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왔을 때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1. 불신자 중에는 오래전부터 실족자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전도를 하면서 불신자들이 돌아오기를 원하지만 불신자들 중에는 여러 부류가 있어서 좀처럼 전도를 해도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불신의 이유를 알고 그 수준을 파악할 때 그에 맞는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상담전도법에서는 그러한 불신자들의 유형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 유형을 알기 위해서 우리가 교회를 안다니는 사람들에게 하는 질문의 다음의 네 가지 입니다. “1교회 가본 경험이 있으세요?” “2어떤 이유가 있으세요?” “3하나님께 어떤 감정이 있으세요?” “4하나님께 원하는 것이 있으세요?”
지금까지 각각의 경우에서 그에 맞는 복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마지막으로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어떤 감정이 있다는 사람들입니다. 교회를 다녀본 적이 있고, 교회를 나가지 않게된 어떤 이유가 있으며, 하나님께 어떤 감정이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복음은 무엇일까요? 어떤 말이 그들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말이 될까요?
2. 그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복음은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할 수 있는 복음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이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 감정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하나님께 원하는 것이 있든지, 혹은 없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이미 감정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원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없다고 말하는 것은 그냥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감정이 있었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이 하나님께 원하는 것이 있다고 말하든지 혹은 없다고 말하든지 모두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에 대해서 말을 해주어야 합니다.
왜 이러한 말이 그러한 자에게 의미가 있는가 하면, 그 사람은 교회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사랑에 대해서 들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 사람은 어떤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죽으심까지도 들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께 대해서 감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의식이 없는 사람은 감정을 갖지도 않습니다. 가질 수도 없는 것이지요. 오직 그분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이 있는 사람만이 감정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런데 뭔가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실족해버렸습니다.
3. 하나님은 큰아들과 같은 자들이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의미를 잘 보여주는 것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큰아들은 원래 아버지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집에 들어가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는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일까요? 29,30절을 보십시오.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이 큰 아들이 집에 들어오지 않는 이유는 아버지께서 둘째 아들을 위해서 살진 송아지를 잡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소에 자신에게는 홀대하던 아버지가 악을 행한 동생에게는 환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조직의 문제입니다. 가정내에서 자신의 위치가 위협받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큰 아들에게는 괴로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화가난 큰아들에게 아버지는 그를 타이르면서 말하십니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아버지는 내것이 다 네것임을 깨닫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임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고 끝내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몸이 되어가야 함을 알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4.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을 전파하여 실족자들을 찾는 자들이 됩시다.
이것을 모를 때 그런 사람들은 지금도 하나님을 거부하며 자신의 삶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국은 하나님 나라가 아닌 자신의 나라를 세워나가는 것 뿐입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 자신의 나라를 세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세상에 살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능한 빨리 자기 자신의 나라를 세우는 일을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에 비로소 그 나라가 넓고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그 나라의 몸이 되시기를 원하시며 그 나라가 넓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그 나라의 몸이 되기를 원하심을 알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복음을 증거합시다. 필요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복음을 전해줍시다. 그들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야 합니다.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이 들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됩시다. 그래서 지금도 어디선가 떠돌고 있는 누군가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해줍시다. 이일을 행하며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