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계획] 45롬16; 17-20 로마의 성도들에게 권하는 이유_1Loading the player...
45롬16; 17-20 로마의 성도들에게 권하는 이유_1
2025. 8. 10. 주. 주일오전.
찬양: 12. 다 함께 주를 경배하세 [384장] 나의 갈길 다 가도록 [537장] 형제여 지체 말라 [569장]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
개요: 성도들을 세워 나가는 노력과 과정, 51계획 [롬]16: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롬]16:18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롬]16:19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롬]16: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사도행전에서 성도를 세우고자 하는 노력은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을 통해서 잘 나타났습니다. 사도 바울은 여행을 통해 하나님의 교회를 온전하게 하는 사역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각 교회들의 모습을 살펴본다면 그들은 여행이 아닌 역사를 통해서 많은 상황들을 극복했습니다. 여행은 여행자들을 중심으로 해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나타나지만 역사는 거주자들을 중심으로 해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어디 가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기만 했지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그들의 삶과 생활에 영향을 미쳤던 것입니다. 성도를 세우고 교회를 세우는 노력의 근원은 목회자나 사역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근원에는 성도를 구원하셨고 교회를 만드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십자가의 길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하셨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으로 모든 구원사역과 교회사역이 끝이 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도들에 대한 구원사역과 교회를 세우는 교회사역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면서 십자가까지의 길이 아닌 십자가로부터의 길이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에는 십자가로 나아갔으며 그 다음에는 십자가를 따라서 천국까지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먼 길을 가기 위해서 고속도로를 찾아간 다음에 그 다음부터 고속도로를 통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성도와 교회를 세워 나가는 십자가의 길이 어떤 것인지를 교회생활의 역사 속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여행을 통해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 가야 하기도 합니다. 어떤 것이든 십자가의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은 초대교회시기에 로마교회의 역사 속에서 어떤 십자가의 길이 나타나는가를 보여줍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은 어디로 여행을 가서 어려움 당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냥 가만히 있으면서 어려움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할 때 천국으로 가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롬]16: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롬]16:18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로마교회는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제자들이 성령충만을 받고 베드로가 복음을 설교했을 때 회심한 성도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특정한 누군가가 파송을 받거나 선교를 한 것이 아니라 이름모를 성도들에 의해서 신앙이 시작되었고 그 이후에 베드로나 바나바가 방문해서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에는 이미 많은 수의 성도들이 있었고 그들은 유혹이나 박해를 극복해 내면서 신앙활동을 열심히 하던 자들이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로마교회의 출신이었는데 박해로 인해서 로마를 떠나면서 고린도에서 바울을 만나게 되었음을 생각할 때 바울은 간접적으로 로마교회 성도들과 친교를 나눴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중요한 것을 권했는데 그것은 그들이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펴서 그들에게서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굳이 바울이 말하지 않아도 함께 하기가 어려워서 떠날 것이니 바울의 말은 괜한 걱정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생활에서 이런 자들을 만나고 나면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실제에서 이런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들을 극복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그런 자들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배운 교훈을 거스르는 것이 최신 유형이라고 하면 거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할 때 그걸 재미있고 유쾌하게 한다면 결국에는 같이 동조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그걸 하는 사람들이 교활하고 아첨하며 미혹한다면 영락없이 넘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목적이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배를 섬기는 것임을 이해하고 그들의 악한 행위로부터 떠나려고 한다면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의 권면이자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걸 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걸 할 수 있을 때 신앙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역사를 이루기 보다는 도전을 피해서 다시 다른 교회로 여행을 하려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여행을 통해서 동일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이렇게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배를 섬기는 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들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지 도망 다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사도의 권면에 따라서 신앙의 역사를 이루고자 할 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롬]16:19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로마 교회의 교인들이 사도 바울의 권면에 따라서 그리스도를 섬기지 않고 자신들의 배를 섬기는 자들을 극복할 때 비로소 순종함이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자신의 배를 섬기지 말고 그리스도를 섬기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게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성장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만드신 십자가의 길의 결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자신들의 배를 섬기는 것을 알면서도 교훈을 거스리고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과 연합한다면 그것은 악한 일에 열심을 갖는 것일 뿐입니다. 그들이 교활하고 아첨하고 미혹의 말을 할 때 그 말에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면서 동조한다면 그것은 선한 일에 미련해지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그로 인해서 악인이 선인을 부끄럽게 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모든 분위기나 유행이나 흐름에서 빠져 나와야 합니다. 또한 그런 일은 오랜 시간동안 극복해 내야 합니다.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사기를 치기 위해서 오랫동안 공을 들이는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오랜 친분관계가 사기로 연결되기도 하고 오랜 우정이 사기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노력을 해서 마침내 사기를 칠 수 있었을 때 사기꾼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공을 많이 들였는데!’ 결국에는 사기를 치기 위해서 그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애를 써 왔던 것입니다. 얼마나 소름이 돋는 말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위협이 다가온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착하게 살아도 주변이 악하게 변해서 결국은 우리가 위협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주님은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위협을 피할 유일한 방법은 바로 주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순종을 희화화하고 우습게 만들고 무의미하게 하려는 악한 자들의 많은 노력이 있지만 그런 악한 노력과 사기 치려는 노력임을 알아차리고 반대로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리는 중요한 결정은 나의 배를 섬기지 않고 그리스도를 섬기려는 신앙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약속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지혜로운 결정을 통해서 상급과 약속을 주시려고 하십니다. 20절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롬]16: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평강의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평강을 주고자 하시고 미혹에 빠져 고통을 겪게 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탄을 성도들의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려고 합니다. 그렇게 교활하고 아첨하고 미혹하는 자들이 사실은 사탄에 의해서 조종된 자들임을 드러내고 그 근원인 사탄이 성도들의 발 아래에서 심판 받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그들과 함께 하지 않고 그들로부터 떠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신앙에 따라서 중요한 결정을 내린 선택을 한 것이고 그것이 귀한 역사가 되고 발전의 모습이 됩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의 삶 속에 그리스도를 위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배 만을 위하면서 선동하고 유혹하며 미혹하는 일들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스도만을 위한 것이었을 때 우리는 놀라운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결정과 선택과 실천 속에서 주 예수의 은혜가 우리에게 넘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속에서 지금도 여행이나 역사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교활하거나 아첨하거나 미혹함으로 그리스도를 위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배를 위하는 자들에 속지 말고 사탄을 성도의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실 평강의 하나님을 의지하며 찾아 나가는 거룩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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