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상담]] 10삼하 13; 1-5 악한 상담과 선한 상담2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pdf보기] 10삼하 13; 1-5 악한 상담과 선한 상담2_2
2017. 5. 7. 주. 주일오후.
*개요: 상담비전, [삼하]13:1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이름은 다말이라 다윗의 다른아들 암논이 그를 사랑하나 [삼하]13:2 그는 처녀이므로 어찌할 수 없는 줄을 알고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 때문에 울화로 말미암아 병이 되니라 [삼하]13:3 암논에게 요나답이라 하는 친구가 있으니 그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요 심히 간교한 자라 [삼하]13:4 그가 암논에게 이르되 왕자여 당신은 어찌하여 나날이 이렇게 파리하여 가느냐 내게 말해 주지 아니하겠느냐하니 암논이 말하되 내가 아우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사랑함이니라 하니라 [삼하]13:5 요나답이 그에게 이르되 침상에 누워 병든 체하다가 네 아버지가 너를 보러 오거든 너는 그에게 말하기를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게 떡을 먹이되 내가 보는 데에서 떡을 차려 그의 손으로 먹여 주게 하옵소서 하라 하니 [삼하]13:6 암논이 곧 누워 병든 체하다가 왕이 와서 그를 볼 때에 암논이 왕께 아뢰되 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와서 내가 보는 데에서 과자 두어 개를 만들어 그의 손으로 내게 먹여 주게 하옵소서 하니
이 세상에는 많은 상담이 존재합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 받을 수 있는 상담은 단순히 상담기관에서만 받는 것만이 아닙니다. 친구사이에서 동료사이에서 가족사이에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많은 상담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고민할 때 친구들은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하면서 이런 저런 조언을 해줍니다. 자녀문제에 대한 고민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걱정할 때 아는 사람들은 사랑과 관심을 갖고 역시 이런 저런 말을 하면서 상담을 해줍니다. 또한 가정 내에 한 사람이 외부적인 문제를 가지고 괴로움을 느끼고 있을 때 가족들은 달라붙어서 이런 저런 말을 해주면서 상담을 해줍니다. 이렇게 해주는 말은 전문적이거나 복잡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상담은 마치 조언이나 충고의 형식으로 우리 삶에 등장합니다. 또한 꼭 상담소에서만 상담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에는 많은 부분에 있어서 이모 저모로 상담을 하고 상담을 받는 기회와 환경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상담 속에는 선한 상담이 있지만 반대로 악한 상담이 있다는 것입니다. 갈등과 문제를 더욱 증폭시키는 상담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말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돕기 보다는 표면적인 변화만 추구할 수 있습니다. 문제를 통해 더 깊은 문제를 이해하기 보다는 오히려 사태의 심각성을 망각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악한 상담을 하고 있는 요나답이라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암논의 친구였습니다. 배다른 동생에 대한 암논의 고민을 들으면서 그는 악한 상담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 암논은 이스르엘 여인인 아히노암에게서 낳은 다윗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압살롬은 그술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아들이었습니다. 암논은 첫 번째 아들이었고 압살롬은 세 번째 아들이었습니다. 이 압살롬에게 누이인 다말이 있었는데 그녀는 암논에게는 이복동생이 되었습니다. 암논은 그 이복동생 다말을 연애하였고 그 고민을 요나답에게 말했던 것입니다. “[삼하]13:3 암논에게 요나답이라 하는 친구가 있으니 그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요 심히 간교한 자라 [삼하]13:4 그가 암논에게 이르되 왕자여 당신은 어찌하여 나날이 이렇게 파리하여 가느냐 내게 말해 주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암논이 말하되 내가 아우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사랑함이니라 하니라” 과연 이러한 고민을 듣고 요나답이라는 친구는 암논에게 뭐라고 말해주어야했을까요? 또한 암논은 요나답에게서 어떤 대답을 들었어야 했을까요? 지금도 여러분은 악한 상담과 선한 상담 사이에 놓여있습니다. 때로 그런 상담은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기 자신이 악한 상담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선한 상담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서 여러분 자신의 삶이 변하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악한 상담은 심리학적인 상담이며 세속적인 상담입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악한 상태를 만들어 냅니다. 반대로 선한 상담은 성경적인 상담이며 신령한 상담입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선한 상태를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이런 설명으로는 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심리학적인 세속적인 상담으로도 나름대로의 선한 상태를 만들어내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적이고 신령하다는 상담이 항상 유효하고 효과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역시 이론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악한 상담의 본질이며 무엇이 정말 선한 상담일까요? 궁극적인 차이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 상담이 사람을 기쁘게 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느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세속상담을 원하고 좋아하고 받아들이는 이유는 그것이 결국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고려하고 받는 사람의 수용태도를 의식합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사람의 흥미를 만족시키고 사람의 기대를 맞추어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게 되면 계속해서 문제는 가중되고 변형됩니다. 겉보기에는 문제가 해결된 것 같지만 나중에는 그 문제가 양상만 변해서 다시 일어나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것은 어쩌면 그리스도인들이 보기에 그럴지 모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만 해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의 해결이 없는 한에서는 그리스도인의 눈으로 보기에 그런 문제해결은 더 큰 문제를 향해 나아가는 것 뿐입니다. 