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4:25 드디어 갈멜 산으로
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멀리서 그를 보고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저기 수넴 여인이 있도다
[왕하] 4:26 너는 달려가서
그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
[왕하] 4:27 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발을 안은지라 게하시가 가까이 와서 그를 물리치고자 하매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가만 두라 그의 영혼이 괴로워하지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하니라
[왕하] 4:28 여인이 이르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하니
상담전도를 하려고 할 때 첫 번째 단계에서 우리는 ‘관계인식’을 합니다. 이러한
관계인식을 통해서 우리는 전도대상자가 어떠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고 그러한 인식은 그 다음 단계인 ‘마음이해’로 넘어갈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한 사람의 마음을 알고자 할 때에
그와의 관계를 인식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누구나 다 관계가 형성된다음에 비로소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한 이해는 더 나아가서 복음전달의 중요한 과정이 됩니다.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질문은 네가지가 있습니다. 그중 앞선 두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교회의 경험이
어떠셨나요?”
이러한 질문은 그의 생활영역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질문들입니다. 이러한 질문을 통해서 전도대상자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질문에
대해서는 해당되는 6가지의 해당되는 주제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대답하는 내용은 6가지의 주제에 해당됩니다. ‘영역’에 대해서 물어보고 ‘교회의 경험이 어떠셨는가’를 물어 볼 때 다음과 같은 6가지의 영역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개인, 가정, 교회, 학교, 직장, 사회]
이것이 그의 생활영역을 보여주고 그속에서 교회의 의미가
어떠하였는지를 알게 합니다. 그 다음, 유형에 대해서 물어볼
때 다음과 같이 물을 때, 역시 6가지 유형이 나타납니다.
“신앙(종교)생활에 문제나 어려움이 있으신가요?”
[순위, 합의, 선악, 조직, 관계, 심층]
순위는 무엇을 먼저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고 합의는 의견일치와
관계된 것입니다. 선악은 옳고 그름에 대한 것이고 조직은 책임과 한계에 대한 것입니다. 관계는 다른 사람들과의 인간관계와 관련되고 심층은 감정의 괴로움와 몸의 고통에 대한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유형은 전도대상자가 갖는 어려움을 깨닫게 해줍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신만의 괴로움과 자신만의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면서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분명히 그 괴로움을 알고 계십니다. 그 고통받는 상태를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어려움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져서 도움을 받게 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괴로움이 있지만
그 괴로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그 장면을 우리는 27절에서
보게 됩니다.
“[왕하] 4:27 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발을 안은지라 게하시가 가까이 와서 그를 물리치고자 하매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가만 두라 그의 영혼이 괴로워하지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하니라”
하나님께서 엘리사에게 여인의 고통을 미리 알려주시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왜 그녀는 엘리사의 발을 잡으면서 눈물을 흘려야만 했을까요? 그 이유는 그 다음 구절 때문이었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왕하] 4:28 여인이 이르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하니”
엘리사는 그 여인의 고통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 여인이 얼마나 괴로워하는지를 알아야 했습니다. 단지 그 여인의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는 것 이상으로 그 여인의 마음에 얼마나 사무치는 아픔이 있는 지를 알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한 부분인가요? 그런 것은 꼭 들어야 알 수 있습니까?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지 않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이 정말 중요한 부분입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 것이었는지를
직접 당사자로부터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고통을 대하는 태도가 남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야 그 고통에 대해서 새로운 반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그 문제를 엘리사 선지자가 직접 듣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는 그 여인을 물리치려는 게하시를 제지하였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소외되고 고독하며 외로운 삶 속에서 우리에게 하나님은 다른 사람에게 우리의 고통을
말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고통을 듣게 하셨습니다. 그것도
전해 듣는 말이 아니라 직접 듣는 고통에 대한 토로함을 접하게 하십니다. 그것을 경험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꿈쩍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들을
때에만 우리는 움직이게 됩니다. 그것을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그 개인적인 심연의
은밀한 고통을 직접 귀로 듣게 하십니다. 그렇게 엘리사가 여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29절에서 나오는 것처럼 그는 게하시를 보냈습니다.
“왕하 4:29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이르되 네 허리를 묶고 내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 사람을 만나거든 인사하지 말며
사람에 네게 인사할찌라도 대답하지 말고 내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
얼마나 든든한 말입니까?
얼마나 구체적인 방법입니까? 얼마나 세밀한 처방입니까? 그러나
그 방법은 효과는 없었습니다. 게하시가 말한 그대로 했지만 그것은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곧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왜 게하시로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는지 알게 됩니다. 30절을 보십시오.
“왕하 4:30 아이의 어미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엘리사가 이에 일어나 여인을 좇아가니라”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듣는 것은 그 고민을 뿌리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를 적극적으로 돕게 만듭니다. 그가 알아서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되어서 달라질 수 있도록 능동적으로 돕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문제 해결의 과정입니다. 엘리사가 움직였을 때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엘리사는 그 아들에게 나아가서 자기의 입을 그 입에 , 자기 눈을 그 눈에, 자기 손을 그 손에 대고 그 몸에 엎드렸습니다. 그럴 때 그 아이가 살아났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살아난 것이 아닙니다. 정작은 33절 때문이었습니다.
“왕하 4:33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 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그 기도가 효과적이었습니다. 그 아들을 살리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께 말씀을 드린 자는 엘리사이기 때문입니다. 여인의 고통을 전달한 자는 바로 엘리사였습니다. 여인이 엘리사에게
고통을 토로한 것처럼 엘리사는 하나님께 고통을 전달했습니다. 하나님께 그 고통이 전해졌을 때 하나님은
그 아들을 살리셨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괴로움을 알게 되면서 주님께 나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러한 기적은 지금도 진행됩니다. 그 시작은 고통받는 자의 괴로움에 귀를 기울임이면서 시작됩니다. 혹은
고통받는 자가 자기의 괴로움을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하면서 시작됩니다. 그 소통이 소외와 고독 속에 죽어가는
한 사람을 살립니다. 왜냐하면 단지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소통 속에서 더큰 소통인 하나님과의 관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런 일들이 일어나기를 원하십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남편과 아내 사이에, 형제와 자매 사이에, 친구와 친구 사이에, 제자와 선생 사이에, 성도와 목회자 사이에 그런 일들이 일어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소통이 필요없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괴로움의 이야기 속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사람이 함께 뛰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들어야만 하고 그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주변에는 그런 소통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그런 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그로 인해 여러분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한 기도제목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께 나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럴 때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이일을
위해 더욱 마음을 살피고 그 마음으로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