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가로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13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계집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14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15 저희가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계집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저희가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16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저희가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17 베드로가 저희에게 손짓하여 종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이번 달 우리는 연속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자연만물에서 경험합니다. 찌는 듯한 더위, 퍼붓는 비, 귀청을 뚫을 듯한 천둥 소리 등등은 하나님의 존재와 그 능력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요소들입니다. 그런 경험 속에서 우리들은 안전을 위해 하나님을 찾게 된다든지 자연재해로 인한 괴로움을 피하기 위해서 간구한다든지
하면서 원초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기 위해서 그렇게 극단적인 상황을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니는 이 교회에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을 바로 이곳 하나님의 교회에서 항상 설명하시고
알게 하시며 경험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능력을 교회에서 설명하십니다. 예배중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합니다. 설교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설명합니다. 기도 중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합니다. 따지고 보면 교회만큼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한 곳도 없습니다. 또한 교회만큼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게 되는 곳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진실로 교회를 통해서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시기를 원하십니다.
이미 나타난 능력을 깨닫고 이해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럴 때 우리들은 계속해서 그 능력을 떠나지 않고 그 능력을 의미하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특별히 교회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몸이란 형상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하는 일들은 그리스도께서 하기를 원하시는 일들입니다. 몸이
있으니까 마음의 뜻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몸이 없다든지 혹은 몸을 움직일 수 없다고 해 보십시오. 마음의 원하는 것이나 또한 필요한 일들은 이루어지지
못할 것입니다. 끊임없는 안타까움만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몸이 있다면 제대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몸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냅니다.
또한 하나님의 능력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통해 나타날 때 더욱 의미있습니다. 더 가치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은
능력 그 자체에만 집중하지 않고 그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사도행전 2장에서 이미 나타났습니다.
“행2:44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46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교회의 새로운 모습은 결국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이었던 그들의 역할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고 그로 인해서 하나님을 찬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전도로 이어져서 구원받는 사람들은 날마다 더 늘어났습니다.
이것은 비단 모이기를 힘쓰고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나누고 칭송을 받는 모습으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대로 힘들고 괴롭고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때에도 역시 나타났습니다. 흥왕하는 교회에 대해서 헤롯왕의
시기와 질투가 일어나서 야고보 사도는 죽임을 당하였고, 베드로는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리고 헤롯은 베드로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교회의 발전을
해치는 이러한 악에 대해서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베드로를 위해서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당면한 절대절명의
위기속에서 교회를 통한 기도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5절 말씀을 보십시오.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베드로는 이전에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거짓과 속임수에 대해서 지적하였을 때 그들이 죽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베드로가 죽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 앞에 있었기 때문에 그 선하심으로 인해서 죽은
것이었습니다. 만약에 그들을 죽인 것이 베드로의 능력이면, 왜 베드로는 자신을 잡는 자들을 죽이지 않습니까? 왜 자신을 공격하는 자들에 대해서
무기력하게 붙잡혀 옥에 갇힙니까? 베드로가 갇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에 베드로는 아무 저항도 못하고 잡힌 것입니다. 예수님을 기억해 보십시오.
예수님도 힘이 없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베드로가 어려움 당할 때 교회가 그를 위해서 기도하고 빌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가 없다면 그런 일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면 그런 일을 받을 수 없습니다. 교회가 없다고 해서 하나님이 능력을 행사하시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놀라운 능력을 언제나
행하십니다. 다만 그 능력을 어떻게 행하시는지 교회가 아니고서는 알수가 없을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을 만들어 내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교회가 그렇게 기도를 할 때에 베드로는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감옥에서 나온 것은 그냥 정상적인 방법으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6,7절을 보십시오.
“6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신기하게도 천사가 밤에 나타났고 그의 쇠사슬은 저절로 벗어졌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8,9절을 보십시오.
“8 천사가 가로되 띠를 띠고 신을 들메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가로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의 하는 것이 참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놀랍게도 천사는 베드로를 인도해서 어둡고 복잡한 감옥을 빠져나왔습니다. 베드로도 이것이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10절입니다.
