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전도]] 44행 26; 8-15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이유들2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크게보기]
44행 26; 8-15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이유들2_2e
2020. 1. 19. 주. 주일오후.
*개요: 전도비전 [행]26:8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행]26:9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행]26:10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행]26:11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행]26:12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행]26:13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행]26: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행]26:15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사람들이 신앙을 가지지 않을 때 그 불신앙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교회에 나가지 않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어떤 이유나 사정이 있지 않을까요? 그가 만약 이전에 교회에 다닌 적이 있다면 그런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을까요? 먼저 교회에 나가는지를 물어보고 나가지 않는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그래서 불신앙의 구체적인 상황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그냥 외면해 버리는 것과 다릅니다. 왜냐하면 그 이유를 알면 도움을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질문은 성경 속에서도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심문을 받으면서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러한 질문은 근본적으로 불신의 이유를 묻는 것에는 동일한 의미가 있습니다. “[행]26:8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바울은 아그립바왕이 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심을 믿지 못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물론 당연히 믿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신다면 다릅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는 것도 사람이 사람을 살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살리신 것이기 때문에 믿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단지 인간에게 가능한 일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이 하셨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전하기 위해서 전도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그것을 왜 믿지 않는지를 물어야만 합니다. 그만큼 전도자는 복음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묻다보면 쉽게 답하는 사람도 있지만 쉽게 답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그 대답이 현재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대답을 통해서 도와줄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불신의 원인 중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도 있지만 또한 대인적인 것도 있어서 격려와 도움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는 것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그립바왕은 바울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행]26:28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그렇게 묻는 것은 전도의 말이 되었습니다. 아그립바왕도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믿지 않는 이유를 묻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당시에 아그립바왕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바울에게서 적은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울을 낫게 보고 그가 죄수로서 하는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에 그가 복음을 받아들일 기회는 적었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의 상황에 대해서 최소한 이해는 하였습니다. 32절을 보십시오. “[행]26:32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이것은 그가 그만큼 바울이 진실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질문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은 전도자의 확신과 소망이었습니다. 이러한 질문을 할 때에 질문자의 충만함도 같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와 같이 믿지 않는 이유에 대한 질문을 통해서 진정한 신앙을 갖게 하는 것은 단지 사도 바울만 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불신의 질문이란 본질적으로 질문자의 충만함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그래서 사도 바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행]26: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바울은 자신이 처음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경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전 사울에게 나타나셔서 그가 왜 예수님을 핍박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왜 나를 핍박하느냐는 질문은 본질적으로 ‘왜 나를 믿지 않았느냐’라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사울에게 불신의 이유를 물으셨습니다. 물론 사울은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큰 빛이 나타나서 왜 나를 핍박하느냐는 질문을 받는 것만으로도, 또한 그 질문을 하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 자신의 무지와 죄악을 여실히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불신자들에게 왜 믿지 않았는가, 왜 교회에 나가지 않았는가, 왜 교회를 핍박하였는가, 왜 기독교를 그렇게 싫어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 만으로도 그의 불신에는 이유가 있고 그 스스로 생각해보게 함으로써 복음에 대한 어리석은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거기에 대한 대답이 어떠하든지 말입니다. 때로는 아무런 대답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질문을 통해서 본질적인 의미를 전할 수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전도를 해 봅시다. 우리가 전도하고자 하는 그 한사람에게, 혹은 전도해야만 하는 그 한 사람에게, 혹은 전도할 수 있을지 모르는 그 한 사람에게 교회에 안다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어봅시다. 그럴 때 우리는 그런 이유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나오는 것이 필요하고 신앙생활을 통해서 여러 가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확신은 우리 자신에게 유익하고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역시 유익합니다.
그렇게 교회 안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다 보면 몇 가지 유형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더 중요하게 해야할 일이 있어서 (순위) 2. 다른 사람과 합의가 안되어서 (합의) 3. 은밀한 죄문제가 걸려 있어서 (선악) 4. 조직 속에서 책임이 있기 때문에 (조직) 5. 불신의 관계로 연결되어서 (관계) 6. 몸의 문제나 감정의 문제가 있어서 (심층) 어떤 이유이든 안타까운 이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는 전부 하나님의 은혜로 극복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구원을 위해서는 모든 것이 극복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우리는 전도와 함께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의지해야만 이러한 이유들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불신의 이유를 알게 되면 기도도 구체적으로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불신의 이유에 대한 질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더욱 진실한 신앙과 간절한 마음으로 불신자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그런 정성스러운 마음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도의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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