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요17; 24-26 나 있는 곳에 함께 있을 자들_4
2025. 4. 9. 수. 수요예배. 우림교회.
*개요: #56동행
[요]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요]17: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요]17: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 마지막 유월절을 보내시면서 최후의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나누셨을 때 여러 가지 말씀을 하신 내용이 나타납니다. 그 말씀을 묵상하다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월절 만찬과 십자가에서 죽으심이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라 유월절 만찬에서 말씀하신 바로 그 내용을 이루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그것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24절입니다.
“[요]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예수님께서 원하셨던 것은 내게 주신 자들이 나 있는 곳에 함께 있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함께 있기를 원하시는 이유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이 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예수님의 영광이 너무나 놀랍기 때문에 그것을 보게 하시는 것도 있겠지만 그 영광을 본다는 것은 그들이 심판을 받지 않고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단지 그 영광을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영광을 본 다음에 그 영광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자들이 이러한 구원을 받고 영광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예수님의 원하심을 이해하고 그 영광을 보고자 할 때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같이 있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 있고자 할 때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마음과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것들보다 예수님의 영광을 더 사모하고 사랑할 때 경험할 수 있는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고귀함과 은혜로우심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인도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죄가 없는 완전한 사람인 아담은 인간의 인도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도 동일한 인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죄가 없는 완전한 사람인 예수님은 우리의 인도자가 되십니다. 그분은 그 이유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십니다. 그 인도하심의 관계가 사랑을 통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예수님의 사랑을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 되시는 교회의 관계로 설명했습니다.
“[엡]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 말씀에서 보듯이 그리스도는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해서 자신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속한 성도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을 기억할 때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놀라운 구원을 얻고 누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알게 되었다면 그 인도하심의 목적지를 잘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으면 가게 되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이자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라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를 보십시오.
“[요]17: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요]17: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하나님 아버지를 제일 잘 아는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알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세상이 시작되기 전부터도 하나님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이 세상은 예수님으로 인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하나님을 가장 잘 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을 잘 따라가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우리에게 하나님을 설명하고 알게 하시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그 이름은 단순히 명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다양하게 나타났습니다. 여호와 이레는 준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여호와 라파는 치료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여호와 닛시는 깃발이 되시는 하나님입니다. 여호와 샬롬은 평강이 되시는 하나님입니다. 엘로힘은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하나님의 이름을 볼 때 그 속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을 배울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계속해서 알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하나님을 알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알게 되고 인자와 긍휼을 알게 되며 영원과 충만을 알게 됩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다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크시고 놀라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예수님은 알게 해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들 안에 있고 예수님도 우리들 안에 있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기억하면서 예수님과 함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단지 천국에 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지금 이 세상에 살아 있을 때에도 예수님과 함께 있음을 기억하고 의식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을 기억하면서 앞으로 천국에서 함께 있을 것을 생각할 때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난 받으실 때에도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생각하셨습니다. 먼 미래에 주님을 믿게 될 바로 우리들을 기억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한 위대한 보혈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 핏물을 통해 우리의 죄가 씻어졌습니다. 우리의 죄악됨이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 우리를 주님이 계시는 곳으로 함께 가게 하셨습니다. 그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할 때 우리는 주님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 나라로 온전히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고난주간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그 예수님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채워져서 더욱 예수님을 잘 따라 나가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