“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성으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절로 열리는지라 나와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많은 파수꾼들이 있었지만 계속 해서 그들을 지나갈 수 있었고 성으로 통하는 쇠문에 이르러서는
문이 저절로 열려습니다. 그렇게 해서 감옥을 빠져나온 뒤에야 천사는 떠나갔습니다. 두 군사 틈에서 쇠사슬에 묶여
자던 베드로가 쇠사슬을 풀고 복잡한 감옥을 빠져 나오고 두꺼운 쇠문까지 열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 능력을 나타내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잡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지만 동시에 베드로가 빠져 나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놀라운 능력이 신기하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을 때 탈옥한 것이 아니라 옥문이 저절로
열렸고 천사가 인도를 해서 감옥을 나오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바로 교회를 통해서 였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기도할 때 베드로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베드로에게 일어났던 일은 바로 교회를 통해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
“16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저희가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17 베드로가 저희에게 손짓하여 종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베드로는 자기가 경험한 것을 교회에 말하였고 여기서 나타나는 야고보는 주님의 동생 야고보를 의미합니다. 요한의 형제 야고보는 헤롯에게 죽임을 당한 첫 순교자였지만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이후에 예루살렘 교회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고 야고보서를 기술합니다. 결국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증거되고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 능력의 깨달음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교회를 굳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우리가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의 모든 쇠사슬을 푸시고 옥문을 여신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이제도 하나님은 교회의 기도를 들으시고 죄악의 쇠사슬과 세상의 옥에 갇힌 자들을 밖으로 이끄십니다. 우리가 그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저들을 구원해 내셨구나, 악의 세계에서 의의 세계로 옮기셨구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쇠사슬을 풀고
우리가 옥문을 여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렇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우리는 받아들이고 그것을 증거하기만 하면 됩니다. 다만 문제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베드로의 출옥사건에서 유독 시선을 끄는 한 장면이 있는데 그것은 어린
소녀였던 로데의 이야기입니다. 이 소녀는 밖에 감옥에서 나온 베드로가 와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베드로가 있다는 것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밖에 세워두고 정말 베드로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 로데와 사람들 간의 사소한
실강이가 벌어집니다. 11, 12절을 봅니다.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가로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베드로는 처음에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믿지 못하다가 나중에는 자신이 정말 감옥을 나오게 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곧장 교인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마리아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곳이 교회인 셈입니다. 그 다음
13절을 보십시오.
“13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계집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14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로데라는 소녀는 누군가 하고 나갔다가 베드로라는 응답을 받고 기뻐서 다시 사람들에게로 가서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문밖에 서 있어요!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은 의외였습니다. 15절입니다.
“15 저희가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계집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저희가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16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저희가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그들은 단정적으로 로데의 이야기를 무시했습니다. 그 아이가 정신이
좀 어떻게 된 것 아닌가 했습니다. 심지어는 헛것을 본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정말 베드로가 문앞에 서있었습니다. 그들이 다 나와서 문을
열고 두눈으로 베드로를 볼 때에야 비로소 그가 감옥을 나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문앞에 와 있지만 거부합니다. 부인합니다. 무시합니다. 그건 미친 것이고 그것은 환상일 뿐이라고 합니다. 성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정신이 나간
것 같은 또는 환상인 것 같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자기가 어리석었고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일은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문앞에 그 능력을 나타내어 보여주십니다. 용기있게 문만 열면 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면서 우리 교회도 그러한 하나님의 능력을 위해 기도하고 경험하며 맞이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다른 많은 교회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간구하여 쇠사슬에 매인, 옥문에 갇힌 안타까운 자들이 변화를
받게 되는 일들을 경험할 때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렇게 함께 모여있으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돌아오는 자들을 맞이할 때도 되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자신의 소원이나 목표 실현의 장이나 혹은 자신의 욕구나 욕심 실현의 처소로 생각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그렇게 되어버리면
쓸데없는 일에 고집을 피울 것입니다. 로데와 다른 사람들간에 언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왜 나를 미쳤다고 하느냐고
왜 쓸데없이 기도는 안하고 헛것이나 보느냐고 싸울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기분이 나빠져서 교회를 떠나겠지요. 뭐가 조금만 맘이 상해도 교회를 떠나는
통에 요즘 사람들은 어디서도 맘에 드는 교회에 정착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우리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을 더욱 간구합시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는 교회가 됩시다. 그래서 기도하면서 은혜를 받고, 은혜를 받으면서 역사가
이루어지고, 역사가 이루어짐을 경험하면서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되는 그러한 자들이 됩시다. 이것은 오직 교회로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개인으로서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있어서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오직 영광을 받으시고 찬미를 받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사모하며 더욱 그분의 능력을 함께 바라보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1.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을 교회를 통해서 나타내시기를 원하신다. 2. 베드로는 자신의 문제 속에서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도움을 받았다. 3.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 4.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간구하고 이루는 교회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