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4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5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저희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6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7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8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9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믿지 않았던 시절이 있습니다. 모태신앙이라고
해도 역시 믿음이 없던 시절이 있습니다. 날때부터 교회에 다닌 사람은 있어도 날때부터 믿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원죄를 안고
태어나며 그 원죄속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에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난 뒤부터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믿게 되고 그럴 때 구체적으로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믿음은 사탄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믿음을 사탄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사탄이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진정한 믿음이란 단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더 나아가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비로소 그 신앙에 따른 삶이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산타클로스도 있고 하나님도 있다는 식의 존재에 관한 믿음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습니다. 해가 있고 달이 있고 산이
있고 물이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분이 우리와 어떤 관계에 있고 우리가 그분에게 어떻게 해야하는 가를
생각할 때에만이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데 그러려면 구원받은 자로서의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그전의 믿음이란 단지 기대일 뿐이고 그 기대는 맞을
수도 있지만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믿음은 바로 하나님이 나의 구주이심을 믿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해 놓고 나면, 그 믿음을 갖지
않았을 때가 밝혀집니다. 모태신앙인들에게 그런 때란 매우 사소해 보이는 시기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교회에 가는 시절이지요. 교회가는 것을 힘들어하고
교회에 가야 하는 의무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시기이기도합니다. 아주 사소해보이고 어릴 때이기는 하지만 모든 모태신앙인들에게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는
않는 그런 시기는 분명히 있습니다.하지만 모태신앙이 아닌 신앙인들에게는
이러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시기는 너무나 구체적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믿게 되었을 때에는 더욱 선명합니다.
그런 시기를 생각해보면 누구에게나 불신의 이유라는 것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믿지 못할 때, 믿지 않을 때 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이 종류별로 다양하고 그러한 불신의 이유들을 종류별로 이해하고 나면
불신의 이유들이 무척 공감이 갈 것입니다. 이해하기 전에는 공감하기 힘들었겠지만 이해를 하고 난 다음에는 공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불신에 대해서
공감을 할 때에 비로소 그 불신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상담전도 과정의 첫 번째로, [1관계인식]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든지 기존의 아는 사람과 전도적인 관계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면 그 다음 단계에서 그 사람의 상태와 만나게 됩니다. 그 사람은 불신자로서
불신의 이유들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를 알게 되는 것이 [2불신이해]의 단계입니다. 그 이유들에 대해서 거부감이나 절망감을 갖지
않고 그속에서 하나님의 복음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불신의 이유들을 잘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합니다.
사도바울은 예루살렘에 들어갔다가 유대인들에게 잡혀서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로마군인들이 애매히 죽게 되는 것을 막아주었고 사람들에게 말할 기회를 얻게 되어서 많은 유대인들 앞에서 바울은 복음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처음 말한 것은 어떻게 자신이 불신자였다가 신자가 되었는가를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처음 복음을 믿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1부형들아 내가 지금 너희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하더라
2저희가 그 히브리 방언으로 말함을 듣고 더욱 종용한지라 이어 가로되
3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그는 말하기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자라고 배워서 율법의 엄한 교훈을 따르는 바리새인이었으며 하나님께
대해서 열심을 갖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율법을 잘 따르는 자였고 하나님께 대해서 열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던 율법의 엄한 교훈과 하나님께 대한 그자신의 열심이 바로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그가 행한 일은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4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그 모든 율법의 엄정함과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그리스도를 믿는 도를 핍박하고 사람을 죽이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기는 것이 되어진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섬기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따르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럴 때 그가 죽인 사람은 스데반이었는데, 스데반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바라본다는 증거를 하였어도 바울의 마음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의 마음으로 꽉 차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의 문제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최고의 선생으로부터 교육받았다는
자부심, 율법의 엄한 교훈을 따랐다는 자존감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구원에 대한 것을 알지 못하게 하겠다는 자신의 욕심이 결국 예수님을 핍박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는 이방인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믿고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지독하게 싫어하였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는 전체적인 불신의 단계 중에서 네 번째 단계인 ‘욕구’에
해당합니다. 전체 불신 단계는 [1영역, 2유형, 3감정, 4욕구]의 총 4가지가 있습니다.
