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상담]] 42눅 15; 25-32 집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큰아들2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
42눅 15; 25-32 집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큰아들2_2e
2019. 3. 10. 주. 주일오후.
*개요: 전도비전, [눅]15: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눅]15: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눅]15: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눅]15: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눅]15: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눅]15: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눅]15: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눅]15: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우리는 전도를 하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유’를 알고 그 수준을 파악할 때 그에 맞는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상담전도법에서는 그러한 불신자들의 유형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녀본 적이 있고, 교회를 나가지 않게 된 어떤 이유가 있는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요? 어떤 말이 그들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말이 될까요? 이럴 때 그 불신을 이해할 수 있는 말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입니다. “1.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셨나요? 2. 천국에 대해서 생각해 보셨나요? 3. 선악에 대해서 생각해 보셨나요?” 그들이 죽음에 대해서, 천국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였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또한 선악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였을 때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악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선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선과 악이 완전히 뒤집힌 상황이 바로 잡히지 않을 때 그는 더욱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그러한 불신의 상황을 돌이키게 하는 것은 그것을 이룰 수 있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려줄 때에 마음을 돌이킬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서 큰 아들은 아버지에 대해서 분노하면서 집을 나갔습니다. “[눅]15: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눅]15: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이렇게 된 이유는 아버지에게 크게 실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대해서 크게 실망한 자들이 하나님을 떠납니다. 탕자의 형은 동생이 돌아왔다는 것에는 별 다른 마음이 없었지만 그를 다시 맞이하여 들였고 또한 살진 송아지를 잡았기 때문에 화가 났습니다. 그에게 정의는 그 탕자를 내쫓고 아무 것도 주지 말았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노하여 잔치 자리에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불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방식에 대해서, 구원자체에 대해서,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거부감이 있습니다. 그들의 선악의 기준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신의 이유가 있음을 말한다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말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해줄 수 있는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의 ‘계획’을 의지해 보세요. 2.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 보세요. 3. 예수님의 ‘희생’을 의지해 보세요.” 왜 이러한 말이 그러한 자에게 의미가 있는가 하면, 그 사람은 교회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사랑에 대해서 들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 사람은 어떤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죽으심까지도 들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께 대해서 감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의식이 없는 사람은 감정을 갖지도 않습니다. 가질 수도 없는 것이지요. 오직 그분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이 있는 사람만이 감정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런데 뭔가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실족해버렸습니다.
이 의미를 잘 보여주는 것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큰아들은 원래 아버지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집에 들어가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는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일까요? 29,30절을 보십시오. “[눅]15: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눅]15: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이 큰 아들이 집에 들어오지 않는 이유는 아버지께서 둘째 아들을 위해서 살진 송아지를 잡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소에 자신에게는 홀대하던 아버지가 악을 행한 동생에게는 환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조직의 문제입니다. 가정 내에서 자신의 위치가 위협받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큰 아들에게는 괴로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화 가난 큰아들에게 아버지는 그를 타이르면서 말하십니다. “[눅]15: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눅]15: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아버지는 내 것이 다 네 것임을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살진 송아지 뿐만이 아니라 더 큰 것을 통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집 나간 작은 아들이 살아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셨음을 알게 하십니다.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의 과정 속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능력이 있으며 희생이 있습니다. 탕자가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는 큰 아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기를 원하십니다. 더 큰 축복와 은혜를 주셔서 기뻐할 수 있게 하실 능력이 있으심을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어떠한 희생을 치르셨는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계획, 능력, 희생을 생각할 때에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바로 그러한 은혜를 증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은 지금도 하나님을 거부하며 자신의 삶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국은 하나님 나라가 아닌 자신의 나라를 세워나가는 것 뿐입니다. 인간은 결코 자기 자신의 나라를 세울 수 없습니다.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세상에 살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능한 빨리 자기 자신의 나라를 세우는 일을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에 비로소 그 나라가 넓고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그 나라의 몸이 되시기를 원하시며 그 나라가 넓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그 나라의 몸이 되기를 원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복음을 증거해야 하겠습니다. 필요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복음을 전해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말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며 능력이고 희생입니다.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이 들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됩시다. 그래서 지금도 어디선가 떠돌고 있는 누군가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해줍시다. 이 일을 행하며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2교육설교 관련글[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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