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18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19아그립바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
20먼저 다메섹에와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선전하므로
21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22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거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것 밖에 없으니
23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사도 바울이 변화된 것은 믿는 우리들에게는 무척 고무적인 일입니다. 그의 놀라운 변화는 하나님을 믿게 되면 사람들이 이렇게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획기적인 가능성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믿지 않는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심을 알게 되고 믿게 되면 달라질 것입니다. 그 달라짐은 하나님의 뜻하시는
대로 온전히 변화되는 획기적인 변화일 것입니다. 원래부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고 있는 천사나 사탄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심을
모르고 있다가 알게 되는 사람은 변화됩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 때문에 과거와는 완전히 변화된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이전에는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온갖 나쁜 짓을 다했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는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사도 바울로 살면서 가장 진실한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가 그렇게 변화된
것은 훈련이나 학습의 결과가 아닙니다.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를 만나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만난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입니다.
그가 만난 예수님이 진정한 예수님이 아니라면 그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또한 변화는 커녕 더 큰 변질만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가 생각하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에 따라 이 모든 방향이 달라지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만났던 그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그는 15절에서 이렇게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15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그는 정말로 지금까지 자신이 핍박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은 예수님이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분이 살아서 자신을 만나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체험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그분들은 예수님이 살아계시다, 그분이 나를 만나주셨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그 살아계신
예수님이 자신에게 그 다음에 어떻게 말씀하시는가에 대해서 전혀 다른 이해가 생깁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만난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엄마가 너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단다. 네가
이해하렴"
"내가 네 안에 있다. 네 엄마 아빠를 용서해라"
"너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다."
"너의 그 짐은 내가 져야 할 짐이다. 내게 맡겨라."
좀 이상하다고 들리시지 않습니까? 아니면 괜찮다고 들리십니까?
이 간단한 대화와 응답이 하나님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내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더이상 하나님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지 않으시고 우리 자신에 대해서만 말씀하신다고 생각할 때에 그 응답은 더욱 변질됩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주님께서 거지와 같은 자의 옷을 벗기고
물로 씻어 주시기를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이 치유사역을 행하시고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과 같은 이러한 표현들은 더욱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해 내 자신에게로 집중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변화로 나아가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주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구별해야만 합니다. 성경은 사도 바울이 이러한 말씀을 들었다고
말합니다.
“16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18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바울이 들은 말씀은 하나님께서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놀라운 계획을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신다는 주님의 능력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계획과 능력의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올바르게 바라보게 만듭니다. 그속에서 우리 자신의 존재도 의미있게 되고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그 하나님의 계획과
능력을 보았던 것처럼 우리도 복음을 받는 사람이 진정한 복음의 내용을 들을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3복음적용]에서 해야하는 일입니다.
이 복음적용 단계에서 전하는 하나님의 복음은 다음과 같은 네가지가 있습니다.
1하나님은 당신에게 계획과 능력을 보여주십니다.
2하나님(예수님)은 당신을 위해 희생과 용서를 베푸십니다.
3하나님(성령님)은 당신에게 충만과 동행을 나타내십니다.
4하나님은 당신에게 상급과 권세를 주십니다.
이러한 복음의 내용은 진정으로 기쁜 소식입니다. 하나님이 주인공이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습니다. 그 놀라우신 행하심 속에서 우리는 계획이 무엇이고 능력이 무엇인지를 깨닫습니다. 희생과 용서가 무엇인지를 보게 됩니다.
충만과 동행을 경험하게 됩니다. 상급과 권세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골고루 맛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능력은 밤마다 자기 전에 기도하면서 누릴 수 있었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자기 전마다 기도하고 자면 그일들이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내 죄를 깨닫고 그로인한 희생과 용서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배우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고 나는 왜이렇게 악한가 생각하면서
가슴을 쥐어 뜯으며 한탄하였을 때에 예수님의 놀라운 용서의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또한 은사를 사모하면서 충만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때에 제 몸과
마음 속 깊이 함께 하시는 충만과 동행을 경험하였습니다. 저는 상급과 권세도 경험했습니다. 꿈에서 본 번쩍 번쩍한 면류관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은혜로 나아갑니다.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세계입니다.
빛나고 아름다운 곳은 나의 세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그곳을 바라보며 사도바울은 나아갔습니다.
“19아그립바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
20먼저 다메섹에와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선전하므로”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냥 믿는 사람으로 끝나지 않았고 주님의 일을 전파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올바른 변화입니다. 우리는 모두 참된 복음을 듣고 이렇게 변화를 경험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거짓된 복음, 변질된 복음을 들으면 악하게 됩니다. 스스로의 죄를 당연시하고 합리화하고 계속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반복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엘리제사장은 사무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제사장이었고 또한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대한 그의 반응은 이것이었습니다.
“삼상3:18 사무엘이 세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그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시니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것이니라 하니라”
그는 하나님의 재앙과 심판과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도 그냥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자기 자신의 심판과 멸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항상 어려움이 따릅니다. 하지만 그일에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그 일을 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그 어떤 것보다 크고
중요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것을 극복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21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22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거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것 밖에 없으니
23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그의 복음의 온전한 전파와 사람들에게 행한 복음의 온전한 소개가 그 당시에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였고
그리고 우리들도 구원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셔서 그 빛을 선전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도 그
빛을 선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실때까지 말입니다. 그가 이렇게 한 이유는 단 한가지 입니다. 자신에 보였던 그 은혜를
거부하지 않고 온전히 따랐기 때문입니다.
“19아그립바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
사도바울이 이 놀라운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거스리거나 거부하지 않고 온전히 행하였기 때문에 그는
변화되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는다면 그분이 보여주신 것을 거스리거나 거부하지 말고 온전히
행해야 하겠습니다. 이 놀라운 복음을 중단하지 말고 변질시키지도 말고 하나님이 어떠한 영광을 받으시는 분인지를 잘 전파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승리를 얻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