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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사역] 44행10;24-35 무슨 연유로 그들은 만나게 되었는가?



44행10;24-35 무슨 연유로 그들은 만나게 되었는가?



2010.8.22. 주일오전

전도를 할 때 우리는 대개 ‘교회 나가세요?’라고 물어봅니다. 이전에 교회를 다녔었는지 아니면 지금 다니고 있는지를 알아보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다니고 있는 사람은 ‘예’라고 대답하고 교회를 다니고 있지 않으면 ‘아니오’라고 대답하고 이런 대답하기도 싫어하는 사람은 ‘죄송합니다’하고 지나갑니다. 만약 정말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아니오’나 ‘죄송합니다’라고 할 이유가 없으니까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일종의 ‘아니오’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전도를 할 때에 교회를 다니는지 안다니는지를 알아보려고 하는 이유는 교회경험이 있는지를 알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과 교회 경험이 있는 사람과는 접근방식 자체가 전혀 달라집니다. 교회경험이 없으면 새롭게 교회경험을 갖기 위해 전도를 하는 것이고 교회경험이 있다면 과거의 경험을 계속 유지할 수 있기 위해 전도를 하게 됩니다.

누군가 교회에 새로오면 우리는 비슷한 방식으로 묻습니다. ‘이전에 교회를 나가셨나요?’ 그러면 ‘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아니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과거에 교회경험을 가지고 있다가 우리 교회에 오는 사람이 있고 과거에 그런 경험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가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거의 교회경험을 가지고 있으면 그 경험에 이어서 우리 교회는 그 뒤를 이어가는 것이고, 교회경험이 없다면 새롭게 교회경험을 쌓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들은 교회 밖에서 전도를 하거나 혹은 교회 안에서 새가족을 맞이할 때나 동일하게 한 개인의 교회에 관한 역사를 추적합니다. 그러한 역사를 추적하고 탐구하다보면 한 가지 공통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속에서 여러 유형의 교회를 다양한 방법으로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속에 사람들의 역사가 있습니다. 어렸을 적 모태신앙으로 교회를 다녔거나 유초등부 시절 성탄절에 교회를 가보았거나 중고등학생시절 친구따라 교회에 가보았거나 군대에서 교회를 다녀보았거나 나름대로 교회를 중심으로 한 각 사람들의 역사가 있습니다. 교회 이야기는 사실 한 개인의 종교적 부분에 관한 역사인 것입니다. 지금 처음 교회에 나오신 분이 있다면 그런 분은 자신의 종교적 부분에 관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셈입니다. 그 교회의 역사는 단지 한 교회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교회의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습니다. 그냥 교회는 교회일뿐입니다. 그 교회에서 자신이 한 일과 경험한 일들만이 남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이 단 한 가지의 질문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 교회를 다닐 때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습니까?’


