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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경건] 47고후 4; 3-6 그리스도의 빛을 나타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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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고후 4; 3-6 그리스도의 빛을 나타내는 사람들_1

  

 

  

2023. 12. 17. 주일오전예배.

  

 

  

*개요: 고린도후서에서 성도를 세움, #74경건 ,#분석적해석

  

 

  

[고후]4: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고후]4: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후]4: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고후]4: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성탄이 한 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성탄을 즐거워하는 사람들은 세상이 아니고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에 이 성탄을 우리는 잘 깨닫고 생각하며 묵상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지나온 다른 절기들인 부활절이나 추수감사절처럼 성탄절도 그리스도인의 고유한 절기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부활절이나 추수감사절은 의미가 없습니다. 부활을 기뻐하지도 않고 한해의 소출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성탄절에도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 경배를 드리는 세상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성탄의 분위기는 즐기고 있지만 정작 그렇게 할 수 있게 해 주신 예수님께는 경배 드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특별히 더 예수님께 경배 드리는 일에 의미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보이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경배 드리는 이유는 우리가 그 예수님을 믿고 섬김으로 구원받게 됨을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속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의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일은 바로 예수님께 경배 드리는 일입니다. 천국에서도 날마다 그렇게 경배를 드릴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께 경배 드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 이러한 성탄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과 성도의 차이를 생각할 때  고린도후서에서 보여주는 원리를 생각해 보십시오. 바로 그것이 이 말씀 속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고후]4: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고후]4: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이 말씀에 따르면 성탄을 깨닫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하고 경배하지 못하는 것은 망하는 자들에게 복음이 가리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는 세상의 악한 목표가 있는데 그것은 이 세상의 신인 마귀 사탄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해서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를 약화시키고 비쳐지지 못하게 하려는 악한 의도가 있었습니다.

  

성도가 그런 의도를 간파하고 오히려 더욱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를 바라보려고 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 감사하고 경배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럴 때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탄의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보이스피싱을 당하신 분들의 사연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분명히 눈을 뜨고 귀가 열리고 말을 할 수 있지만 마음이 혼미하게 되면 자신의 재산과 대출 능력 등의 모든 경제적인 수단을 다 동원해서 거액의 돈을 전달하고 결국은 그 모든 돈을 전부 잃어버립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나중에 살펴보면 안타깝습니다. 핸드폰의 권한이 탈취되고 다른 연락 수단이 단절된 상태에서는 오직 보이스피싱 사기범의 말만이 전부 진실처럼 들리는 것입니다.

  

이단에 빠진 사람들의 사연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말을 해도 이미 마음이 혼미하게 된 상태에서는 교주를 구원자로 철썩 같이 믿고 있으니 소 귀에 경 읽기라는 속담처럼 되어 버립니다. 그와 같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인생 전체와 역사 전체와 세계와 우주 전체가 모두 무의미한 시간들일 뿐이고 죽으면 사라지거나 혹은 죽으면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될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아무런 근거가 없거나 혹은 잘못된 근거로 그렇게 생각할 때 그것은 악한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만드는 이 세상의 신은 바로 사탄입니다. 그에게는 과학기술도 산업혁명도 인류역사도 모두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만드는 도구일 뿐입니다. 인간의 수준이 어떤 식이 되더라도 결코 사탄의 혼미하게 함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영광의 복음의 광채로 나아올 때만이 비로소 그 혼미함을 벗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만이 이 세상의 시작과 끝을 온 우주적으로 선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성탄의 절기도 생각해 보십시오. 성탄의 의미를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성탄은 이 세상에 존재합니다.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성탄이라는 절기는 인간에게 하나의 문화처럼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일도 그것이 주일이든 휴일이든 간에 일요일이라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고 예수님의 오심을 기점으로 한 서력도 온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편리해서가 아니고 많은 사람이 사용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누군가 그걸 저항하고 반대해서 자의적인 문화와 시간개념과 연도개념을 새로 만들어서 사용한다 하더라도 그는 언젠가 이 세상에서 죽습니다. 그러면 자신이 행한 모든 것에 대해서 다시 심판과 처벌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삶과 죽음 그 너머를 다스리고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범위와 영향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생명과 사망을 다스리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그런 면에서 마음의 혼미함 속에 살아가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판단기준은 단지 성경 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이 자연과 현실 세계를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세계의 시작과 끝과 생명과 죽음 이상에 계신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이 이생과 내생의 개념을 갖고 있는 것이고 더 큰 스케일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그러한 지혜를 받아들이게 하신 것입니다. 5,6절을 보십시오.

  

“[고후]4: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고후]4: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사도 바울과 사역자들이 단지 자신을 전파하는 것이라면 아주 좁고 작은 분야를 말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그 예수를 위하여 그들이 성도들의 종 된 것을 전파한다면 그들은 더 큰 것을 보고 있는 자들입니다. 예를 들면 공무원들이 일반 국민들의 보는 것보다 더 큰 것을 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일반 국민들은 당장 자신의 필요나 원함만 생각하겠지만 공무원들은 더 크고 더 다양한 필요와 의무를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규제가 있기도 하고 책임이 따르기도 하고 강제사항이 있기도 한 것입니다.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한 제도나 정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우리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로 인해서 혜택을 볼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세대를 보는 것이고 다음 세대를 보는 것입니다. 또한 더 크게는 그 세대를 사랑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의미가 있고 더 보람이 있으며 더 영향이 큽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가족만 보지 않았습니다하나님을 바라볼 때 자신을 통해서 이루시는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와 같은 믿음의 자손을 보았습니다. 이삭이 그러하였고 야곱이 그러하였으며 요셉이 그러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성탄에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성탄에서 단지 분위기나 기분이나 먹는 것, 마시는 것, 즐기는 것만 생각한다면 그리스도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 보다도 더 그리스도를 바라본다면 분위기가 어떻든 기분이 어떻든 먹거나 마시거나 즐기는 것이 어떻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여전히 그리스도의 영광은 찬란하고 성탄에 감사하는 우리를 통해서 이루실 우리 자녀들과 이 세대와 다음 세대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실 것인가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던 것입니다. 마치 망원경으로 멀리 있는 세계를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 빛을 통해서 지난 세대와 다음 세대가 연결됩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을 보면서 이전 세대를 바라볼 수 있고 또한 다음 세대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때 죽어서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다음 세대를 생각하게 될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가슴 벅차고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그런 일은 오직 하나님을 바라볼 때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를 바라 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빛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다가오는 성탄에 바로 이것을 이루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에게 비춰주셨으니 그 빛을 잘 바라보면서 지난 세대를 생각하고 다음 세대를 바라보면서 영광스러운 시각과 관점과 큰 스케일과 장구한 흐름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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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3-12-17 (일) 23:55 7개월전
*소감

1. 하나님 안에서 완전하신 그리스도의 빛을 나타내야겠다.
2. 한 해를 마무리 하며 아쉬운 감정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하나님께 의지하며 마무리 하고 싶습니다.
3. 성탄절을 맞아 쾌락과 즐거움을 쫓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라야겠다.
4. 예수님을 생각하는 성탄절이 되어야겠습니다.
5. 예수님을 알 수 있도록 빛을 비추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번 성탄절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상황이 허락하든지 허락하지 않든지 간에 늘 예수님을 바라보겠습니다.
6.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그리스도의 빛을 나타내는 성도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7. 주께 감사하며 경배하며 찬양하는 삶을 살며 이 세상의 신의 유혹에 빠지지 말자
8. 그리스도의 오심과 모든 것의 중심이신 분을 찬양하며 삶 가운데서 더욱 바라보며 주시는 깊은 은혜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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