각 단계들 속에서 불신의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유가 단지 [1영역]의 문제인 경우가 있습니다. 또는 바울의 경우처럼, [2유형]에 해당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3감정]에 해당하는 사람도 있고, [4욕구]에 해당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이러한 단계들이 생겨나는가 하면 사람마다 복음에 대한 경험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경험에 따라서 개개인별로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신의 이유를 이렇게 네 가지 단계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단계에 해당하는 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1영역: 교회에 가본 경험이 있으세요?]
[2유형: 안가시는 어떤 이유가 있으세요?]
[3감정: 하나님께 안좋은 감정이 있으세요?]
[4욕구: 하나님께 원하는 것이 있으세요?]
이렇게 주어지는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을 때 그 사람은 그 단계에 해당되고 그 단계에 따라서
적절한 복음을 증거해 줄 수 있습니다. 복음의 내용도 다양하기 때문에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내용을 전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 불신의 수준과 단계를 파악하고 복음을 전할 준비를 하게 됩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이 ‘욕구’에 해당하는 불신의 이유가 있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은혜를 나타내 주셨습니다. 친히 나타나셔서 그 자신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구원해 주시면서
복음에 대해서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바울은 그 불신의
이유를 버릴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절대로 바울에게 억지로 믿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에게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그의 불신의 이유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하는 것을 말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핍박받으시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에게 증거된 희생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복음의 내용이었습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바울은 자신의 무지를 깨달았고 즉시 눈이 멀어서 앞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바로
그렇게 앞을 보지 못하는 자였음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는 구원을 받아 자기가 그렇게 싫어하던 복음의 전파를 앞장서서 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렇게 싫어하던 사람들의 구원을 이방인에게까지 가서 증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신의 이유속에 있는 그 어리석음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맞는 복음을 증거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속에서 그에게 복음이 전달 되어질 수 있고 이해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말씀해 주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럴 때 그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완전히 변화됩니다. 진정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고제봉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형수로서 1800여명을 전도했던
사람인데, 그는 자신의 상관인 대대장 가족등 5사람을 도끼로 살해하고 사형을 언도받아 복역중이었습니다. 그때 안국선 집사님이라는 분이(나중에 목사님이
됩니다), 그분을 위해 전도를 했습니다. 무슨 말을 할 까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했던 첫마디 말은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3장 16절을 전하면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한 예수님의 구원계획에 대해서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그 말에 감화를 받아 결국 그는 모든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여 신자가 되었고 그 이후에 1800여명을 전도하고 사형집행을 받아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고백한 것은 자기에게 그토록 강한 욕심이 있어서 그렇게 악한 일을 했지만 만약 자기가 예수님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렇게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행히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기에 비록 살인을
저질렀어도 구원은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악한 사람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그도 역시 아이러니하게도 5사람을 죽이고서
1800명을 구원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가장 미워하고 증오하던 사람들에게 가장 귀하고 은혜로운 사랑을 전하는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의 불신의 이유 속에 바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이유를 발견합니다. 그렇게 불신이 있고 악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실 수 밖에 없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어리석고 모자라며
추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구나라는 이해를 하게 됩니다. 그 죽으심의 은혜와 희생을 전하기 위해 그의 악함과 추함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복음은 의미를 갖고 예수님이 깨끗한 자를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병든 자를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런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도 구원을 얻을 수 있었고, 고제봉도 구원을 얻을 수 있었고, 바로 나도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은혜 속에 사람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를 깨닫게 됩니다.
불신자에게 있는 이 불신의 이유를 이해하고 복음을 전하는 과정을 통해 상담전도의 은혜를 누려보시기
바랍니다. 주변의 어느 누구에게든지 그의 안타까운 불신의 이유가 사라지고 온전히 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그러한 불신의 이유를 바라보면서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전도의 삶이 이번 주에도 놀랍게 펼쳐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