무슨 말인가하면 저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다녔던 교회는 육군대학교회와 가리산교회와 대방교회와 수색장로교회입니다. 이러저리 이사를 하면서 한군데를 다닌것이 아니고 여기저기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언제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가 생각해보면 그 다음에 다닌 ‘보성교회’에서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다닌 ‘수색서부교회’에서 구원의 확신을 갖게되고 성령충만을 받았으며 다시 ‘보성교회’로 돌아왔다가 압구정동에 있었던 ‘신성교회’에서 사명을 감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듯 저의 경우만 보더라도 결코 한 교회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교회 저 교회 갈아타면서 어느 순간 믿음이 생겼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생 한 교회만을 섬겨오신 분도 계시겠지만 지금까지 여러 교회를 섬기던 분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아는 것만도 보면 보성교회, 영광교회, 수유제일교회, 분당우리교회, 동광교회, 열린교회, 은혜와 진리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 등등이 있습니다. 물론 신형교회가 생애 첫 교회인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든지 한 교회를 평생 다닌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정, 저런 사정으로 이런 교회 저런 교회를 다니게 하면서 신앙을 갖게 하십니다. 그 신앙이 자라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생기게 하시고 더 자라서 ‘구원의 확신’이 생기게 하시고 더 발전해서 ‘성령충만’을 받게 하시고, 좋은 목사님과 좋은 교회를 만나서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수준이 되게 하십니다. 그런 성장과 발전을 이루기 위한 좋은 교회와의 만남은 우리 삶속에 내내 계속될 것이고 또한 계속되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신앙의 수준이 뚝 떨어져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수준의 하락이란 삶의 수준의 하락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인생 속에서 만나는 교회와의 만남의 의미를 놓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교회와 교역자와의 만남을 너무나 가볍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저 친구 만나는 것처럼, 그저 동네 아저씨 만나는 것처럼, 그저 아는 사람 만나는 것처럼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교회와의 만남, 좋은 교역자와의 만남은 자신의 삶을 바꾸어 놓는 매우 중요한 고비가 됩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은 매우 중요한 만남이었습니다. 위대한 사도였던 베드로가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던 고넬료를 만나는 것은 매우 특이한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정복지의 시민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정복지를 다스리는 로마의 백부장 군인이었습니다. 또한 한 사람은 유대인으로서 예수님의 열두 사도 중의 수제자였던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복음전파가 허락되지 않던 이방인이었습니다. 이 완전한 불협화음과 대조적인 대비 속에서 그들은 만나고 있습니다. 나이로 보나 혈통으로 보나 환경으로 보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것은 정말 이례적인 일이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는 이 만남에 대해서 잘 이해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이 만남이 너무나 불편하고도 어색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28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29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뇨”
베드로는 고넬료와의 만남이 사실 그에게 복음 전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에게는 그저 지금 이 시간이 불편하다는 것만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오기는 왔지만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뇨’ 이것은 마치 왜 나를 불편하게 하느뇨, 왜 나를 성가시게 하느뇨라는 뜻의 완곡한 표현이었습니다.

우리도 정말 그런 질문을 할 때가 있습니다. 교역자로서 저도 ‘저사람이 왜 와서 나를 불편하게 할까, 성가시게 할까’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주 가끔 있습니다. 성도로서 여러분도 ‘내가 왜 여기 와서 이렇게 불편을 느껴야 하나, 왜 이렇게 나를 성가시게 만들까’라고 생각할 때가 아주 조금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왜 이렇게 서로 불편하고 서로 성가시게 이러고 있는 것일까요? 도대체 우리는 무슨 일로 이렇게 서로 부름을 받은 것일까요?



베드로의 질문 속에서 갖게 되는 의문을 우리는 고넬료의 대답속에서 풀 수 있습니다. 고넬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33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고넬료가 앞절에서 그 자신이 본 환상이야기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고넬료가 베드로를 부른 이유는 하나님의 천사가 베드로를 부르라고 해서 부른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베드로나 고넬료나 본질적인 이유를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말하기를 ‘나는 성령께서 가라고 해서 왔다’하고 고넬료는 ‘저는 천사가 부르라고 해서 불렀습니다’하면 오기는 왔고 부르기는 불렀지만 만나서 뭘 할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 고넬료는 알았습니다. 그는 베드로를 불러서 무엇을 해야 할 지를 알았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만난 이유입니다. 그것은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도 베드로 앞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인생이야기를 들으러 모인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재미있는 예화를 들으러 모인 것도 아닙니다. 베드로의 모험담을 들으러 모인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두눈을 똑바로 뜨고 정신을 새롭게 하고 잔뜩 주목하여 베드로 앞에 있던 이유는 ‘하나님이 베드로에게 말하라고 명하신 모든 것을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실 베드로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 이렇게 모여있는 것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을 듣고자’ 모였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명하신 그 모든 것을 말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여러분은 바로 그것을 들어야 합니다. 저에게서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들으려고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것입니다. 그 음성이 여러분에게 무엇이라고 말하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저에게서 들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로부터 들으려고 하실 때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게 중요한가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중요한가요? 내가 잘먹고 잘살면 됐지, 이 시점에서 내가 교회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중요한가요?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중요한가요? 그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여러분의 삶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교역자를 통해 네 가지의 말씀을 하십니다. 내용이야 다 다르지만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하나님께서 교역자를 통해 하시는 말씀은 딱 네가지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간절하게 말씀하십니다.‘아무개야~ 믿음을 가져라’, ‘아무개야~확신을 가져라’ ‘아무개야~성령으로 충만해져라’‘아무개야~사명을 감당하거라’주님은 이렇게 간절하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지금 막 믿음을 버리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막 확신을 포기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막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막 사명을 그만 두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형편을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려고 하십니다. 그 능력의 말씀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려고 하십니다. 그 말씀은 그냥 말씀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은 능력입니다. 그래서 그 능력을 주시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듣는 것이 너무나 중요했습니다.



