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20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1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22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우리가 전도를 시작하여 누군가에게 다가간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전도의 의미가 있을 때에 우리는 관계가 시작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도를 받았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 사람은 여러분의 부모일 수도 있고, 형제자매일 수도 있고,
친척일 수도 있고, 친구이거나 혹은 아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서 전도를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분과
신앙적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그럴 때 부모님은 그냥 부모님이 아닙니다. 형제자매는 그냥 형제자매가 아닙니다. 아는 사람은 그냥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나를 연결하는 연결고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연결고리의 관계가 되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되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다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도 하나님 안에서 다른 사람에게 연결고리가 될 수 있습니다.
진주목걸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목걸이줄에 진주가 가득 달려있을
때 각 진주는 다른 진주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어떤 누군가를 통해 연결되어졌다면 나도 역시 다른 사람에게 연결되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연결되지 않는다면 나에게서 끊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나부터 빠져나가게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에 다니는 지를 물어보는 한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기회가 될 때 그렇게 되고자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고자 할 때에 알아야 할 것은 전도의 과정에는 반드시 불신의 원인을 생각하는 단계를
거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가자고 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은 필요한 과정을 겪게 되어 있습니다. 누구나 어린아이에서 성인이 되기 전에 청소년기를 거치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속에서 현재의
상태가 무엇이며 그 상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한 납득이 이루어질 때에 하나님의 복음이 온전히 전해질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에서도
영생을 얻기를 원하는 부자청년에게 예수님께서는 그의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아가시는 과정을 거치십니다. 그냥 영생을 뚝딱 얻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이 뚝딱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필요한 과정을 하나 하나 거칠 때에 비로소 영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8절부터 다시 읽어봅니다.
“18어떤 관원이 물어 가로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9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20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영생을 어떻게 얻는지를 묻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계명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지를 돌아보게 하시는 것이 진정한 영생을 얻게 되는데 필요한 과정이었습니다. 영생을 얻는 것,
구원을 얻는 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삶의 여정에서 더욱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주어진 말씀과 그 말씀에
대한 순종 속에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찾을 때에 영생과 구원이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전도대상자들이 이러한 여정을 생각해 보게 해야 합니다.
그것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그것을 경험할 수 있게 도와주고 이미 그것을 넘어섰다면 어떤 수준으로 넘어섰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불신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Q1. [1영역] 교회에 가본 경험이 있으세요?
Q2. [2유형] 안믿으시는 어떤 이유가 있으세요?
Q3. [3감정] 하나님께 안좋은감정이 있으세요?
Q4. [4욕구] 하나님께 원하는 것이 있으세요?
이러한 네 가지 질문은 주로 불신자, 비교인에게 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이러한 질문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의 상황이나 현재의 상태에 대해서 대답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그러한 상황을 알게 될 때에
그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전해줄 수 있습니다. 각각의 사람들은 영역에 해당될 수도 있고, 유형에 해당될 수도 있으며 감정이나 욕구에
해당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에 대한 그의 위치와 살아온 삶을 보여줍니다. 어떠한 삶이건 간에 그 속에서 하나님은 필요한 은혜를 채워주십니다.
[1관계인식]
질문1.교회 다니세요?
질문2.어느교회 다니세요?
<비교인>
<교인>
[2마음이해]
Q1. [1영역]
교회에
가본 경험이
있으세요?
Q2. [2유형]
안믿으시는
어떤 이유가
있으세요?
Q3. [3감정]
하나님께
안좋은감정이
있으세요?
Q4. [4욕구]
하나님께
원하는 것이
있으세요?
Q5. [5은혜]
하나님을
구주로
믿으시나요?
Q6. [6결심]
구원의
확신이
있으신가요?
Q7. [7실천]
성령충만을
받고
계시나요?
Q8. [8사역]
사명감당을
하고
계시나요?
이전에 보았던 삭개오는 [1영역]에 해당하는 순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예수님의 복음이 전해지거나 경험이 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 들어가겠다고 하셨을 때에 그는 기뻤고 그로 인해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온전히 마음속에 모셔 들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경험이 없었다면 그 경험을 해보면 그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눅19: 5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삭개오는 그 모든 경험 속에서 즐거워하였고 감사하였고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의 변화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 나아온 경험이 없는 사람이 교회에 들어와서 즐거움을 누리고
기쁨을 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 자신도 교회 다니는 것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그만큼 외롭고 예수님의 함께 하심이 저에게 맞았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이와같은 불신자의 경우와는 달리 신자의 경우, 교인의 경우에는
좀더 나아가는 신앙의 과정을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지 교회생활이 재미있었기 때문에 다시 교회생활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의미있고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그 뜻을 깨달아야만 그 수준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다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신자들에게 주는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Q5. [5은혜] 하나님을 구주로 믿으시나요?
Q6. [6결심] 구원의 확신이 있으신가요?
Q7. [7실천] 성령충만을 받고 계시나요?
Q8. [8사역] 사명감당을 하고 계시나요?
그것은 지금까지의 수준에서 조금 더 나아가기 위해 현재의 연약함을 파악하는 과정입니다. 구주로 믿고 있지 않았거나 구원의 확신이 없었거나 성령충만하지 않았거나 사명감당하고 있지 않았을 때에 그것을 받아들이려고
하면서 복음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음식물을 기본적으로 섭취하고 있지만 병이 있거나 혹은 근력을 향상시키려고 할 때에는 특별한 음식을
먹는 법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깨닫게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부자청년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21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22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에게 필요한 것은 사명이었습니다. 그럴 때 영생은 그에게 의미가
있었습니다. 반드시 가지고 있는 것을 다 팔아야만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부자청년에게는 그것이 필요했습니다. 그에게 율법과 계명은
너무 형식적이었습니다. 더 진실하고 내면적인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내 일부를 드려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라 내 전부를 드려 영생을 얻는다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는 이전에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니라 훈련받았던 것 뿐입니다. 이제는 진정으로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그에게 믿음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주님을 좇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그에게 필요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자신의 신앙적 여정을 이해하고 필요한 단계를 거쳐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교회에서 저교회로 옮기게 하십니다. 저도 개척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개척되는새로운 교회에 다니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저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인도하셨고 그 인도하심을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우주로 발사되는 인공위성을 생각해 보십시오. 위성을 궤도에 띄우기 위해서 3단으로 된 로켓이
필요하고 더 큰 부패의 발사체가 필요합니다. 결국에 남는 것은 위성 하나 뿐이지만 그것을 위해서 많은 버림의 과정이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진정한 신앙을 형성하기 위해서 그러한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주님께로 더욱 나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여정을 돕기 위해서 우리는 전도대상자에게 신앙적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질문을 통해서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합니다. 우리도 사실 그렇게 하나님께로 인도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 언제든지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는 연결된 과정입니다. 늘 그 부족함을 채우려고 하면서 우리의 믿음은 더욱 커져나가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러한 믿음의 과정을 생각하면서 전도를 하면서 혹은 전도를 받으면서 나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 믿음의 결실을 맺으면서
또는 맺게 하면서 더욱 성장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