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5: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왔을 때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눅] 15: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눅] 15: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눅] 15:28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눅] 15:29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눅] 15:30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눅] 15: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눅] 15: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사람들은 단순한 문제 그 이상의 이유인 감정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누군가가 교회를 다녀본 적이 있고 어떤 문제를 경험하여서 교회를 다니지 않을 때 우리는
그를 설득해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다녀서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을 경험해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긍휼히 여기신다고 설득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그런
말이 먹혀들지 않는다면 그는 더 깊은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좀더 그 마음 속으로 접근해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은 그와 함께 좀더 높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세번째 질문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질문을 통해 우리는 전도대상자에게 좀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며 전도대상자는 좀더 복음으로 더 나아가게 됩니다.
[교회(하나님)에 대해서 어떤 감정이 있으신가요?]
이 질문에 대해서 전도대상자는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할 수 도 있습니다. 있다고 할 때에는 대개 여섯 가지의 감정을 갖습니다.
[미움, 분노, 절망, 두렴, 죄책, 수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 이 세 가지 중의
하나의 감정을 갖습니다. 없다고 한다면 정말 없을 수도 있지만 사실 그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본인이
모를 수도 있고 있더라도 말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대화를 나누었다면 감정이 있거나
혹은 없거나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야 합니다. 또한 욕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욕구를 물어볼 수 있습니다.
[교회에 대해서
어떤 원하는 것이 있으신가요?]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전도대상자는 자신의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거나 혹은 없다고 할것입니다. 예상할 수 있는 답변주제는 여섯 가지가 있습니다.
[유익, 편안, 쾌락, 존경, 인정, 지배]
이러한 욕구들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욕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루면 도와줄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서 논쟁을
벌이고자 한다면 함께 어려운 마음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전도대상자가
하나님을 바라보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감정이나 욕구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서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을 안타까워 하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두 아들의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 아버지는 정확히 하나님의 마음과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아버지는 화난 아들을 달래고 있습니다.
“28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하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사람들은 큰아들과 비슷하게 그런 감정과 불편함으로 인해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멀리 떠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큰아들은 작은 아들 때문에 화가 났지만 사람들은 각각
자기의 사연과 이유때문에 화가 납니다. 그리고 멀리 떠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떠나가도록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와 함께 있고 싶어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가 떠나갔을 때 하나님은 따라가셔서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그곳은 비록 집밖이었지만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도대상자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비록 밖이지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감정에 관한 이야기일 때 그렇습니다.
감정에 사로잡힌 큰 아들이 이러저러한 말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많은 말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그에 대한 아버지의 말이었습니다.
그 아버지의 말을 들었을 때 큰 아들은 마음을 돌렸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이 그의 마음을
자극했을까요? 다시 한번 아버지의 말을 생각해 봅니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이 말 중에서 정말 큰 아들에게 와닿았던 중요한 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말들도 와닿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 많은 말 속에 여러분이 마음에 드는 것은 또 다른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보는 감정에 빠진 사람을 구원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령님이 얼마나 그 사람과 함께 있기를
원하시는 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쌓인 많은 감정들을 다 사라지게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정리하자면 감정이나 욕구가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이렇게 이야기해주십시오.
“당신은 그 감정이나
욕구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았군요.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당신과 함께 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화가 난 큰 아들을 찾아 밖으로 나온 아버지의 마음을 깨달아서
우리도 감정에 빠진 불신자, 낙심자를 찾아 밖으로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아버지는 그와 함께 있고 싶어하시는지 새로운 은혜를 지금도 주고 계시는지를 말해주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상담전도를 통해서 더욱 주님의 은혜를 나타내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