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상담]] 59약 1; 23-27 경건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것이다2Loading the player... [크게보기]
59약 1; 23-27 경건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것이다2_2c
2020. 10. 25. 주. 주일오후. 온라인 설교.
*개요: 상담비전, 74경건
[약]1:23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약]1: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약]1: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약]1: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약]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이번 달 상담비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적용을 생각해 볼 때 어떻게 그 말씀을 실천할 수 있을까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그 마지막 시간으로 ‘경건’이라는 실천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경건은 성도가 실천할 수 있는 4번째 실천에 해당합니다. ‘7실천: 충성, 온유, 절제, 경건, 덕행, 우애’ 이러한 실천을 통해서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삶 속에 온전히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중 경건의 실천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더욱 성숙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경건의 의미는 ‘세속과 다른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영어로는 ‘godliness’라고 합니다. 그 구성요소로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가 있습니다. *경건:1. 상부 2. 중부 3. 하부 4. 외부 이 네 가지 구성요소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신앙의 상부에 올라 가기도 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외부에서 받아서 하나님 안으로 들어오기도 합니다. 그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것이 중요한 기준입니다. 그러면 인도하심을 받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인도하심을 받을 때 생겨나는 일들은 삶의 변화입니다. 또한 삶의 변화를 얻고자 할 때 필요한 것은 인도하심입니다. 이러한 현재적인 충만함과 동행하심을 받을 때에 우리는 삶의 순간 순간에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사역의 핵심은 바로 현재에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을 잡아주시고 붙들어 주십니다. 마음이 기울어지지 않도록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굳건한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순간 순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을 자전거 타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처음 제가 저희 딸에게 자전거를 가르칠 때 우리는 공원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균형 잡는 법을 알려주었습니다. 몸이 오른쪽으로 쓰러질것 같으면 왼쪽으로, 왼쪽으로 쓰러질 것 같으면 오른쪽으로 기울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안좋았습니다. 몸을 왼쪽으로 기울이면서 오른쪽으로 쓰러졌던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는 자전거를 배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나아가면서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면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리고 왼쪽으로 기울어지면 왼쪽으로 돌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핸들이 마구 흔들리다가 결국에는 넘어졌습니다. 혼자 힘으로는 아무리 해도 안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한 방법이 제가 뒤에서 목을 잡아주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제가 목을 굳게 잡아주고(목을 조른 것이 아니라), 균형을 잡아주니까 그제서야 중심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앞으로 넘어지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우리 딸은 아빠가 목을 잡아줘서 균형을 쉽게 잡을 수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딸이 스스로 자전거를 타게 된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천국에 갈 수도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성령을 의지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인도하심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럴 때 균형을 유지합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 바로 그렇게 성령님과 함께 하는 삶의 모습 중 하나가 바로 '경건'입니다.
우리는 경건의 정의를 어떻게 내릴 수 있습니까? 거룩하게 사는 것,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 부드럽게 이야기하는 것,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어떤 분들은 이런 경건을 영성이라는 말과 혼동합니다. 영성이라는 말은 그 자체가 성경적 용어가 아닙니다. 그것은 영어로 'spirituality'라고 하는데 그 기원은 5세기 경으로 성직자나 수도사들이 추구했던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주로 카톨릭을 통해서 전해 내려왔고, 최근에는 개신교회도 이러한 영성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영성의 근본적인 의미는 성경적인 가치와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신학자들이 말하고 있는 영성의 의미는 '한 사람의 행동이 유래된 태도나 정신의 바탕이 되는 어떤 종교적 또는 윤리적 가치'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또한, 더 넓게는 영성이란 특별한 종교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영성은 물론 선, 불교, 유대교, 이슬람 영성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영성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에는 물론 기독교 영성을 의미하겠지만 그 자체의 의미가 너무나 범용적이기 때문에 다소 생소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경건은 이러한 영성의 의미와는 다릅니다. 그것은 지극히 구체적인 삶 속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서는 경건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약]1: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경건이 경건하다는 생각과 자기 마음에의 집중에만 해당된다면 그것은 헛된 경건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혀를 재갈 먹이고 자기 마음을 속이지 않는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경건이라고 합니다. 혀에 재갈을 먹이는 것은 통제를 가하는 것입니다. 마스크를 씌우는 것이 아니고 마개를 덮는 것이 아닙니다. 할 말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지 않는 통제가 되는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경건입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 마음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 말이나 막 하면서 마음과는 다른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이런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보아야 좀더 구체적인 경건의 모습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성경에서는 경건한 사람 중의 하나로 '고넬료'를 말하고 있습니다. 고넬료에 대한 설명을 보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행]10: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행]10: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그는 경건하였다고 했습니다. 경건에 대한 성경의 설명대로라면 그의 혀는 재갈 먹여진 것 같습니다. 또한 마음을 속이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경건하여서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말은, 그의 혀는 도대체 어떤 용도로 쓰여진 것일까요?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는 말을 하였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백성을 구제하면서 하나님께 항상 그들을 위해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든지 간에 자기 영성만 추구하면서 살아간 사람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일체 관계를 맺지 않으면서 심지어는 가족도 버리면서 산속에 들어가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아간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백부장으로 군대를 맡아서 수고하면서 경건했습니다. 그의 말로 온 집은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그의 말로 그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경건했습니다.
경건하다는 모습이 일견 거부감이 들수 있수도 있지만 만약 우리의 경건이 우리 믿는 기독교의 의미를 온전히 나타내는 삶이라면 그런 경건은 필수적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합니다. 또한 그런 말과 행동을 하게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 보여주는 '경건'입니다. 인도하심으로 생겨나는 '경건'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이 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산속에 들어가 속세를 떠나서 영성을 추구하는 것과 삶속에서 경건을 이루는 것, 무엇이 더 어렵겠습니까?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성을 쌓으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경건을 행하라고 하신다는 점입니다. "[딤전]4: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딤전]4:8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딤전]4:9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건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겠습니다. 영성은 선택이지만 경건은 필수입니다. 이러한 경건을 이루기 위해서 인도하심을 필요로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인도하심이 없이 경건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산소통이 없이 바다로 내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잠수를 아무리 잘한다 하더라도 산소가 없이는 오래 바다 밑에서 작업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산소통이 있고 그러한 공급이 있을 때만이 바다 밑에서 해야하는 작업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인도하심을 따라야 하는 이유도 그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경건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때 그것은 경건의 능력을 가지게 되고 모습을 이루게 되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경건에는 비밀이 있기 때문입니다. "[딤전]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경건의 비밀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그분은 육신으로 나타나셨지만 영으로 의롭다 함을 입으셨습니다. 천사들이 그분을 보았습니다. 천하만국에서 전파되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주님이 되셨고 영광 가운데서 승천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경건의 비밀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런 경건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도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분의 삶을 닮는 것이 바로 경건입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조용히 산속에 들어가셔서 한평생 영성을 추구하다가 죽으신 분이 예수님이 아니라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그들의 죄를 위해 죽으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경건을 통해 예수님의 모습을 이 세상에서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그렇게 하나님 나라에 갈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경건의 모습을 갖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우리에게 경건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약]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우리는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의 경건이 의미가 있습니다. 아버지를 닮아가는 경건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런 삶을 사셨고 우리도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값주고 사신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며 세속에 물들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과 삶의 가치입니다.
고넬료의 삶 속에서 결국 경건한 그가 만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을 보며 하나님께서 경건한 자로 하여금 은혜를 얻게 하심을 찬양하였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을 경건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그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를 때 더욱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경건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의 빛과 그리스도의 구원의 빛을 나타내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경건의 열매를 나타내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2교육설교 관련글[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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