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48갈 3; 2-7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의 결과_1Loading the player...
48갈 3; 2-7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의 결과_1
2025. 9. 14. 주. 주일오전.
찬양: 17. 내가 한 맘으로 [344장] 믿음으로 가리라 [374장] 나의 믿음 약할때 [545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개요: 인도하시는 결과를 생각함, 74경건, [갈]3: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갈]3: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갈]3: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갈]3: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갈]3: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갈]3: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우리는 지금까지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를 살펴보았습니다. 이 두 성경은 고린도교회라는 구체적인 교회와 그 속의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보는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의 여러 교회들에 보내는 편지여서 한 교회로 제한된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들은 교회라면 일반적으로 대개 겪게 되는 문제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해결하기 위해서 신앙적인 해석과 이해가 필요한 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들이 올바르게 자신들의 문제를 풀고 해결할 수 있도록 AD 55~58년경에 3차 전도여행 중 갈라디아서를 썼습니다. 이러한 갈라디아서의 저술 배경은 오늘 우리에게도 갈라디아서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여러 사람이 겪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가르침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갈라디아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현재 우리가 겪는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말씀 속에서 찾아서 읽어보려고 한다면 바로 갈라디아서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놀라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목적을 가지고 오늘 말씀을 볼 때 갈라디아 지역 교회들에게 있었던 괴로운 문제가 무엇인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2절입니다. “[갈]3: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고민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 이루어진 것인가 아니면 듣고 믿음으로 이루어진 것인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애초에 이런 고민이 시작된 이유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헬라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약의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들은 거짓교사들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용서를 부인하고 행위를 쌓아서 구원을 받게 하는 잘못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와 어려움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사도 바울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듣고 믿음을 통해 받은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였고 이것을 이해하고 깨달을 때 비로소 온전한 그리스도인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이와 같은 고민과 문제는 좀더 확장해 보면 비슷한 유형으로 현재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생활 속에서 열매를 못 맺고 있는데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없는가’라는 고민이 있습니다. 또한 ‘지금 어려움과 한계가 많이 있는데 천국은 고사하고 내 삶의 어려운 상황은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을 체험하거나 경험하지 못했는데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있습니다. 이를 다 종합하면 결국 우리의 공통된 고민은 ‘내 기준의 문제가 해결이 될 것인가’를 걱정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하나님과 관련된 문제인데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의지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 자신을 의지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럴 때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비로소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에 대한 원함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다음 구절을 보십시오. “[갈]3: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갈]3: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사도 바울이 발견하고 있는 갈라디아 교회들의 어리석은 생각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많은 괴로움은 성령을 의지하고 성령을 따라서 행하려고 하면서 받았던 괴로움들입니다. 사도행전 15장에서 베드로 사도를 통해서 이방 구원이 시작된 다음에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주장이 나왔을 때 온 교회의 결의는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단지 네 가지에 불과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성령을 따르는 것이지 수십, 수백, 수천 가지의 구약의 율법조항을 따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그에 따라서 신앙생활을 할 때 그것은 괴로워도 보람된 일이었습니다. 율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따르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성령을 따르는 데에서 벗어나 ‘더 많은 율법을 따르고 더 적극적으로 할례를 받고 유대인처럼 산다’고 한다면 지금까지 했던 신앙적인 일들이 다 무산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해 왔던 노력과 수고와 애씀이 사라지게 되는 이유는 갈라디아 교회들 스스로 그런 생각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시작했지만 육체로 마칠 수 밖에 없어, 괴로움을 이겨냈지만 그 모든 일들을 다 부질없는 일이었어, 열심히 노력했지만 남는 것은 없을거야’ 등등의 어리석고 미련한 생각들이 계속해서 생겨났습니다. 그러니 사도 바울이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나 하나 언급했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바로 이런 생각이 들 때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모든 경험과 사건과 과정의 의미를 알게 하실 것이고 나타나게 하실 것이며 가치 있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으며 의지하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 삶 속에 이루어 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외부로부터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나님께 의지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주시는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예비하시는 도움도 받을 수 없지만 도움을 찾고자 할 때 하나님의 예비하신 사람과 상황과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포기하거나 절망했다면 그런 도움을 찾을 수 없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찾으면서 노력하고 인내할 때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무엇인가가 있어서 주의 일에 참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것도 없지만 부르심에 순종할 때 놀랍게 참여할 수 있습니다. 회심한 사도 바울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회심 전에는 교회를 핍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나고 회심하게 되었고 그후에 3년간 아라비아 사막에 갔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그를 이끈 사람이 바로 바나바였습니다. 그는 확신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의심했을 때 바나바의 도움으로 사도들을 만났고 안디옥 교회로 가서 성경교사를 했으며 그로 인해서 이방 선교의 준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내 관점과 내 기준보다 더 큰 세계를 알게 하십니다. 항상 그러한 외부로부터 오는 도우심을 사모할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해내었기 때문에 혹은 많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것도 없어도 주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이러한 원리를 깨닫게 됩니다. “[갈]3: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갈]3: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 우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은 율법의 행위로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율법의 행위가 없을 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직 믿음을 통해 나타난 것입니다. 성령을 주시고 능력을 행하신 이의 거룩하고 숭고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을 따르고자 할 때 그것이 믿음이 됩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자신에게는 아무 것도 없었지만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은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해 주셨습니다. 그와 같이 지금도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능력을 행하심을 믿을 때 그것을 우리의 의로 정해 주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럴 때 ‘믿었다가 속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안다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은 능력을 행하시는 분이시며 진실하고 은혜로우신 분입니다. 그러한 능력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를 때 비로소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렇게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어가는 자들의 결과에 대해서 오늘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갈]3: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환경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입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을 본받는 자들이 됩니다. 아브라함처럼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이 됩니다. 그 도우심을 따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르며 연합하는 성도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갈라디아 교회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님의 방법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말씀이 깨달음과 통찰이 되어서 그들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들이 되어서 우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과 더욱 연합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