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삼일만에 여로보암과 모든 백성이 르호보암에게 나아왔으니 이는 왕이 명하여 이르기를 삼일만에
내게로 다시 오라 하였음이라
13왕이 포학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쌔 노인의 교도를 버리고
14소년의 가르침을 좇아 저희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 부친은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찌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15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고한 말씀을 응하게 하심이더라
16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뇨 이새의 아들에게서 업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하고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
1.지배는 다른 사람이나 상황을 뜻대로 움직이려는 욕구이다.
사람의 여러가지 욕구는 양상이 각각 다릅니다. 그래서 늘 새롭게
보이고 늘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성경이 보여주시는 사람의 마음을 살펴보면 그 끝이 보입니다. 사람은 늘 욕구의 여섯 가지 중에 하나에 이끌립니다.
또한 그 중 여러 가지에 이끌립니다. 한 가지 혹은 두 가지 혹은 더 많은 욕구에 의해서 좌우되고 그럴 때 어리석은 일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욕구를 다 버리고 하나님을 붙들 때에 우리는 온전한 승리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여섯 번째 욕구인 지배는 말 그대로‘지배하려는’ 욕구입니다. 지배의 대상은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꼭 지배를 하려는 욕구만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혹은 지배를 받으려는 욕구도 역시 동일한 욕구이기 때문입니다.
지배한다는 것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없는 사람은 별로 자기 뜻대로 움직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려고 하기 시작하면 이래도 좋지 않고 저래도 좋지 않은 것입니다.
지배를 받고자 하는 욕구도 문제입니다. 자신의 뜻을 주장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기
때문에 스스로 애를 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면 지배를 받는 것을 더 원하게 됩니다. 그렇게 지배를 받으려고 하면 결국에는 내가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을 생각하지 않게 되고, 내가 결정하고 싶지 않은 것을 결정하지 않게 되니까, 결국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지배를
받으면서 상황과 사람을 적절히 통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배를 받으려는 것도 역시 동일한 욕구가 됩니다.
2.르호보암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배하려고 하였다.
아무래도 쉽게 이해가 되는 것은 지배하려고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르호보암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배하려고 하였습니다. 그가 더 강하고 확실하며 분명하게 지배하기 위해서 택한
도구는 전갈이었습니다.
“14소년의 가르침을 좇아 저희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 부친은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찌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부친은 채찍으로 징치하였으나, 전갈의 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사실 솔로몬이 부역의 일들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힘들게는 하였으나 그는 채찍으로 다스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르호보암은
아버지 솔로몬이 채찍으로 다스렸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더 크고 강한 방법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전갈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하면, 전갈로 안되면 그 다음번에는 무엇이 나올 수 있을까요? 더 끔찍하고 더 잔인하며 더 강퍅한 방법을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 방법을
통해 그 본질이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러면 그럴 수록 원하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욕구가 되어버리면 결국에는 깨져버리는 것입니다. 나사못도 돌리다 돌리다 결국에는 못의 홈이 다 없어지고 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립니다. 르호보암도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16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뇨 이새의 아들에게서 업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하고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
그들은 더이상 르호보암의 백성이 되지 않겠다고 떠나버렸습니다.
우리도 지배의 욕구에 사로잡히게 되면 모두가 떠나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아니면 자신이 떠나게 되기도 합니다. 지배의 욕구는 결국은 결코 다스리지
못하게 만듭니다.
3.자신의 욕구로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동행하고자 해야 한다.
이러한 욕구를 깨트리는 방법은 하나님의 ‘동행’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욕구를 줄인다는 것은 지혜로운 방법이 아닙니다. 줄여지는 욕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줄인다고 하다보면 오히려 더 늘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전보다는
많이 좋아질 수는 있겠지만, 결국에는 사고가 나게 됩니다. 평생을 조심한다 하더라도 딱 한번의 실수가 일을 그르칠 수도 있으니 그렇게 되지 않도록
아예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은 바로 이러한 일을 이루게 합니다. 하나님을 따를
때 하나님은 새로운 목표를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생각하게 하십니다. 내 욕구의 끝은 자기 자신 뿐이지만 하나님은 그 욕구가 전혀 새로운
것이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지배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그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붙들 때에 그로 인해서 더 놀라운 일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지배하려는 마음이 없었던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 보다도 더 나은 결과를 만듭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별다른 의지가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어도
별다른 의지가 없게 되지만 엄청난 의지가 있던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 그 의지가 전혀 새로운 것으로 바뀌게 되기 때문입니다. 구름만 있었지 알갱이가
없었다면, 그 알갱이가 생길 때 비로소 엄청난 비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4.솔로몬은 왕이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간구하였다.
솔로몬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처음 왕이 되었을 때에
그는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역대하 1장입니다.
“대하1:8 솔로몬이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께서 전에 큰
은혜를 나의 아비 다윗에게 베푸시고 나로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니
9 여호와 하나님이여 원컨대 주는 내 아비 다윗에게 허하신
것을 이제 굳게 하옵소서 주께서 나로 땅의 티끌 같이 많은 백성의 왕을 삼으셨사오니
10 주는 이제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많은 주의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하리이까”
그는 왕이 되어서 우쭐해지게 되지 않았고 백성들을 이렇게 저렇게 자기 맘대로 해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세상의
지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대하1:11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이르시되 이런 마음이
네게 있어서 부나 재물이나 존영이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너로 치리하게 한 내 백성을 재판하기
위하여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으니
대하1:12 그러므로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존영도 주리니 너의 전의 왕들이 이 같음이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이 같음이 없으리라”
오늘날에도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욕구로 살아가면 안됩니다. 그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 사람들과 함께 하려고 하면 역시 안됩니다. 그들 속에서 하나님과 연합하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의미가 생깁니다. 우리 자신은 어떤 식으로든 비를 내릴 수 없습니다. 내린다 하더라도 일시적일 뿐입니다. 그러나 거대한 뜻과 오묘하신
역사하심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에 비로소 오랜 비를 지속적으로 내릴 수 있습니다. 은혜의 장마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속에
이러한 욕구가 변하여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온전한 삶이 우리의
방향이 되고 우리의 목표가 되고 우리의 열매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