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비로소 믿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깨닫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하게 되는 세 가지 질문을 보았습니다. 이 질문을 하게 된다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좋은 질문이 좋은 대답을 만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질문을 하는 자체가 관심과 사랑의 표현입니다. 또한 복음을 향한 질문만이 복음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복음적인 질문 이외의 개인적인 관심사에 대한 질문이나 상대를 난처하게 만들 수 있는 질문들은 복음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제 네 번째 전하게 될 질문은 ‘하나님께 대해서 뭔가 원하는 것이 있으신가요?’입니다. 이것은 전도를 위해 넘어야 하는 마지막 고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기 전 넘어야 하는 단계가 ‘욕구의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왜 이것이 중요한가 하면 사람은 복음을 받아들일 때 복음을 경험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감정을 극복했다 하더라도 욕구가 달라지지 않으면 결코 복음을 진실되게 받아들일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2. 믿는다는 것은 결국 여러가지 경험과 문제와 감정을 딛고 일어서서 하나님께 나의 소원을 말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소원이 얼마나 중요하며 하나님이 자신이 그 소원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는지를 시편 말씀을 통해서 보여주십니다.
“15 중생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저희에게 식물을 주시며 16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나이다”
여기서 ‘생물’이라는 표현은 동물의 의미가 아니라 ‘모든 살아있는 존재’(Every living thing)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살아있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주님의 방식대로 사람들의 소원을 만족시키시면서 그들이 살아있게 하십니다.
그런데 특별히 구원에 대해서는 다른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19절을 보십시오.
“19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소원이 있는 자를 다 구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어주십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만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들으신 다음에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어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먼저 실행할 때에 비로소 소원을 이룰 수 있다.
우리는 종종 구원얻은 자들의 간증을 듣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어떤 소원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소원을 그냥 하나님이 들어주시는 것도 아님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항상 자신의 소원의 들으심을 얻기 전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받아들이는 일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서의 모습이었습니다.
평생을 복음을 거부하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를 위해서 아들은 평생동안 기도를 하면서 어머니에게 하나님을 경외함을 말씀드렸고, 그 간청함에 못이겨 어머니는 딱 한번 교회에 나가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간 예배에서 그 어머니는 하나님께서 소원을 들으시는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길로 그 어머니는 예수님을 받아들였고 그로 인해서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바로 해오름교회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그대로 들으시지 않습니다. 자기를 경외하는 지를 보십니다. 그것이 어떤 자에게는 예배에 나오는 것이고, 어떤 자에게는 성경공부를 하는 것이며, 어떤 자에게는 기도회에 참석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자신의 소원을 고집하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18절에서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18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여전히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믿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사람이나 하나님이 계신다면 돈을 주셔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진실하지 않기 때문에 가까이 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도우심을 기대하고 나오는 자에게는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바로 자신의 욕구를 주장하게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의 인도하심을 받아들이도록 이야기해주어야 합니다.
4. 불신에서 믿음으로 온다는 것은 힘이 들지만 그 의미를 기억하고 하나님을 통해 소원을 이룰 수 있게 하는 전도자들이 되자.
이제 네 번째 질문인 “하나님께 대해서 뭔가 원하는 것이 있으신가요?”의 반응에 대해서 우리는 이렇게 말해줄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예’라고 말한다면,
“예: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원하시는 것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먼저 구했습니다.”
항상 이것이 문제입니다. 자신의 것을 먼저 구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이며 진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먼저 따르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가 원하는 것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말해주십시오.
“교회는 당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있게 하는 곳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을 먼저 실천해 보십시오.”
원하는 것에 대해서‘아니오’라고 말한다면 역시 원하는 것을 갖고 그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 나아오게 해 보십시오.
“아니오: 교회는 당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있게 하는 곳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을 먼저 실천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소원을 이루어주십니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루어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진실하고 그분을 경외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 소원을 이루어주십니다. 이것은 마치 김치를 담그기 위해서 배추가 있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배추에 양념속을 넣을 때 비로소 김치가 되는 것처럼 사람에게 소원이 있고 그 소원이 하나님께 의지되어 하나님의 방식대로 달라질 때에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불신자에게 할 수 있는 이러한 네 가지 전도질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전도를 시작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신앙과 삶의 균형을 이루는 아름다운 전도를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