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전도]] 42눅10; 6-9 평안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2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크게보기]
42눅10; 6-9 평안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2_2e
2019. 9. 29. 주. 주일오후.
*개요: 전도비전, [눅]10:6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눅]10: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눅]10:8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눅]10:9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본문말씀에서 우리는 누가복음에 나타난 복음전파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2000년 전의 전도방법이었지만 사실 가장 온전한 전도방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다양한 전도방법을 만나고 있지만 예수님 자신의 전도방법에 비하면 너무나 세속적입니다. 그것이 더 효과가 있다는 이유로 이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전도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그 열매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데리고 오는 것이 전도가 아닙니다. 주님의 방식으로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그럴 때에 전도의 진정한 의미가 나타납니다. 그것은 주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입니다. 전도의 과정을 통해 주님의 가르침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의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정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가가 중요합니다. 그 과정이 가장 온전한 것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 충성스러운 전도자의 네 가지 특징을 보게 됩니다.
첫 번째로 전도자는 주님의 평안을 머물게 하는 자입니다. 오늘 말씀은 그러한 전도자의 모습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6절입니다. “[눅]10:6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예수님은 그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에게 평안이 있기를 기도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에게 평안이 머물고 그렇지 않다면 자신에게로 다시 돌아온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전도자는 다른 사람에게 평안을 끼치는 사람이며 그 평안으로 인해서 스스로 평안을 누리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러한 평안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전도자의 자리에 서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는 사실은 무엇인가를 주려는 사람이기 보다는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도하지 않는 것이 평안하지 전도하는 것은 내가 평안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평안을 주려고 하는 사람은 결국에는 그로 인해서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남에게 베풀면서 다시 받게 되는 삶을 살라고 하셨습니다. 전도자는 항상 평안을 주는 자입니다.
두 번째, 전도자는 하나님의 상급을 사모하는 자입니다. 전도자는 자신의 행한 전도로 인해서 상을 잃지 않습니다. 그 상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기도 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눅]10: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전도자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십니다. 왜냐하면 일군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에도 근로기준법이 있어서 일을 했으면 수고비를 주는 것이 법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일하는 자에게 당연히 상을 주십니다. 그것은 전혀 의심할 바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이 땅에서도 상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서도 상을 얻게 하십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목표가 될 때입니다. 그 삯을 더 많이 얻기 위해서 이집 저집 다니며 그 삯을 모으고 획득하려고 하는 것은 전도자의 삶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도자의 목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차이를 예를 들어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나라의 홍보대사가 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홍보대사를 빌미로 이런 저런 기업을 다니면서 협찬을 요구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기업의 홍보모델이 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홍보모델이 되었다는 것으로 지속적인 후원을 요구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와 같이 목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하는 것인지 자신을 위하는 것인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세 번째, 전도자는 약한 자인 병자들을 도와주는 자입니다. 병자들을 무시하거나 외면하면 안됩니다. 병자는 가장 약한 자들이고 가장 도움이 필요한 자들입니다. 그들에 대해서 더욱 적극적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전도자는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눅]10:8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눅]10:9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전도자들이 의사는 아니지만 병자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도자들에게 병 고치는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결국 전도자가 고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고치십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에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그 병자들을 고친다는 말은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말이 됩니다. 또한 병자들을 고치는 것은 그 앞에 있는 구절인 ‘너희 앞에 차려놓은 것을 먹고’와도 연결됩니다. 앞에 놓인 것이 별로 좋지 않거나 고급스럽지 않거나 누추한 것이라도 거부하지 말고 먹으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 허물없이 그러한 자들을 도와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자는 병든 자, 약한 자를 위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단지 강한 자, 건강한 자만을 위해서 나아가서는 안됩니다.
마지막 네 번째로 전도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는 자입니다. 전도자의 목표는 결국 이 세상의 나라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전파가 복음 전도의 핵심입니다. 9절입니다. “[눅]10:9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가운데 가까이 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그 나라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준비함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그 나라가 멀리 있지 않음과 준비해야 함을 바로 전도자가 준비시킵니다. 그 나라가 보이는 나라였다면 좀더 쉽게 증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증거와 알려주는 고지가 필요합니다. 어느새 의식하지 못하는 새 그 나라에 가까이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것을 알려주는 것이 전도자의 역할이고 그 역할을 바로 우리가 맡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가까옴을 우리는 반드시 말하고 알려주어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러한 전도자의 모습을 잘 실천함으로써 예수님의 전도를 전하는 자들이 됩시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제자들이 됩시다. 제자들의 제자들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으로부터 배우고 실천하는 자들이 되어서 그 복음의 능력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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