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왕이 이에 그 곁에 있는 군대 장관 요압에게 이르되
너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로 다니며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인구를 조사하여 그 도수를 내게 알게 하라
3 요압이 왕께 고하되 이 백성은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 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하되
4 왕의 명령이 요압과 군대 장관들을 재촉한지라 요압과 장관들이 이스라엘 인구를 조사하려고 왕의 앞에서 물러나서
우리교회가 상담을 비전으로 삼고 본격적으로 나가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구체적인 비전에 대한 의식이 없이 그냥 병행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상담이 교회의 비전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상담사역을 계속 진행하면서 기존 교회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생겨나면서 우리 교회는
절대로 그런 전철을 밟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상담이 우리 교회의 구체적인 비전이 되었습니다.
상담이 비전일 수 있는 이유는 기존의 교회사역 만으로는 다양한 삶의 문제들을 다 담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공부, 큐티, 성경읽기, 새벽기도, 기도원운동, 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 제자훈련, 선교훈련 등등
이 모든 프로그램들은 좀더 세밀한 삶을 다루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정말 그런 프로그램이 신앙적으로 효과적이었다면 그런 교회에서 문제를 갖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문제가 생겨난다 하더라도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그 문제를 감당하고 해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교회에서 문제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상담소나 정신과를 가게 되고 정신과에서도 해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애초부터 성경적인 상담으로 했었다면 좋았을 것을 너무나 많은 고통과 어려움이 수반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안타까움 속에서 성경적 상담은 우리 교회의 비전이 되었습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비전을 이루고자 할 때에 교회의 부흥이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우리의 목표이며 각 교회에 유익한
도구를 공급하는 것이 우리의 바램입니다. 이를 위해서 먼저 우리 자신들이 배워서 과연 이 상담이 교인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질 수 있으며 이를 통해서
교회에 어떤 유익이 생겨날 수 있는가를 우리가 먼저 실천해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또 하나의 유형의 문제를 말씀속에서 생각하고자 합니다.
1.조직의 문제는 상하관계 속에서 권한과 책임으로 인해 고민하는 문제이다.
오늘 우리가 보고자 하는 상담에서의 문제유형은 ‘조직의 문제’입니다. 이 조직의 문제는 삼각형으로 대변되는데 각 위치에 따라서 ‘1지도자, 2중간자, 3추종자, 4외부인’으로 나뉘어집니다.
그리고 각 위치에 맞게 책임과 한계가 주어집니다. 지도자는 무한책임과 무한한계가 있지만 중간자는 유한 책임과 유한 한계가 있고 추종자에게는 유한
한계만이 있을 뿐입니다. 외부인은 책임도 없고 한계도 없습니다. 이 가운데서 각 사람은 자신의 위치에서 해야할 일을 행하면서 조직을 구성합니다.
만약 그 위치에서 해야할 일에 부족함이 생긴다면 조직 내에 문제가 생기면서 갈등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2.다윗과 요압은 각각의 위치에서 자신의 한계와 책임에 대한 수행에 대해서 고민하였다.
방금 읽은 성경말씀에서 다윗과 요압은 지도자와 중간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고민을 보여줍니다. 지도자로서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을 만한 일을 행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2 왕이 이에 그 곁에 있는 군대 장관 요압에게 이르되 너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로 다니며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인구를 조사하여 그 도수를 내게 알게 하라”
그는 이런 일을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의 판단은 잘못되었고 비록 지금까지의 성공과 업적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 행하는 일은 그 모든 성공과 업적을 다 무너뜨리는 것이었습니다. 어리석은
지도자의 길을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더 어리석은 것은 자신의 밑에 있는 사람의 충고를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돌이킬 수 있는 시점을
넘어서 버렸습니다.
요압도 중간자로서 조직의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그는 다윗의 어리석음을 보면서 지혜로운 제언을 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의 제언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럴 때 그는 고민합니다.
나의 제언을 받아주지 않는 지도자와 함께 할 것인가, 아니면 거역하고 반역하거나 떠날 것인가. 이것이 그의 중간자로서의 고민이었습니다. 3절입니다.
“3 요압이 왕께 고하되 이 백성은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 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하되”
그는 결국 이 고민속에서 그래도 왕을 따르기로 결정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의 한계임을 자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한계를 벗어나려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에 순종하려고 했을 때에 이
장면에서 만큼은 그는 다윗보다 의로운 자가 되었습니다.
3.우리는 조직의 문제를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으로 풀어나가야만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조직 내에 있는 책임과 한계를 자각하고 주님께 의지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책임을 인식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앞에서 올바른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또한 요압은 자신의 한계를 자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추종자는 책임이 없어서 자유로울지 몰라도 한계에 있으므로 힘들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자신의 한계를 순종할 때에 그로 인해서 새로운 책임을 가지게 되기도 합니다.
다른 예로서 다윗이 사울의 밑에 있었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랬을 때에 다윗도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사울에 대해서 악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상26장23절에 나오는 말입니다.
“삼상26:23 여호와께서 각 사람에게 그 의와 신실을 갚으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오늘날 왕을 내 손에 붙이셨으되 나는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치기를 원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
24 오늘날 왕의 생명을 내가 중히 여긴것 같이 내 생명을
여호와께서 중히 여기셔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구하여 내시기를 바라나이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아래에 있는 사람은 그 한계를 넘어가지 않을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가
됩니다. 그 한계를 넘어선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4.다윗이 자신의 책임으로 인해서 괴로움 당한 것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들이 되자.
우리는 결국 조직 내에서 행해야하는 책임과 한계를 잘 순종하지 못했을 때 요압은 아무 처벌이
없었지만 다윗이 온전한 처벌을 받는 것을 봅니다. 그의 뼈저린 후회와 자책을 보십시오.
“17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가로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삽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
그는 자신의 죄로 인해 죽어가는 백성들을 보며 심히 슬퍼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괴로워하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된 이유는 자신이 하지 말아야 하는 조직의 문제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그 악에
대해서 갚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 이십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조직의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해야 합니다.
누군가 이 조직의 문제를 겪고 있다면 지혜로움을 보이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누구나 조직 내에서 책임과 한계의 문제를 겪게 됨을 기억하며 그럴 때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