고넬료가 정말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은 베드로는 고백했습니다. 그의 고백은 놀라우신 하나님께 대한 찬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섬세하신 계획에 대한 영광돌림이었습니다.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35 각 나라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줄 깨달았도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유대인인지 이방인인지를 가리지 않으시고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을 사모하며 그 의를 행하는 자를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고넬료가 베드로를 통해 은혜 받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의 신앙이 한층 더 진일보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고넬료가 베드로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들의 만남은 철저하게 하나님에 의해서 계획되어 있었고 그 뜻대로 이루어진 만남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중의 최고의 사도가 이방인 성도 중의 가장 신실했던 고넬료를 만나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고 이로써 이방인 중에 가장 처음으로 성령을 충만하게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놀랍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만남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난 것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래 전 부터 예비하시고 예비하신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섭리하심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 섭리 속에서 오라고 한 사람과 그 초청에 응한 사람을 통해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자 이제 우리가 만났으니 뭘할까요? 춤을 출까요? 노래를 할까요? 우리가 춤을 추고 노래를 하기 위해서 만났습니까? 밥을 먹을까요? 이야기를 나눌까요? 우리가 밥을먹고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만났습니까?
우리가 모여서 춤을 추고 노래를 하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일을 하고 잠을 자고 지각하고 빠지고 안나오고 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고자 하시는 이야기를 듣지 못합니다. 다른 일에 너무 신경을 쓰느라 정작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못듣습니다. 저도 다른 일에 신경이 너무 쓰여서 여러분에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잊어버렸습니다. 여러분이 늦게 오는 것, 와서 잠을 자는 것, 이 사람 저 사람 신경쓰는 것, 말씀에 집중하지 않는 것, 에어컨을 끄고 키는 것, 부산한 여러가지 것들에 너무 신경을 쓰느라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는지를 잊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만났습니다.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만났습니다. 만약 이 교회를 다니는 내내 그 의미를 못 깨닫는다면 다음 교회와 다음 교역자가 여러분을 기다릴 것입니다. 그럴 경우 제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에게 기회가 남아있다면 꼭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하고자 하시는 말씀이 있으십니다. 그것을 들으면 여러분에게 믿음이 생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확신이 생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충만함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사명을 감당할 능력이 생길 것입니다. 꼭 교역자를 통해 여러분에게 들려지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지금도 그 말씀은 그치지 않습니다. 그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여러분에게 정말 필요한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 속에 있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무개야~ 믿음을 가져라’, ‘아무개야~확신을 가져라’ ‘아무개야~성령으로 충만해져라’‘아무개야~사명을 감당하거라’
이 음성을 듣는 것이 오늘 여러분에게 가장 필요한 것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 음성을 듣고 그 속에서 강건하여지시기를 바랍니다. 그 음성을 힘입어 죄악중에 굴복하지 말고 주님의 의로우심을 향해 더욱 담대히 나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개요 {4선지서}, , [1영역-교회]~[5은혜-계획]
1. 사람들은 인생 속에서 여러가지 교회를 여러번 접하게 된다.
2. 그런데 그 교회경험 속에서 어느 순간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3. 바로 그러한 믿음 속에서 하나님은 다음 단계로 이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신다.
4. 우리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믿음의 성장을 경험했고 앞으로도 그러한 성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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