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1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남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 일상생활에서 익숙하게 사용되는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눈치’라고 말합니다. 눈치가 빠르다는 것은 결국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빨리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말을 하지 않더라도 태도나 표정이나 행동을 보면서 사람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능력, 그것을 눈치가 빠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이같은 ‘눈치’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혀
눈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전혀 의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직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합니다.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가 원하는 것만 하는 것이지요. 반대로 어떤 사람은 너무 눈치만 봅니다. 자신이 아무리 원한다 하더라도 눈치를 보면서 어떻게 할 지를
결정합니다. 너무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만 해주려다가 자신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빠지고 맙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하와가 뱀에 의해 꼬임을 받게 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뱀이 하와에게 나아와서 하나님께서 정말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하와가 대답하였을 때 뱀은 하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창 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와는 뱀의 말을 들으며 자신의 욕구에 자극이 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말하기 전에는 하와는 선악과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평소에 선악과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뱀이
그렇게 유혹했을 때 그는 자신의 욕구에 대해 자극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바로 그 때 하와가 뱀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차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자신의 욕구를 자극해 오는 뱀에게 나름대로의 욕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와는 뱀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에 이끌리고 그것에 지배당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이단이 찾아와서 하나님이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느냐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하와와
동일한 상황에 놓여진 것입니다. 이단은 그렇게 여러분의 약점을 파고들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 욕구를
자극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욕구를 알지 못하면 정말 그 욕구에 자극받을 것입니다. 이단을 따르지 않으면 축복을 받지 못할
것 같고, 구원을 얻지 못할 것 같고, 지금까지 헛고생한 것 같고, 등등의 후회와 아쉬움이 따를 때 나중에는 이단과 함께 악한 길을 가게 됩니다.
꼭 이단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누군가 여러분에게 나아와서 무엇인가를 이야기할 때 정말 알아야 하는
것은 이 사람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아야 제대로 대화가 되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으면 나누는 대화는 대화가 아닙니다. 서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친해지자는 것인지, 도와달라는 것인지, 하소연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무엇인지 그것을 알고 들어야 제대로 들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해야 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남의 마음을 들여다 보기 어렵다면 자기 자신의 마음이라도 들여다 보십시오.
그 마음을 들여다 볼 때 마지막 기회가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남의 마음도 들여다 보지 않고 자기 마음도 들여다 보지 않으면 결국에는 욕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욕구에 지배당하고 나면 남은 것은 죄를 짓는 것뿐입니다. 실제로 죄를 짓기 전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자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죄는 사소한 죄가 아닙니다. 욕구에 지배될 때에 짓는 죄는 아주 심각하고 큰 죄입니다. 그 죄는 살인이요, 간음이며,
폭행이고, 강도입니다. 이러한 악한 죄는 결국 욕구에 지배될 때에 일어납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우리는 마음을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하와의 경우로 다시 돌아가봅니다. 그녀의 마음 속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6절을 보십시오.
“6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하와의 마음 속에는 이런 것들이 생겨났습니다. 먹고 싶다, 예쁘다,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다. 선악과를 보면서 이러한 감정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 선악과는 먹으면 안되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원래 이런 감정이 생겨나면
안되는 것인데 뱀의 유혹을 통해서 선악과를 볼 때 이런 마음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각각 다양한 욕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욕구는 전부 하와의 마음 속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선악과를
바라보는 동안 그의 마음 속에는 이런 저런 욕구가 계속 커져갔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밖으로 폭발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욕구에
사로잡히면 눈이 뒤집혀지기도 하고 이성을 잃기도 합니다. 하와가 그랬습니다. 그녀는 당장에 손을 뻗쳐 선악과를 따서 자신이 먹었습니다. 한번 욕구에
사로잡히니까 아담까지 이끌게 되었습니다. 아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다른 마음이었다면 하와를 설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담도 악한 마음을 갖고
있을 때 죄악에 동참했습니다.
욕구에 사로잡혀 먹지 말아야 하는 선악과를 따먹는 경우는 아담과 하와의 경우만이 아닙니다. 자존심이 상해서 뜻대로 안되서 분이 안풀려서 이성을 잃고 상대를 공격해서 살인에 이르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눈에 좋아
보여서 육정에 이끌려서 달콤한 유혹에 속아 넘어가서 간음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더 많은 유익을 얻으려고 조금 더 편하게 살아보려고 해서는
안되는 악한 방법을 동원하여 강도짓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모두가 다 욕구에 사로잡혀 저지르는 일들입니다. 그렇게 해서 사건 사고가 우리
주변에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이것을 이기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은 욕구와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욕구를 잘 처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욕구를 어떻게 처리해야 그로 인한 범죄함을 막을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
속에 귀중한 지혜가 있습니다. 7절 말씀을 보십시오.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그들은 범죄하고 난 뒤에 수치심을 가지게 되고 그런 다음 자신의 은밀함을 숨기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반드시 죄악이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욕구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그래서 범죄함을 막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은 이와 정반대로 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하면 절대로 숨겨서는 안됩니다. 범죄함을 숨기려고 하면 할 수록 그것은 더큰 범죄로 나아가게 됩니다.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듯이 여러분의 치부를 여러분의 수치를 여러분의 부끄러움을 가리면 안됩니다. 그것을 빨리 고백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하나를 잘못했을 때 더욱 숨기거나 다시 숨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문제는 다시 악화됩니다. 더욱 강해지고 더욱 풀기 어려워집니다. 문제는 대여섯 가지로 늘어납니다. 하와와 아담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죄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평생 형벌을 받을 뿐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러지 마십시오. 욕구가 자라나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욕구가 죄악이 되지 않도록 그 욕구를 고백하십시오. 주님께 그 욕구를 도와달라고 간구하십시오. 마음 속에 자꾸만 유익을 추구하는 마음이
생길때, 자꾸만 편안하고자 할 때, 계속해서 쾌락을 추구하고자 할 때, 주님께 기도하십시오. 주님께 고백하고 인정하십시오. 그런 죄성이 있음을
시인하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는 그것을 도와주시고 새롭게 하시고 욕구를 바꾸어 새로운 마음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속에 있는 죄악을 늘 주님께 고백하면서 욕구를 처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죄를 저지름 없이 새롭고
깨끗한 마음으로 온전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번 한주도 이러한 마음으로 삽시다. 부활의 주님과 함께 이렇게 주님께 우리의 약함을 고백하고
자백하고 깨끗함을 받고 빛가운데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