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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사53; 3-6 그가 우리를 위해서 고난 받은 이유_1
2025. 4. 13. 주. 주일오전. 우림교회.
*개요: #53희생
[사]53: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번 주부터 시작되는 고난주간을 맞이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의미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왜 고난을 당하셨는가?’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이유를 답하고자 하면서 우리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잘못으로 고난 당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우리의 죄를 위해서 고난 당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말씀 3절을 보십시오.
“[사]53: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고난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멸시를 받아 버림받았고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는 것처럼 멸시를 당했고 주의 백성들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난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외로운 고난의 시기를 보내셨을 때 그 고난은 아무 의미가 없어 보였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예수님께서 죄가 많고 잘못이 많고 어리석어서 그런 고통을 겪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우리도 삶 속에서 그런 사람들을 보거나 그런 사람이 되어본 경험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42절에는 임금이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25: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마]25: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때 임금은 주리는 자였고 목마른 자였습니다. 나그네 되고 헐벗는 자였습니다. 병드는 자이었고 옥에 갇히는 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에 대해서 사람들은 말하기를 그는 어리석어서 그런 일을 당한다고 말했습니다. 지혜로왔으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왕이 주리고 목마르고 나그네 되고 헐벗고 병들고 옥에 갇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멸시를 받고 간고를 겪으며 질고를 알게 되신 것에도 역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무시해 버린다면 그 고통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들었던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의 고통의 원인을 알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 고통의 원인을 알게 되었을 때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만 아는 것은 그 고난으로 끝날 뿐입니다. 하지만 그 고난의 이유를 아는 것은 더 큰 생명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4,5절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사]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은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걸 모르고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하고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 고통을 감당하셨던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사해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대신 찔리고 상하셨던 것입니다. 그가 대신 징계를 받음으로 인해 우리는 평화를 누렸고 그가 대신 채찍에 맞았기 때문에 우리는 나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셨던 것입니다. 그런 희생의 은혜를 받아서 구원을 받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우리를 위해서 고난 당하셨던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희생에 대해서 귀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신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랑에 대해서 오늘 말씀 이사야53장 11절에서는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사]53: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온 생애를 바쳐서 이루신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기셨습니다. 주님께서 이루신 것은 세상을 구원하는 일이었습니다. 자신을 믿는 사람들을 의롭게 하시며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그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의롭게 되었고 죄악의 사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원하심으로 인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진실한 사랑에 근거한 거룩한 희생이었습니다. 사랑이 없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영혼의 수고함은 무의미했을 것입니다. 사랑이 있었고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합당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였고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람을 사랑하셨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가 오늘 우리가 보려고 하는 최종적인 이유입니다. 그것이 6절에 나옵니다.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가는 그들은 인간인 우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양처럼 각기 제 길로 가는 어리석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어리석은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모두의 죄악을 예수님께 담당시키셔서 마침내 구원을 얻게 하십니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하나님의 길로 가는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셨던 이유는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 구원의 의미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사랑의 결정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사해주시고 그 모든 죄악을 담당하셨던 것이고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에게 사랑을 나타내신 것이며 성령님은 인간이 그 사랑을 따라서 하나님의 길로 나아가서 살 수 있도록 성도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제 다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마태복음 25장 35절에는 왕께서 주릴 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며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고 헐벗었을 때 옷을 입히고 병들었을 때 돌아보며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보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마]25: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마]25: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그 희생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그 역사하심을 돌아보며 돕는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희생에 대한 응답과 사랑에 대한 이해와 구원하심에 대한 사모함이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깨달음은 우리가 알아야 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희생과 성령님의 동행하심을 알게 합니다. 그 삼위일체 하나님께 반응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은혜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했었기 때문에 마지막 날에 왕이 바로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서 알고 있는 자들을 부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생각하니까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임금은 말씀합니다.
“[마]25: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그들은 임금의 고통에 동참했고 그로 인해 임금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었습니다. 그 예비된 나라도 감사하고 영광스럽지만 임금이 말씀해 주시는 내용은 더욱 가슴 벅찬 감격이 됩니다. 고난 중에 임금을 도왔던 그들은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었고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을 자격이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구원을 이루시는 임금의 고통에 동참한 자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의 고난의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한 깨달음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일에 참여하게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기 때문에 사랑하셨고 사랑하셨기 때문의 희생하셨음을 기억하면서 그 구원의 귀중함을 자각한다면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사랑을 따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인간을 창조하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희생을 따라서 고난에 동참하는 자들이 됩니다.
고난 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이 우리의 생명을 이루셨음을 생각하며 그 예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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