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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경건] 47고후 5; 14-17 자신에게 나아오는 자를 변화시키시는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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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고후 5; 14-17 자신에게 나아오는 자를 변화시키시는 그리스도_1

  

 

  

2023. 12. 24. . 주일오전예배.

  

 

  

*개요: 고린도후서를 통해 성도를 세움, #74경건, #4극본적해석

  

 

  

[고후]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고후]5: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고후]5: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성탄 전날인 오늘 고린도후서 속에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분명히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로 인해서 연대와 기원이 생겼고 모든 인간이 그 연대에 따라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의 삶을 결정해 주신 것처럼 예수님은 믿는 자들의 삶을 결정해 주십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믿고 따를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구원에 대해서 우리는 고린도후서의 말씀 속에서 가장 중요한 이면적인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의 중요한 가치에 대한 것입니다.

  

“[고후]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이 말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은 진실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셨고 그로 인해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과 같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심판을 완료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의 죽음 대신에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과 같았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인해서 모든 사람은 살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원리를 그대로 그리스도의 나심에 적용해 보십시오.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해서 태어나셨은즉 모든 사람이 새로 태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태어나셨기에 모든 사람이 새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육체는 성령으로 창조되셨기 때문에 아담과는 다른 또 다른 창조가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존재하심과 태어나심은 모든 존재의 시작의 원형입니다. 예수님이 없이는 창조 자체가 이루어질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 인해서 거듭남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존재의 원천이신 예수님께서 나셨던 것에는 중요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15절에 나옵니다.

  

“[고후]5: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죽으신 이유는 예수님으로 인해서 살아난 자들이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예수님을 위해서 살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목적이었습니다. 그 예수님을 위해서 산다는 것은 세상을 구원하는 일에 동참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이기적인 목적으로 구원을 받고 이기적인 목적으로 삶을 즐기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대신 죽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목적으로 살아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에 연합하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태어나신 이유는 이러한 죽으심을 예비하시려고 하신 것이고 그것은 역시 예수님의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예수님을 위해서 살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깨닫는 것은 예수님이 그 나심 가운데 우리를 그러한 자들이 되도록 부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나심을 기뻐하면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람들이 되어 갑니다.

  

관계 속에서 우리가 비슷한 사람들이 되어간다는 것을 이해해 보십시오. 누구와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서 그런 사람들이 됩니다. 운동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 보면 운동을 좋아하게 됩니다. 공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 보면 공부를 좋아하게 됩니다.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 보면 역시 일을 좋아하게 됩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과 함께 있다 보면 예수님의 일을 좋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렇게 우리와 관계를 맺으면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그런 부르심에 따를 때에 우리는 진정한 예수님의 사람들이 되어 갑니다.

  

 

  

우리가 과거에 경험했던 그런 관계와 친분 속에서 알 수 있었고 할 수 있었던 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관계 속에서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억지와 강요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결코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과 희락과 기쁨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놀랍게 이룰 수 있습니다.

  

어떤 학생이 신앙고민 란에 이런 고민을 올렸습니다. ‘어떻게 하면 교회에 가지 않을 수 있을까요?’ 부모님이 억지로 교회를 보내기 때문에 교회 가는 의미가 없고 이유를 몰라서 교회에 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작정 교회만 보낸다는 것이 그렇게 무의미합니다. 그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알려주고 깨닫게 해야만 비로소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학교도 무조건 가는 것이 아니고 직장도 무조건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와 목표를 깨달으면서 다닐 때 비로소 그 활동이 자신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도 예수님이 그렇게 나아오는 자들을 변화시켜 주시기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받는 자로 변화시켜 주시고 구원받게 하는 자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그럴 때 예수님과의 관계는 정말 귀중하고 소중한 관계가 됩니다.

  

 

  

이러한 원리를 성경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고후]5: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주님께로 나올 때 주님은 각 사람을 변화시켜 주십니다. 생각과 마음을 바꿔 주십니다. 그래서 육신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신앙대로의 모습으로 변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고 새 것이 됩니다. 신앙인으로서의 모습이 생기는 것입니다.

  

성탄에 만나는 예수님의 모습은 아기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모습으로만 예수님을 알지 않습니다. 그 모습이 어떻게 영광스러우신 만왕의 왕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으로 변화되는지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새로운 하나님 되심의 모습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그대로 우리 자신에게도 적용됩니다.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고 새것이 되었습니다. 육신대로의 모습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모습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어떤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이었더라도 하나님 안에서는 놀라운 은혜로 충만한 모습이 됩니다.

  

고린도후서에서는 이러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피조물을 말하면서 고린도교회의 분쟁과 일탈과 범죄가 달라지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를 촉구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에 성탄을 다시 한번 치르면서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넘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관계를 가지면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생각할 때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을 허상이나 공상으로 생각해서는 인격적인 부분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실재하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의 공적인 부분이나 사적인 부분을 모두 어루만지십니다. 그리고 그런 자기 자신의 이기적인 모습이 그리스도의 임재를 통해서 그분 앞에 나아갈 때 사라지는 것처럼 온전한 변화를 사모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고린도 교회에 필요한 말씀의 적용이었습니다. 그럴 때 세상 악을 버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고자 다짐하게 되고 그러한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20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고후]5: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하나님과 화목하려고 할 때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예수님과의 관계를 생각할 때 예수님과 친밀할 수 있고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습니다. 성탄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님께로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됩니다.

  

 

  

우리에게 있는 이 성탄 속에서 그리스도와 진실한 관계를 더욱 맺게 되기를 바랍니다. 듣지 못하고 보지는 못하지만 그러나 실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서 그분의 나심을 감사하고 찬양하는 이 시간에 더욱 놀라운 변화를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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