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덕행] 66계 3; 14-17 라오디게아의 모습과 우리의 목표_6Loading the player...
66계 3; 14-17 라오디게아의 모습과 우리의 목표_6
2025. 7. 29. 화. 수련회 폐회예배.
찬양: 찬양팀
개요: 51계획,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뜻, [계]3: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계]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계]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계]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수련회를 마치면서 마지막 일곱 번째 교회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번 수련회는 온전한 교회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고자 했습니다. 일곱 교회의 모습은 다양하게 분화되어서 더 많은 교회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 세상에 동일한 교회는 하나도 없는 것처럼 각각의 교회에서 나타나는 문제도 많고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도 다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대한 주님의 말씀 속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어떤 문제이든지 어떤 방법이든지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점 많고 흠 많은 교회가 점이 없고 흠이 없는 온전한 교회가 될 것이고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마지막 일곱 번째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주님의 평가는 간단하면서 명료했습니다. “[계]3: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계]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라오디게아는 원래 우상숭배가 많던 온천지역 도시였는데 이곳에 교회가 들어섰습니다. 그래서 우상숭배를 하던 신전이 교회가 되어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라오디게아 교회의 문제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무색 무취의 신앙모습이었습니다. 그 모습은 하나님의 일에 열정을 갖는 것도 아니고 세상의 일에 냉정한 것도 아닌 미지근한 상태의 아무런 노력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러한 교회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온천지역이어서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는 표현이 어떤 의미인지 성도들은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차면 찬 대로 뜨거우면 뜨거운 대로 의미가 있었지만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상태는 어떤 용도로도 쓰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와 같이 세상 일에 차갑지도 않고 하나님의 일에 뜨겁지도 않은 그들의 신앙모습은 우상신전에 교회가 들어섰지만 별 영향력은 없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문제였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은 주님께 나아오는 것이었습니다. 18,19절을 보십시오. “[계]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그냥 금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게서 사는 것이 내게서 흰 옷을 사는 것이며 내게서 안약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전부 주님을 의지할 때 비로소 부요해지고 벌거벗지 않으며 바르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차든지 덥든지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것은 책망하여 징계하심이었지만 그것은 사실 사랑하시기 때문에 행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라오디게아 교회는 열심을 내면서 회개해야 했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약속은 그와 더불어 먹고 보좌에 함께 앉게 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비로소 주님과 연합하는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전까지의 신앙은 이러한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으로부터 금과 옷과 안약을 사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단지 차거나 뜨거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요하게 되고 수치를 가리고 볼 수 있게 되기 위해서 노력하면서 차거나 뜨거워지는 것이고 책망을 받지 않고 징계를 받지 않게 되기 위해서 그렇게 되려고 하는 것이며 그럴 때 주님께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주와 더불어 먹고 보좌에 앉게 해주심을 누릴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배우는 과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열심히 나가서 배울 때 잘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배움의 결실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교회는 바로 그렇게 주님께 배우는 곳입니다. 그 과정을 잘 따라갈 때 비로소 주님과 친밀해집니다. 그 필요성과 중요성을 깨닫고 주님께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충만해 집니다. 종교 개혁을 이룬 마틴 루터는 원래 카톨릭의 신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늘 행위구원이라는 잘못된 교리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습니다. 진실한 구원에 대해서 사모함이 있었고 그럴 때 말씀 속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깨달음이 종교개혁을 준비하게 하였고 95개조의 반박문을 발표하면서 커다란 신앙의 개혁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도 온전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 문제를 살펴보았고 그에 따른 방법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방법을 묵상하면서 더욱 하나님의 온전한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 각자도 온전한 교회가 될 것이고 하나님의 보좌에 연합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나아가는 사람의 수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게 나아갈 수 있는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삶 속에서 온전한 교회로 주님께 나아가는 성도가 되고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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