요나답도 악한 상담을 암논에게해주었습니다. 그 때 요나답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삼하]13:5 요나답이 그에게 이르되 침상에 누워 병든 체하다가 네 아버지가 너를 보러 오거든 너는 그에게 말하기를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게 떡을 먹이되 내가 보는 데에서 떡을 차려 그의 손으로 먹여 주게 하옵소서 하라 하니” 그가 암논에게 해준 말은 암논의 욕구를 충족시키라고 한 것입니다. 연애의 감정을 적절한 절차와 과정을 통해 사랑으로 연결시키도록 한 것이 아니라 그 연애의 감정은 단순한 정욕과 범죄행위로 치닫게 만들라고 한 것입니다. 만약 그 이야기를 들은 암논이 정상적인 상태였으면 차마 자신의 이복동생을 강간하려고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연애감정으로 불타오르던 암논은 요나답의 조언을 들으면서 마치 물만난 고기처럼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자신의 욕구를 실행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악한 일에 요나답은 빌미를 제공했던 것이고 결국 이일로 인해 암논은 다말의 친오빠였던 압살롬에게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상담은 악한 상담이었지만 여기에 반대적인 의미에서의 선한 상담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상담이란 부부의 문제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녀의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 속에서 하나님이 그 속에 임하게 하고 하나님을 바라봄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게 합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은 그런 상담을 싫어하겠지요. 하나님을 알지도 믿지도 않는데 의지하고 간구하고 따르게 된다는 것은 더더군다나 싫겠지요. 그래서 세상사람들은 성경적인 상담을 거부하고 심리학적인 상담을 따릅니다. 그래서 그것으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삶을 더욱 고착시키려고 합니다. 우리는 선한 상담을 따라야 합니다. 그것은 성경적인 상담입니다. 그리고 성경적인 상담이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상담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교회가 우리의 학교가 우리의 직장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장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진짜 선한 상담이 무엇인지 무엇이 성경적인 상담인지를 보면 그 차이를 실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이 그 진정한 상담이 나오는데 그 내용을 우리는 엠마오에서 제자들을 만나신 예수님에게서 발견합니다. “[눅]24: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눅]24: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눅]24: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예수님은 엠마오로 낙심해서 내려가던 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의 어리석음과 믿음없음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믿게 하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며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도록 하셨습니다. 꾸짖음을 받고 책망을 받기는 했지만 그들의 마음은 뜨거워졌고 그들의 길의 방향은 예루살렘으로 바뀌었으며 더 나아가서 더욱 굳건한 제자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선한 상담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적 상담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상담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담을 받아야 하며 이러한 상담을 해주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에는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갈]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이러한 격려와 위로가 우리에게 좋은 상담이 됩니다. 이러한 좋은 상담을 해주고 또한 받는 것이우리 삶속에는 너무나 필요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부부문제로 괴로워하는데 한번 화를 내어 직성이 풀리겠다고 말하면 어떻게 말해주면 좋을까요? 어떤 상담이 선한 상담일까요? 욕구를 충족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말을 해주어야 합니다. 나타내고 싶은 것은 자신의 분노이지만 그 분노를 가라앉히도록 해야 합니다. 그 분노를 표출시켜보라고 하면 악한 상담입니다. 그것이 심리학적이고 세상적인 상담이니까 속지 말아야 합니다. 선한 상담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인내와 긍휼을 가지라고 말해줄 것입니다. 누군가 부모문제로 괴로워하면서 절망해 있을 때 혼자 힘으로 이겨내라고 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런 문제로 힘들지만 다들 혼자 힘으로 이겨내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악한 상담입니다. 선한 상담은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고 하나님께 문제를 맡기라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누군가 자녀문제로 근심과 걱정을 하고 있을 때 다들 그 시기엔 그렇다고 내버려두면 좋아진다고 말한다면 악한 상담입니다. 선한 상담은 그 문제로부터 떠나지 않도록 더 관심과 사랑을 기울이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이러한 상담을 해줄 수 있고 들을 수 있습니다. 무엇이 선한 상담이고 무엇이 악한 상담인가를 구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들도 어느새 악한 상담으로 인해 여러분의 욕구를 채우려고 하고 그것으로 인해 신앙을 버리고 믿음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과 은혜를 저버리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선한 상담을 들으십시오. 처음에는 만족스럽지 않겠지만 잘 따른 다면 그런 선한 상담이 진정으로 가져다 주는 유익과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하심이 있습니다. 바로 그런 상담을 통해서 하나님은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주 악한 상담은 멀리하고 선한 상담을 가까이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여러분 스스로가 악한 상담을 해주지 말고 선한 상담을 해주십시오. 악한 정욕을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라고 말해주십시오. 그래서 좋은 결과를 갖게 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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