만 그냥 자기 것으로 제사를 드렸을 뿐입니다. 결국 얻는 것은 제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화를 내는 이유는 자신이 선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선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문에 엎드립니다. 죄가 찾아옵니다. 선을 행치 않음을 더욱 감추고 포장하려고 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큰 악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동일한 상황에서 여러분은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가인의 경우 그는 자신의 마음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아벨을 들에서 쳐 죽였습니다. 그 감정은 사그라 들지 않았고 계속 커져갔기에 결국에는 행동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선을 행하지 않았을 때 죄가 문에 찾아왔고 그 죄는 마침내 집안에 들어오고야 말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다윗이 나단 선지자를 통해 자신의 죄에 대해서 직면했을 때의 장면입니다.
“삼하12:5-9 5다윗이 그 사람을 크게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6저가 불쌍히 여기지 않고 이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사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7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왕을 삼기 위하여 네게 기름을 붓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8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처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9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다”
다윗은 자신의 죄에 대해서 지적당하고 추궁당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나님에게서가 아닌 인간 선지자에게서 들었습니다. ‘당신이 바로 죄인입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삼하4:1313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 하매”
이것이 다윗으로 하여금 죄를 벗어나게 했습니다. 비록 그 죄를 문밖으로 밀어내는 데에는 그가 감당해야 하는 아픔과 괴로움이 있었지만 일단 그 죄를 자신의 집 밖으로 밀어내는 데에는 성공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인정하셔야 합니다. 때로 그 죄를 고백할 때 견뎌야 하는 괴로움도 있겠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나아갈 때 주님은 그 죄를 사해주시고 그 죄를 덮어주시며 그 죄를 기억조차 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 1:18-20 18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19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20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던 가인은 평생 동안 버림받고 유리하는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결코 다시는 땅을 일구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지 못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그가 표를 받아서 평생 버림받은 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표는 가인에게는 죽지 못해 사는 종신형의 삶을 사는 것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감정을 하나님께 의지하고 고백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저의 감정을 고백해야 하고 그럴 때 만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감정을 잘 다스려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죄를 다스리는, 감정을 다스리는,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목차
1. 인간 마음의 근본을 이루는 것은 감정과 욕구이다.
2. 특별히 이 감정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것의 죄의 소원이라는 것이다.
3.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은 욕구를 깨닫는 것이다.
4. 죄의 욕구를 깨닫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5. 하나님께 감정을 다스릴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