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2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3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6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7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
8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오늘 우리는
이 말씀속에서 사도바울의 가장 중요한 확신에 대해서 보게 됩니다. 바로 6절입니다.
“6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이러한
확신은 바로 우리가 보고자 하는 구원의 확신에 대한 것입니다. 그 확신은 구원에 대해서 불안하게 생각하며
자신없어 하는 많은 교인들에게 구체적이면서도 분명한 소망을 갖게 하는 힘있는 하나님의 위로가 됩니다. 이러한
확신을 통해서 교인들에게 다시 한번 구체적인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1, 2절 말씀 속에서 바울과 디모데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과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의 인삿말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의 이름으로 문안합니다. 빌립보는 바울이 유럽전도를 시작했을
때, 처음 이르렀던 곳입니다. 마게도냐인이 손짓하여 부르는
부름을 환상중에 보고 그것이 주님의 뜻임을 깨닫고 유럽으로 전도를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이르렀던
성이 빌립보 성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바울은 자주장사 루디아를 만났고,
루디아의 헌신을 통해 비로소 빌립보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니,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각별하게 생각했습니다. 그의 첫 사역지요 유럽에서의
첫 열매가 열린 곳이었습니다. 디모데 역시 바울을 따라 유럽전도를 나설 때에 빌립보에 동행하였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도 바울을 함께 하면서 어떻게 빌립보 교회가 생기게 되었으며, 그
성장이 어떠했는지를 다 목격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디모데에게 빌립보 교회는 특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대하여 말하기를, 자신은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고 특히 더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았고 변질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5절을 보십시오.
"1: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1: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1:5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
고린도교회는
여러가지 문제가 산적했었지만, 빌립보 교회는 그러한 문제 보다도 칭찬이 더 많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칭찬의 이유는 그들이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안에서 서로 교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이 항상 일정하다는 것은 너무나 복스러운 일입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한 모습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들이 그러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일에는 무수히 많은 시련과 유혹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청소년
시절, 교회 다닐 때에는 그렇게 교회 선배들이 멋있고 존경스러워 보였습니다. 문학의 밤이나 성가대 발표회를 할 때면 얼마나 잘하고 열심히 했던지, 도저히
교회 선배들의 능력에 따르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 제가 그 선배님들의 자리에 있게 되었을 때, 그들은 더 이상 교회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교회를 떠나 버린 것입니다.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그렇게 교회를 떠난 선배들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통계적으로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각 교회마다 중고등부가 넘쳐났지만, 그들이 대학교에 진학을 하고, 직장에 들어갈 때쯤 되면 교회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교회 직분자들의 자녀나 좀 나올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것이 말해주는 바가 무엇입니까? 바로 믿음은 지키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가 가진 믿음을 빼앗고자 하는 사탄이 존재하기 때문에, 노력해서 지키지 않으면 도저히 그 믿음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빌립보 교인들은 그들의 믿음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지킬 수
있었을까요?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은혜가 임했던 것일까요? 그들의 신앙의 삶에는 사탄의 유혹이 전혀 없었던 것일까요? 그들의
믿음은 시작부터가 달라서 그렇게 아무런 변화없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동일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들의
삶에는 동일한 사탄의 유혹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믿음은 우리가 가진 믿음이나 모든 성도들이 갖는
믿음과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변치 않게 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7절 말씀을 보십시오.
"1: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
그들의
비밀이 여기 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복음을 확정함에 다 함께 참예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울을 도왔습니다. 함께 노력했습니다. 함께 기도했습니다. 함께 복음을 변명했습니다. 함께 복음을 확정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열심히 응원했습니다. 바울의 편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한 편이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처음 받았던 믿음을 그대로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그 신앙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괴로우며, 때로는 싸워야 하고, 때로는 견뎌야 하는 일이었지만, 그 모든 일들이 그들의 받은 믿음을 건강하게 만들어 준 것이었습니다. 변함없이
만들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바울과 한 편이 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바울이
매여도 아무 신경 쓰지 않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변명해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확정해도, 바울이 복음으로 인해 핍박받아도, 바울이 복음으로 인해 괴로와도, 자신들은 편하고 자유로우며 행복하고
즐거워했다면, 그들의 신앙은 썩어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몸이 운동을 하면 건강해 지는 반면, 먹기만 하고 운동하지 않으면 쇠약해지는 것처럼, 우리 신앙도 건강한 긴장속에서 강해집니다. 편하고 쉽기만 해서는
병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과 함께 복음에 함께 매이고, 함께 변명하고, 함께 확정하였던
빌립보 교인들이 너무나 고마왔습니다. 아니, 그들을 사모했습니다. 하나님을 증인으로 내세울 정도로 그들을 사모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한 팀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함께
동고동락하는 것입니다. 고생은 따로 하고, 즐거움은 같이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그들을 바라보며, 바울은 선언합니다.
"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여기서
중요한 말은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계속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누굽니까?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분께서
우리 마음에 구주를 영접하게 하셨고, 구주를 위해서 살게 하셨으며, 구주를
위해 헌신하게 하셨습니다. 그분이 일을 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속의 착한 일은 중단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일을 쉬시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일하십니다. 언제까지 하실까요?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날, 다시 이 세상에 재림하시는 날까지 이루십니다.
이제 이러한
구원의 확신을 바라보며 우리도 그 구원의 확신을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이지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붙들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붙들어서 구원해 주십니다. 배가 물에 뜨기만 해서는 안되고 돛을 올리고 키를 조정해서 배가 가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만 할 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께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나머지를 책임져 주십니다. 그것이 복음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은혜를 붙들고 나아가는 것이 바로 구원의 확신입니다.
지금도
교회는 다니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담대히 복음의 은혜를 전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들이 단순히 시작하기만 하고 마치지는 못하는 자가 아니라 시작하고 이루시는
하나님을 붙들어서 마침내 하나님 안에서 다 이룰 수 있는 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구원의 전파가 여러분을 통해서 놀랍게 나타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