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통해서 말을 하고자 한다면 말을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그런 좋은 말을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한번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았다면 계속해서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다스림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 두번 하나님께 다스림을 받았지만 왜 계속해서 다스림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몇 년은 그렇게 다스림을 받았지만 왜 지속적으로 다스림을 받을 수는 없을까요? 여기에는 좀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주님을 따르는 이유가 하나님 중심이 아니기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을 따르기 때문에 얼마동안은
함께 하고 얼마동안은 다스림을 받지만 오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소원성취를 위해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다른
종교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된 좋은 일이 오래 가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애초의 목적이 좋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를 생각할 때에만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오래도록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정말로 원하는 것이 개인적인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느 순간 하나님의 것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럴 때 만이 정말 오래도록 하나님과 함께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여주시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받으신 사탄의 시험장면입니다. 그중에서도 첫 번째 시험은 가장 직설적이고 유혹적인 것이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 첫 번째 시험은 너무나 위력적입니다.
주님이 어떻게 그 시험을 이겨내시는지를 보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것에 대한 온전한 목표가 생겨나시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은 우리가 세상의 것을 위해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위해서 살아야 함을 알려주십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 속에서 사탄은 예수님에게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그 떡을 먹으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첫 번째 시험이었습니다.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하라”
어떻게 보면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께 능력이 있으니 그 능력으로 돌을 떡이 되게 해서 먹으라는
말이 단순하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단지 먹고 마시는 문제라고 생각했으면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순진한 생각이고
진실은 이 시험이 매우 어렵고 힘든 문제라는 것입니다. 정말로 사탄의 말을 듣고 배가 고프니까 돌을 떡으로 만들어서 먹으면 어떻게 될까요? 이
문제가 그렇게 쉽지 않은 것은 그로 인해서 돌을 떡처럼 먹고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자신의 배고픔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결국에는
자신의 배고픔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것이 바로 정확히 예수님에 대해서 사탄이 노린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여기에 넘어가 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그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그 말씀을 함께 봅시다.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삶의 목적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사탄의 첫 번째 시험이 돌을
떡으로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으로 사느냐는 것에 관한 더욱 본질적인 문제였기 때문에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은 무엇을 위해
살며 무엇으로 살 것이냐를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것이 그 시험을 이기는 능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3.
사탄의 거짓말은 본질적인 돌을 떡으로 생각하며 살게 만드는
악한 것입니다.
어쩌면 여전히 나를 위해 살라라는 사탄의 속삭임은 우리에게 매력적으로 들릴 지 모릅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고 싶은 말을 하며 살라고 합니다. 해야 하는 말을 하며 살라고 합니다. 때로 그것은 너무나 필수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말한 마디 못하고 대꾸 한번 못하는 삶은 얼마나 필요한 자존심을 채우지 못하는 삶이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그 본질이 무엇인가를 깨닫는다면 결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사탄이 떡으로 만들라고 하는 그것의 본질은 돌입니다. 그래서 감정에 사로잡혀서 그 말은 꼭 해야 하겠고 그 말을 안하고는
못살겠다는 심정에 그것을 떡으로 만들어 놓고 먹어버리면 그것은 뱃속에서 돌이 됩니다. 감정에 사로잡혔을 때에는 그 말이 너무나 중요한 말처럼 보였지만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탄에게 속은 것입니다. 감정에 사로잡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이러한 시험에 넘어가면 안됩니다. 그 결국은 너무나 안타까운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주는 말을 따르다가 어려움 당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사탄의 욕설을
따라하다가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탄의 저주를 따라하다가 그로 인해서 악으로 빠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탄의
떡을 먹고자 하다가 그로 인해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은 거짓의 화신이자 악의 주동자인 사탄에 의해서 우리가
속아넘어가서 생기는 일들입니다. 그로 인해서 가정 폭력과 학교 폭력과 사회 폭력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4.
우리는 진실을 깨닫고 세상의 거짓을 위해서 살지 말고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학교 폭력이 만연하고 그로 인해서 고통 당하는 아이들이 점차 늘어가는 이때에 우리가 하는
말들은 또 다른 죄악의 씨앗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가 버린 불씨가 커다란 산불이 되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안타까워하고 돌이키고자 한다면 우리가 먼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에 대한 목표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사탄의 말에 대한 거부감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에 대한 소망과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말씀을 듣고 싶고 그 말씀을 하고
싶고 그 말씀을 위해서 나의 말을 사용하기를 원할 때에 우리는 그 말씀으로 사는 자들이 됩니다.
하나님의 입에서는 나오는 말씀을 배우려고 할 때 그를 닮게 되고 그를 따라하고 그를 흉내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조용기 목사님의 말투는 그분에게서 배운 모든 사람들이 다 따라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실은 그 말투가 사투리였지만
더이상 사투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심성을 보여주는 특징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따라하고 싶은 열정을 가질 때에
우리는 한순간 좋은 말로 그치지 않고 오래도록 좋은 말로 넘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의 삶 속에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의 말이 넘치고 그로 인해서 하나님의 하고자 하시는 일들을
이루시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입에서는 나오는 말씀이 우리들의 모든 말 속에 거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