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빌립에 모인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먹게 하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가진 많은 필요와도 같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그 모든 필요에 넉넉하게 채움을 입고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 비결은 먼저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 먹고 남음이 있었습니다.”
1. 예수님께 있었던 많은 사람들과 우리들의 필요들 2. 사람들을 먹일 수 있는 방법, 필요들을 채울 수 있는 방법 3. 자리에 앉아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는 것 4. 우리 삶의 놀라운 결과의 조망
예수님께 그 말씀을 듣기 위해 큰 무리가 모여들었을 때 그들은 밥도 먹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주님은 산에 오르셨고 사람들은 산으로 모여들었기 때문에 인근에는 마땅히 식사할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허기진 상태로 다시 돌려보내자니 예수님의 인자하신 마음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 모인 많은 사람들을 다 먹일 수 있을까요? 이러한 난처한 상황을 우리 삶속에 대입시켜 봅니다. 우리에게도 많은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습니다. 이렇게도 되면 좋겠고 저렇게도 되면 좋겠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먹여야 하는 필요입니다. 그 필요를 다 채우게 되기를 원합니다. 어떻게해야 이 모든 필요들을 다 채울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는 이 모든 필요들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먼저 빌립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것은 빌립을 시험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기대하시는 대답은 충분한 떡을 사서 먹게 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빌립은 현실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계산하여서 나름대로의 답을 내놓았습니다. 조금씩 받게 하더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한 것이었습니다.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치 품삯이었으니까 물가와 임금수준을 고려하면 오늘날에는 1000만원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키자면 이것으로도 모자랄 것입니다. 돈이 얼마나 많으냐는 그만큼 쓰임새가 커지기 때문에 도저히 우리의 모든 필요를 다 채울 수가 없습니다. 캐나다에 사는 머스웨이건이라는 사람은 천만달러의 복권에 당첨되었지만 집, 차, 대형TV에 밤낮 이어지는 파티, 술과 마약, 목재회사의 설립과 실패, 난폭운전, 성폭행, 우울증에 시달리다 7년만에 목을 매 자살했습니다. 우리가 만약 우리의 욕심대로 살려고 한다면 이런 식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우리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어떻게 그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셨습니까?
주님은 현재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셨습니다. 비록 베드로는 현재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지만 그것은 모든 필요를 채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만 예수님은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앉히셨습니다. 그런 다음 있는 것을 가지고 축사하셨습니다. 그리고 떼어 나누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앉았고,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였으며, 그리고 떼어나 나누어 주는 것을 받았습니다. 그럴 때 기적이 일어나 그들은 배불리 먹을 수 있었고 오히려 먹고 남기까지 하였는데 그것이 원래의 것보다 더 많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우리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해야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먼저 자리에 앉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들을 바라보면서 그 은혜를 기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함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에 대해서 함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물론 충만하게 받았더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더라도 아직 우리에게는 있는 것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파선중에 사람들을 격려할 때에 여전히 폭풍우 가운데 있었지만 함께 하나님께 감사로 기도를 드린 후에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러한 감사가 아니고서는 있는 것은 별 것 아니지만 감사가 있기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먹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욕심만 차리면 안됩니다.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그 감사를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합니다. 혼자서만 감사하는 것은 안됩니다. 그 고백을 그 생각을 그 느낌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났을 때 남은 것은 처음 것보다 더욱 커졌습니다. 풍성한 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들에게 내려온 것입니다. 11월, 한 해의 감사와 마무리가 이어지는 이 달에 이러한 은혜가 우리에게 더욱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진심어린 추수감사의 경배와 영광을 주님께 드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